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 명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에 대하여
박은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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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는 말을 서두에 붙이며 조심스레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거창한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고,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 같고, 그리고... 두렵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에게 향해지는 그 모든 날카로운 공격들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려운 더 큰 이유는, '이건 뭔가 좀 불합리해'라고 한 걸음 나아가 말하기도 전에 '나는 워마드가 아니며 남성 혐오를 하지 않는다.' 따위를 먼저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으며 치마를 입지 않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원은 아닐 것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선택의 자유다. 원하는 옷을 입고, ~답게 보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자유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결국 이르러야 하는 지점은 '그럼에도 나는 꾸밈 노동을 거부한다.'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꾸밈 정도를 의식하여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꾸미지 않은 것에 대한 창피함, 죄책감 같은 것을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내가 입고 싶은 것을 입고, 하고 싶은 만큼 화장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페미니즘을 이슈로 하여 말다툼을 해본 커플이라면 남자친구에게 이 말을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너 요즘 페미니즘이니 뭐니, 그거 때문에 그래?" 혹은 더 많은 의미를 담은 한 문장, "너 페미니스트야?" 이 당당하고도 이기적인 문장에 황당함을 느끼는 이유는, '원래 이 세상은 네가 양보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는 건데, 왜 갑자기 안 하겠다는 거야 ?'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면 내가 얼마든지 돌봐주고 예뻐해 줄 텐데, 왜 새삼스럽게 거부하는 거야?'라는 숨은 뜻을 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사를 내뱉는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자신이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 여자친구가 당연히 누려야 했던 권리와 자유라면 어떨까.

인식의 차이였을까. "여자 30대면 너도 이제 끝났네","여성스럽게 머리 좀 길러","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밤늦게 다니면 안 되지, 넌 여자잖아!"같은 말들은 걱정이 아니라 여성 혐오에서 나오는 거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생각들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고 말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유독 여성의 목소리가 작았던 것 같다. '여성'이라는 단어에 부여해 왔던 '여성으로써의 행동들'은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정서에서부터 시작이었을까.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얘기하기를 꺼리기 쉽지만, 가까운 연인이나 가족이기에 더더욱 여성에 대해 그리고 남성에 대한 가치관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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