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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작품을 한국 작가가 소설의
소재로 썼다는 사실, 그것도 조선시대 노론에 탄압받던 천주교인들과 엮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다. 그러나 읽을수록 흥미진진하고 빠져드는
소설이라 감탄했다. 소설 『최후의 만찬』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스펙트럼을 넘어선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에 더 기대를
가져봐도 좋을 듯한 역작이다.
사도세자의 에피소드부터 정조시대의 이야기는 역사시대가 아닐까.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의 선조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절묘하게 엮인 탄탄한 스토리가 몰입도를 높였다. 1791년, 정조
15년 전라도 진산군에서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제례를 지냈다는 이유로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하였다. 이들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였다. 조사 과정에서 윤지충의 집에서 발견된 그림 한 점은 사건을 진행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모사본이었다. 도화서 화원들은 이 그림을 없애자고 하지만 정조는 서학과 유교의 난세를 풀어갈 수수께끼 같은 비밀이
그림에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을 가지고 별제 김홍도를 불러 그림에 대해 검토를 맡긴다.
김홍도는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까닭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고, 시간이 멎은 듯
눈앞이 캄캄하고 어두웠다. 얼어붙은 느낌은 무엇이 될지, 몸서리치는 것도 잠시 삶과 죽음으로 분할된 양자의 선택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도화서 별제가 말하길 13인의 만찬은 세상의 비밀을 품고 있다 하옵니다.
화성 행차를 앞둔 근자에 노론의 암투와 다를 바 없다 했사옵니다 " 임금은 왕가의 비기를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전해온 비기에는 세상
안에 감추어진 존재들이 득실거렸다.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조의 심리뿐만 아니라 순교 소식을 듣고 신앙이
흔들리는 정약용의 심리도 묘사도 탁월하다. "순교란 조용하고 무거운 길이다. 길 끝에 천주의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허나 그 길이 천주의 길이란
말이가?" 답할 수 없는 물음을 던져 놓고 약용은 깊이 시름했다. 곡기를 끊고 기도에 묻혀도 글 속에 참된 천주의 신념은 허기로 다가왔고,
약현, 약전, 약종 형들을 향한 조정의 탄압, 자신을 겨냥한 노론의 사찰을 두려워했다는 부분, 이에 따라 정약용은 신념을 버리더라도 편입하여
살아남는 길을 택하였다. 우리가 어떠한 인간으로 남아야 하는지 고뇌하게 만든다.
순교한 여령의 딸 도향이 『왕가의 비기』에 기록된 '불을 다룰 수 있는
돌연변이'라는 설정, 다빈치의 작품에서 장영실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점 그리고 프리메이슨까지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최후의 만찬』은 200여 년 전 조선시대에 이념과 정치 종교 간의 대 논쟁의 시대상이 반영되었지만 양심과
신념의 갈등은 현재까지도 시사 사하는 바가 크다. "애끓지 마라. 절실하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너무 간절한 것은 절망에
지나지 않음을..." 한 줌 재로 돌아간 기도문의 가치는 죽음에 있을 것인데, 죽음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활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약용은 생각했다. 역사의 실존 인물들의 서사로 이어지는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처음 접한
우리 선조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 기발한 책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