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지난 자리는 문득문득 아프다. 그래서 스치지 않으려는 세월을 모른 척
보낸다. 어느덧 그 자리에는 딱지가 앉아 단단해진 듯했다. 그래도 간질거리는 딱지 아래 상처는 더 이상 날카로운 슬픔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잊혀질까 안타까운 흔적만 여리고 붉게 각인되어 있다. 만져지는 상처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데, 아문 곳을 보는 기억은 다시 슬프다. 무디어진
날이 되어 애처로운 것이 새로운 슬픔이 된다.
여행 중의 동행은 그 순간만큼의 세상의 반이다. 특히 언어가 안 되는
나라에서의 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이유로 여행 중에는 좋은 이야기와 밝은 표정과 긍정적인 멘탈을 가진 동행이 더욱 고맙다. 그것은 행운에
가깝다. 그 여행의 색과 빛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억되는 여행인 가는 동행이 반 이상의 몫을
한다.
힘든 일이 닥치는 날도 있겠지. 그 또한 삶의 한
가지로 분류한다. 다른 여타의 행복이나 즐거움처럼 불행도 그중 한 가지일 뿐이다. 숨 쉴 때마다 일깨우지 않아도 되는 삶의 한 면이다. 이왕이면
다른 한 면의 행운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 뒷면이 불행과 짝이 되어 온다 해도 오늘의 삶에 감사하는 작은 행운과 눈
맞춤한다.
사람들 사이에 산다는 것은 옷을 입는 것과 같다. 너무 많이 입으면
짐이 되고, 그렇다고 입지 않으면 갑자기 찾아오는 추위를 그대로 떨며 견디어야 한다. 최소한을 입고 하나쯤 들고 다니는 것.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투명한 햇살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의 소리와 사람의 웃음과 그들의 움직임이 꽃처럼 그곳을 채우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물리적인 의미도 있지만 감정적인 것이 중요하다. 조금은 신선한 바람이 드나드는 정도의 거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가끔은 누군가 절실히 혼자 있고 싶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견디어 내는 삶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가끔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팡이라도 찾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시간의 굴레를 공전하다 보면 다른 계절을 만난다. 한 번쯤은 본 것 같은 그 계절 안에서
위로받거나 상처받는다.
<유럽에 서 봄>은 저자가 12개국을
여행하며 만나온 여행지와 여행하며 저자가 느꼈던 순간들을 엮어낸 책이다. '빛나는 지구의 한 면은 이토록 찬란하고 맑아서 눈물이 난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유럽을 거닐다 보면 찬란한 영광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아련함이 있다. 저자의 아픔이 여행지를 통해 힐링의 시간을 얻고
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