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여행지 곳곳을 관찰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며 산책하듯
여행을 할 때 여행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유명 관광지만 도장 찍듯 바쁘게 돌아다니기 보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세심하게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어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행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게 된다. 나는 예술 작품의 뒷이야기만큼 그 나라의 역사와 여행지를 깊이 파악하게
해주는 소재가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유럽여행을 떠날 땐, 여행지 정보를 찾기 급급했고, 그 나라의 역사를 추가적으로 공부했다. 유럽여행을 많이
다닌 지금은 예술작품, 그 나라의 명작들을 섭렵하고 떠나 여행지를 즐기고 있다. 이런 내게 위대한 예술가 15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산책자의 인문학>은 매력적인 책이었다.
처음 시작인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의 단테의 이야기는 피렌체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단테 알리기에리가 연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장소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로맨틱한 장소로 변하는
베키오 다리는 이전에 귀족들의 비밀통로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냥 보기엔 시가지를 잇는 다리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낭만적이고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클림트, 모차르트부터 랭보와 카사노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의 카사노바로 불리는 바람둥이였지만,
한 여성에게만큼은 숙맥이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명작 '키스'의 모델인 에밀리 플뢰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플라토닉
한 러브를 이어간 그의 이야기, 모차르트와 카사노바의 이야기 도 흥미롭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하고 있을 무렵, 예순 중반이 된
노년의 카사노바가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카사노바는 모차르트에게 자신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돈 조반니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부도덕하고 문란한 주인공 돈 조반니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를 쓰던 모차르트마저 카사노바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카사노바보다는 돈 조반니가 훨씬 낫겠다."
숨겨진 이야기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열정 많은 예술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면 예술에 한층 다가선 듯하다. 나의 여행의 질을 높이고 온전히 여행에 집중하고 즐기기 위해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연구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 찾기 힘들 때, 저자가 정리한 이 <산책자의 인문학>을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많은 삽화들과 술술 읽히는 글들이 나를 유럽의 한 도시로 여행시켜 줄 테니까. 답답한 일상에 르네상스를 선물해주는 보석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