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신작 에세이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요리 배울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저자가 중년이 되어 뒤늦게 부엌에 들어서서 '요리를 책으로 배우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시대의 지성으로 유명한 저자 줄리언 반스도 '레시피대로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일념 하에 요리를 만들지만, 어딘가 어설프기만 하고 실패한다. 심지어 사서 쟁인 요리책만도 백 권이 넘는다. 그 책 안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이제 부엌은 두려움 가득한 장소에서 긴장감이 기다리는 장소로 변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시작한 줄리언 반스이기에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먹는 일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지적이고 위트 가득한 에세이다.

줄리언 반스의 아내 팻캐보나는 문학 에이전트로 그의 작품에 늘 헌사'팻에게 바친다'로 등장해왔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팻을 뇌종양으로 잃은 심경을 비탄과 상실의 언어로 써 내려갔다면,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는 오래된 부부의 일상 속 요리와 식사를 포착해 소중한 일상을 박제한 듯 보여준다. 레시피 속 '커런트 한 스푼'이라는 표현이 '찰랑찰랑하게'한 스푼인지, '수북이' 한 스푼인지 아내와 벌이는 논쟁, 요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나 그 비슷한 말을 외쳐도 단순히 배경음악의 하나로 여기는 아내의 태평함 등등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다.

설탕은 녹는데 내 마음은 굳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요리책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바깥 식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잔뜩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요리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융합이 이루어지는 결정적 순간을 맞았지만 처음과 똑같이 격렬한 폭발현상이 일어났다. 이게 무슨 염병할 은유적 상황이란 말인가! 저기요, 죄송한데요, 제독 각하, 메뉴에 변동 사항이 생겼습니다. 초콜릿을 곁들인 산토끼를 먹기는 할 텐데요, 정식 소스는 없습니다. 소스는 배 밑바닥에 있습니다. 아, 그리고 목구멍에 위험한 뼈가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바로 그거다. 빵을 고르는 일. 버터를 마음대로 마구 쓰는 일. 부엌을 혼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 재료를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 친구와 가족을 먹이는 일. 다른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단순화할 수 없는 사회적 행위에 참여하는 일. 내가 아무리 트집을 잡고 항의의 말을 했어도 콘래드의 말이 맞는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다. 온전한 정신의 문제다.

줄리언 반스가 담담하게 전하는 과거의 행복한 일상이 기록된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를 읽고 있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요리하고 나눠 먹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소소한 행복을 되뇌어본다. 또한 스타 셰프의 레시피부터 빅토리아 시대 저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요리책을 섭렵하여 쌓아올린 지식의 보고이기도 하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이 책을 읽지 말 것. 끊임없이 웃긴다는 아마존의 평처럼 시니컬한 저자 특유의 유머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 친구들을 독살하지 않을 요리를 만드는 것, 즐겁게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조금씩 쌓아가는 것 등 목표를 거창하게 잡지 않고 스스로를 '부엌의 현학자'라 일컬으며 레시피 재현 실험을 통해 불친절한 레시피에서 비롯된 웃음 가득한 참사 현장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