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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누구나 한 번은 인생에서 빈센트를 만난다
저자는 빈센트의 그림이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빈센트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심리학적 몸부림이자, 자신의 삶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가장 아름답고 치열하게 가꾸는 강력한 의지였다고. 그리고 아픔을 재료로
예술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아픔에 맞서기 위한 불굴의 용기로 그림을 그렸다고 믿는다.
빈센트의 그림에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래서 항상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화는 물론 붓꽃이나 해바라기조차 빈센트가 그리면 강력한 스토리텔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림이 포착하고 있는
한 장면만을 봐도 주인공이 겪어온 오랜 시간의 풍랑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빈센트는 그림이라는 시각 이미지로 관객에게 어떤 서사적 드라마를
상상하게 해준다. 특히 빈센트의 자화상에는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화가 자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그러나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묘사할 수 없지만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응시함으로써 관객은 기이한 위로를 느낀다. '그는 아프고,
나는 괜찮다'라는 비교 감정 때문이 아니다. 고통을 애써 다른 무엇으로 포장하지 않고 투명하게 응시함으로써 인간의 일, 당신의 일, 그리고
마침내 나의 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때문이다.
빈센트의 <피에타>를 보면 상처 입은 자가 바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심리학자 카를 융의 믿음을 떠올리게 한다. 나보다 훨씬 행복한 자의 위로가 아니라, 나보다 훨씬 고통받고 상처 입은 자의 고난에 찬
위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깊은 공감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20대의 빈센트는 슬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은 슬퍼할 줄 아는 한, 항상 기쁘다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에 가닿지 않는 죽음이나 슬픔은 없다고. 따라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망도 없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갈 뿐이라고. 빈센트가 가장 깊은 슬픔을 느낄 때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여길 때였다.
빈센트는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뛰어났듯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도 뛰어났다. 빈센트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지식을 키웠고,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길렀다.
"아무리 그래도 시작은 해야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 앞에서 아무리 무력감을 느낄지라도."
빈센트는 폭풍 속의 고요, 슬픔 속의 기쁨, 고통 속의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가였다. 자연이 선물하는 순감의 느낌에 충실했던 그는 '너무 빨리 그린다'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이에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하소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빨리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하지. 그들의 말을 믿지 마. 감정은 자연을 바라보는 진솔한 느낌이고,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엇이잖아. 나는 가끔씩 감정이 너무 격렬해져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림을 그리곤 해."
비록 시대를 앞서가 생전에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거장 반 고흐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은 아들이었고, 사랑받고 싶은 남자였다. 이 지독하리만큼 외로운 그의 삶을 버티게 해 준 것이 바로 그림이다. 그를
지지해주는 동생 테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가난한 형편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이어간 그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반 고흐의
작품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빈센트와 테오 형제는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으로 그 사랑은 두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이어지고 있다. 빈센트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해바라기, 카페테라스, 자화상을 포함한 빈센트의 작품 사진이 다수 수록되어 있고, 이와 더불어 그 배경 설명을 뒷받침하여 도슨트를 들으며 전시
감상하는 것처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은 빈센트를 만난다는 저자의 말처럼,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니 재미에 푹
빠졌던 시간이다. 빈센트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가 쏟아부었던 열정을 자아낸 그의 섬세한 터치를 더
관찰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