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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는 맨부커상 소설가의
지적이고 섬세한 그림 컬렉션이다. 당대 최고 화가들의 캔버스 뒤에 숨은 그림자를 들여다본 집요하고도 흥미진진한 기록이다. 줄리언 반스는 제리코의
그림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25년간 다양한 예술, 문화 잡지에 예술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는데 그중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선별해 엮어내었다.
지금껏 잘 알지 못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줄리언 반스는 그가 25년간
얼마나 예술에 몰두했었는지 보여준다. 낭만주의의 대가 들라크루아는 고루하고 성실한 금욕주의자였고, 사실주의자의 대가 쿠르베는 모든 프랑스 여자가
자신을 택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하다 시골 처녀에게 거절당한 나르시시스트였다. 드가는 여성을 혐오한다는 혹독한 오해를 받은 반면 보나르는 한 여인의
그림을 385점이나 그린 지독한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타고난 천재 같기만 한 피카소는 차분하고 도덕적인 단짝 브라크를 평생 질투했다.
예술가들의 이면들을 알면서 작품을 접하면 작품 속에서 그의 성격을 찾아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어쩌면 피카소는 허영심이 많은 사람일 수 있고, 미로와 클레는 고상한
체하는 사람일 수 있고, 레제는 같은 것만 반복하는 사람일 수 있다. 모더니즘에도 다른 모든 미술 운동이 그렇듯 장단점이 있고 진부화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낭만주의에 맞지 않는 기질을 지녔다면,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참된 낭만주의자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지녔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사명이다. 1855년,
<화실>과 <오르낭의 매장>이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지 못하자 쿠르베는 직접 전시회를 기획해서 데뷔했다. 이에 대해 보들레르는
"무장 폭동의 난폭함 그 자체"였다고 기록했다. 그때부터 쿠르베의 인생과 프랑스 미술의 미래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내
자유를 얻고 있다. 나는 예술의 독립을 지키고 있다." 그는 이렇게 썼는데, 뒤의 말은 마치 그저 앞의 말을 공들여 다시 표현한 것 같다. p
93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머리를 문처럼 그려. 누군가의 머리가
흥미로우면 난 그것을 아주 크게 그리지." 한편, 그의 그림에는 '개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영혼은 그리는 게 아니야." 세잔은
투덜거리곤 했다. "몸을 그려야지. 젠장, 몸을 잘 그리기만 하면, 영혼은-몸에 그런 게 깃들어 있다면- 사방에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단체브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세잔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실물과 닮았다는 점보다는 인물이 거의 실제로 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세잔을 가리켜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밀도의 재현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평했다 p
147
줄리언 반스의 지성과 필력이 빚어낸 그의 작품들은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식을 얻게 되는 재미를 선사하기에 거듭 선택하게 된다. 예술은 배경지식이 수반될 때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법인데, 줄리언 반스의 사색이
담긴 이 책은 나를 미술관으로 데려가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큐레이터 같았다. 그의 지성에 한 번 더 놀라게 하고, 그를 더 좋아하게
만든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