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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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끝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가 돈 드릴로 가 6년 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제로 K>는 2016년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주목할만한 책'에 선정되며 드라마 시리즈 제작에 결정되었다. 아울러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는 책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대담하고 도발적이며 절묘하다."라고 평했다.

 

소설 <제로 K>는 아버지 로스가 사랑하는 여인 아티스가 불치병에 걸리며 불멸을 위해 비밀 프로젝트에 투자자로 나서면서 작별 인사를 하라고 아들 제프 록하트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프가 컨버전스라는 비밀 연구소에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접견 장소로 안내받는데, 비현실적인 상황들을 제프의 시선으로 전개해 나간다. 컨버전스에서는 생체공학과 신기술이 발전할 미래까지 육체들을 냉동해 보존하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온몸의 털을 깎고 불필요한 장기와 뇌를 적출한 뒤 나체로 투명 캡슐에 보관하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죠. 하지만 죽는 것도 반드시 똑같은 방식이어야 할까요?" 삶과 죽음 그리고 불멸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데, 현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생명 연장은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미래 주의자들에게 피 묻은 돈을 줘라. 그러면 당신이 영원히 사는 것을 가능케 해 줄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머지않아.. 아니 어디선가는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소름 돋았다.

 

"우리는 고독의 힘을 배우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삶의 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재고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가 사이버 인간의 형태로 다시 깨어날 우주는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 것입니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아도 조력 자살을 통해 냉동 보존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사자(심부름꾼)이라 불리며 미래 세계의 선구자로 스스로를 인식한다.

 

어떤 운명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영예가 아닌가요?

우리가 여기서 원하는 게 뭘까요? 오직 삶뿐이에요.

 

아티스를 냉동 보존시킨 2년 뒤, 로스는 조력 자살을 통해 자신도 냉동 보존하기 위해 제프와 컨버전스를 재방문한다. 제프는 이들의 선택을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얼마 후 자신의 연인 에마의 입양아 스택이 총상으로 사망하며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 고민하게 된다.

 

<제로 K>는 현시대에 냉동 보존술을 통해 삶과 죽음을 탐구한 작품이라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60년간 작품 생활을 해온 저자 돈 드릴로의 내공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해 그리고 내 소명을 다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명의 연장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내려놓는 게 의미 있는 것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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