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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20세기 말 독일문학의 위대한 거장 제발트의 대표작 <토성의
고리>가 75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어요. 제발트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발견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라는 르몽드의 평을 보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으면서 얼른 토성의 고리 속으로 파고들고 싶어졌다.
제발트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독일 현대문학에서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숭배자와 제발디언이라 불리는 연구자를 거느린 독일 작가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 남긴 그의 작품은 네 권에 불과하지만, 이민자와 유대인의 삶에 주목하면서 역사와 문명의 크고 작은 재앙들을 성찰하여 더욱 주목받는 게
아닐까 싶다.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퍽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나의 희망은 어느 정도 충족되었는데, 곳에 따라 삶이
거의 살지 않는 해변 안쪽 지역을 몇 시간씩, 때로는 며칠씩 걸으면서 모처럼 기분이 아주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소설의 화자는 1992년 8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 지방으로 도보 여행을 떠난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떠난 게 아니라 화자의 내적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떠난 순례 같은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에 빠진다. 이러한 이탈은 이미 발생했거나 앞으로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들을 만나게 하는데.. 여행을 떠난 지 1년 만에
온몸이 마비되어 병원에 입원하고 '그 병원에서 글을,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쓰기 시작했다'라며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곳곳에 등장하는 사진은
이해도를 도와주는데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 형태의 소설 같은 느낌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거대한 실수를 복제하는 복도 끝 거울에 검은
베일을 덮는다.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사실 가까이서 보면 별의 잔해들이 이어진 결과물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기도 하고, 각자의 삶을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실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실수투성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일까. 이 실수투성이들도 모이면 아름답다. 당야에서의 슬픔보다 이 외로운 집안에서의 슬픔이 훨씬 크다는 저자의 말처럼
세상살이가 힘들지언정 외로움보다 낫다고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의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반복되는 삶들이 모이면, 멀리서
바라보면 작은 별들이 빛나는 토성의 고리와 같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