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여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저자의 『추사 김정희』는 '추사답사기' 같다. 
조선 후기를 공부하다보면 추사에 대한 평가가 이리 저리 갈린다.
그래서 과연 저자가 풀어낸 추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물론 저자가 이미 2002년에  추사 김정희에 대한 책 『완당 평전』을 낸 바 있다.
이 책은 『완당 평전』을 개정한 문학판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학술적 성격보다는 문학적 성격이 강해서인지 더 빨리 쉽게 읽혔다.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후기 북학파 학자이자 예인이었던 추사.
추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과 영조의 딸 화순옹주가 결혼했으니, 영조랑 추사는 촌수가 어찌되나...
음... 어렵다. 암튼 이렇게 따지고 보면 추사는 왕가의 외척이다.
 김정희는 충청도 예산 용궁리에서 출생했으며 본관은 경주다.
1808년에 결혼했으니... 스물 셋에 결혼한 건데... 음... 생각보다는 늦게 했다.
당시 사람들은 십대에도 결혼했다고 들었기에...

결혼한 이듬 해 추사는 생원시에 합격했다.
오호~ 결혼하고도 공부 열심히 했나보다.
예전에 나의 외할아버지도 20대 초반에 외할머니랑 결혼하고 그 상태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맨날맨날 외할머니랑만 있고 싶고, 학교가기 싫었다고 했었는데 추사는 어땠을까?  ^^;

생원시에 합격한 해 아버지를 따라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갔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당시 중국에 간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음... 역시 집 안의 포스가... ^^

----------------
본문 중에서
p.82
연경에서 돌아오면서 추사는 자신이 앞으로 추구할 학예의 길이 경학과 더불어 고증학과 금석학에 있다는 확신을 세웠다. 추사는 더 이상 지난날의 추사가 아니었다. 추사는 연경 학계와 학문과 예술을 긴밀히 교류했다. 엄청난 양의 책과 탁본과 서화가 연경에서 추사에게 들어왔고, 추사는 추사대로 조선의 자료와 선물을 보냈다.
 추사는 신사조의 도입에서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는 자기화, 토착화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외국에서 배운 지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요즘의 천류 해외파와는 차원이 달랐다. 고증학의 정신과 방법을 우리 현실에 적용했고, 거기서 이룩한 성과를 연경 학계에 전했다. 이런 식으로 추사는 조선 학계는 물론이고 중국 학계(국제사회)에도 기여했다.
------------------------

음... 이 부분에서 살짝 걸리는 건 요즘의 해외파를 '천류'라는 상당히 부정적인 단어로 확정한 점이다. 

과거 선비들 중에 한다~하시는 분들의 특기는 역시 독서.
추사 역시 그러한 계열에서 절대 빠지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p273
 아프고 외로운 귀양살이에서 추사는 참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학예에 열중했다. 조선시대 행형제도에서 유배형이 갖는 미덕은 결과적으로 학자들에게 책을 읽고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강제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의 학문은 18년의 유배생활이 낳은 결과였고, 원교 이광사의 글씨도 22년 유배의 산물이었으며 신영복 선생의 글씨도 19년 감옥생활에서 나왔듯이, 추사 역시 제주도에 유배된 9년간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
저자는 추사의 독서열을 다른 학자들의 예와 비유하며 다산 정약용에서부터 우리시대 신영복선생님까지 폭넓은 시대에 걸친 인물들을 거론했다.  음... 나도 논문을 마무리하려면 아무래도 스스로 유배를 보내야하나.... 고민고민.

저자는 추사의 생애 흐름을 이야기할 때 조선시대와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 사회상, 정치적 사건 등을 거론한다. 역시 다양한 시대에 걸쳐 박식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
본문 중에서 p398
 추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고 철저한 장인정신의 소유자였다. 추사가 글씨를 쓸 때 얼마나 피눈물 나는 장인적 수련과 연찬을 보였는가느 상상을 초월한다. 추사는 훗날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칠십 평생에 나는 벼루 열 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네."
-------------------------

와~~~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다니~~~
음... 근데 요즘 세대들은 손글씨를 안쓰니 나중에 자신의 노력을 회고할 때 노트북을 몇개 해 먹었네..
뭐 이런 말을 쓸까? ^^;

 6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좀 두꺼운 책이지만 추사 답사기같은 문학적 성격의 책이고 실린 도판의 화질이 매우 훌륭하여 이것을 보는 맛도 쏠쏠하기에 읽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역시 추사의 글씨체~~~ 멋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과 표지에서 이미 모든 걸 말해 주는 듯하다.
'뉴욕의 맛'이라...
몇 번의 여행과 출장으로 가 본 곳 뉴욕.
정확히 10년 전인 2008년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짐을 풀고는 대책없이 뉴욕으로 떠났었다. 한달 반 동안 맨하탄에 숙소를 렌트하고 정말 원없이 먹고 놀았다.
덕분에 퇴직금을 모두 탕진했지만, 후회없는 시간이었다.
뉴욕은 내게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좋다.

물론 항상 활기있고 재미있는 곳은 아니다.
어쩌다보니 뉴욕의 음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았다. 어느 대도시나 그러하 듯.
하지만 뉴욕(여기서 말하는 뉴욕은 맨하탄)은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이 책 『단지 뉴욕의 맛』은 정확하게 뉴욕의 멋짐과 허세를 보여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뉴욕의 패션관련 매스컴 분야를 꼬집었다면,
『단지 뉴욕의 맛』은 음식관련 매체 분야의 허상을 꼬집었다.
내 자신이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 맛에 대한 부분은 잘 읽히지 않았다. 저자 제시카 톰은 음식관련 블로거이고 요식관련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예일대학을 나왔다. 정확하게 소설 속 주인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고 볼 수 있다.
작가들의 첫 소설은 대부분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고 하더니 제시카 톰 역시 예외는 아니다.

주인공 티아 먼로는 예일대학을 졸업한 후 NYU의 음식학 석사과정에 막 입학했다.
학부시절부터 글쓰는 재주를 인정받았고 요리에 관심이 있는 그녀는 『뉴욕타임즈』의  푸드섹션 에디터, 레스토랑 비평가, 요리 책 저자인 헬렌 란스키를 동경하며 그녀의 수제자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본인이 희망하는대로 탄탄대로만을 걷는다면 굳이 소설이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희망하던 헬렌 란스키의 인턴이 되지 못하고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매디슨 파크 타번'에서 인턴과정을 하게 되면서 티아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만난 누군가때문에 꼬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스타 쉐프가 등장하고 TV를 켜면 온통 요리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쉐프는 단지 요리사가 아닌 마치 연예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에 열광한다.
이러한 추세는 전세계가 유사한 것 같다. 당연히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뉴욕은 그러한 흐름을 이끄는 선두주자다.
뉴욕의 맨하탄의 매력, 음식의 매력, 화려한 세상, 성공을 꿈꾸는 이들의 욕망을 적절히 버무린 이야기. 
500페이지가 되는 두터운 책이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읽지 않아도 되기에 비교적 빨리 읽혔다.
가볍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 읽으면 좋은 소설이다.
아쉽게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는 이야기 전개의 리듬감이 약한 것 같고, 예상했던 결말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밤에 읽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음식이야기로 가득한 이 소설을 밤시간에 함께하다가는 소설을 다 읽었을 무렵 당신의 몸은 상당히 동실동실해 있을 것이기에... ^^;

소설을 읽고 난 후 또 하나의 후유증.
음.... 다시 뉴욕에 가고 싶다.
맛난 뉴욕의 먹거리를 즐기고 싶다.
으.... 올해는 참아야하는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약간 의아했다.
이란인인 저자가 여섯살 때 프랑스로 이주한 후 프랑스인으로 성장하며 자랐고 이란인이자 프랑스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마리암 마지디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었다.
엥? 소설? 에세이 아닌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소설이라고 썼는지 알았다.
저자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마치 타자가 된 듯 소설처럼 때로는 시처럼 썼다.

 

 

240여 페이지로 이루어진 책은 정말 순식간에 읽혔다.
그런데 서평을 쓰려니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저자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내 짧은 글 안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야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이란의 테헤란에서 태어난 1980년에 태어난 마리암.  그녀는 여섯 살에 프랑스로 이주해서 지금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프랑스인이다.
마리암 마지디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자 만화작가인 마르잔 사트라피 역시 이란 출신인 프랑스인이다.
1969년생인 마르잔 사트라피는 마리암과는 띠동갑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인지 이란정권의 혼돈 시기를 바라 본 이 두 작가의 경험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끊임없이 내란이 일어난 혼란 속의 이란.
마치 우리나라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유와 민주를 추구하는 운동을 했고, 정부는 강력하게 이를 저지했다.
이란의 여인들은 히잡을 써야했고, 인권은 거의 말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1980년생인 마리암은 그때 막 태어났고, 공산주의를 꿈꾸었던 부모는 한창 피끓는 청춘의 20대였기에 학생운동 한 복판에 있었다. 하지만 1969년생이 마르잔은 좀 달랐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혼란한 이란에서 삶을 뒤로하고 잠시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황하다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

마리암의 부모는 우리도 주변에서 많이 보아 온 전형적인 급진 운동권 인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 아기인 자신들의 아이 마리암을 운동권의 연락 수단으로 활용할 만큼 급진파 운동권이었던 마리암의 부모. 
싸움이 길어지면 약자 쪽은 점점 지칠 수 밖에 없다.
오랜 민주화 투쟁. 그러나 빛은 점점 더 멀어져갔고.... 마리암의 부모는 결국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마리암을 데리고.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모의 뜻에 의해 삶의 터전을 바꿔야했던 아이 마리암.
내 주변에 비록 망명은 아니지만 부모의 의지에 의해 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언젠가 그들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만일 이민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
"글쎄... 어차피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으니 생각해 봤자지."  
마리암 역시 그런 기분이었을까?

p101
어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입을 다물고 싶다. 지어내든, 거짓말을 하든, 무엇이든 좋으니 다른 얘기로 돌리고 싶다. 다른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 설령 그 질문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놀라게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국적인 나만의 작은 세계에 취해 살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자부심의 정체는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이다. 하지만 그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낭만적인 망명자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이를 일깨우는 내면의 목소리는 늘 거북하다. 당신에게 이 가면을 드린다. 받으시라. 당신의 두 손에 내려놓는 이 가면을.

마르잔 사트라피를 통해 이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면
마리암을 통해서는 이란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들의 대해 보다 좀더 깊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란인의 얼굴을 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마리암에게 페르시아어는 어떤 의미인가?
이 소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반대편에 자리한 한 여성의 삶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도 상상하기 어렵고 쉽게 갈 수 없는, 하지만 신비한 고대 문명을 간직한 페르시아 여인들의 삶.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작가는 왠지 할머니와 끈끈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의 서문에 쓰여진 작가의 글을 보니 그런 네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 서문 중에서 -

"내게 스포츠의 묘미를 가르쳐주신
할머니 사가 배크만에게 바친다.
할머니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전국의 술집에는 제대로 된 드라이 마티니가 갖춰져 있고,
대형 화면으로 항상 윔블던 경기를 중계해주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어요." 

 

책의 제목은 이 책에 흥미를 끌게 만드는 큰 요소다.
이번 책 『베어타운』은 비록 내가 받은 4번째 가제본 책이었지만 이제까지 그냥 무지인 표지로 내 손에 들어온 가제본들과 달리 비록 가제본이지만 인쇄가 되어 도착했다.
눈 쌓인 마을. 별이 빛나는 밤. 그리고 마을 곳곳에 널려있는 하키도구들.
자~ 이제 이 이야기의 배경이 조금쯤 상상이 가지 않는가?

 


 

 

 빠른 현대사회 속에서 글도 빠르게 전개되고 이해되는 것이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많은 책들은 귀납식이 아닌 연역식으로 쓰여진다.
이 책 역시 1장에는 단 세줄 만이 적혀있고, 이것으로 이미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알려준다.
-----------------
p.11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걸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

베어타운(?) 제목을 본 순간 곰 마을?  곰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곰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하얀 북극곰을 연상하게 할만큼 추운 동네 하~얀 동네다.
(나는 하얀 곰을 연상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하키팀의 응원단명이 '불곰'이니 백곰은 아닌가보다.^^;) 
소설을 읽으며 작년에 다녀온 미국 북부지역이 떠올랐다.
아무리 차를 몰아도 지나가는 차조차 흔히 보이지 않는 마을. 
드 넓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라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다 안다.
음.... 난 그런 점은 좀 불편할 것 같다. --;
마을의 작은 공항에 10분 전에 도착해도 충분히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곳.
베어타운은 그보다도 더 작은 마을 같았다. ^^
하지만 이 작은 도시 베어타운에도 소위 말하는 상류층, 중산층, 저소득층 서민들이 있다.
거주 지역에 따라 고급주택가인 하이츠, 중산층 연립주택이 모인 베어타운 중심가, 저소득층의 임대아파트 지역인 할로.  사는 지역과 생활 형편은 다르지만 베어타운은 역시 하키라는 스포츠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곳이다.  
 
베어타운도 한 때는 번화한(?)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자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소도시가 그런 과정을 거쳐 낙후하듯 베어타운 또한 젊은 일꾼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났고, 마을은 점점 쇠락해져갔다.

그 곳에 남은 사람들.
마을에서 유일무이한 희망이자 이야깃거리인 하키.
다른 지역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 전국에서 가장 큰 청소년 대회에서 베어타운의 청소년팀은 준결승전에 참가한다. 마을에서는 이보다 큰 뉴스는 없다. 
작은 마을이다보니 마을 사람 한사람 한사람의 캐릭터가 살아있다.  마치 가족처럼.
   
베어타운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모습들 속에 저자는 종종 인생의 진리가 녹아든 말을 한다.

p.88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p.129
결혼 생활은 연수가 쌓이면 복잡해진다.

p.192
외로움은 보이지않는 병이다.

장장 565페이지 50쳅터에 달아는 비교적 두터운 소설이지만, 단락이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고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 심리상태 등이 이해하기 쉽게 묘사되어있기에 비교적 빨리 읽히는 소설이다.
이 또한 프레드릭 배크만표 소설의 특징일 것이다.

자~ 처음 방아쇠를 쏜 청년은 왜 쏘았을까? 어떻게 되었을까?
추리소설은 아니어서였을까? 소설을 읽는 동안 순간순간 처음에 알려준 결과를 잊어버리고 단지 베어타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추리소설이 환영받아서일까?
작가층이 비교적 탄탄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추리소설의 대부같은 존재 마츠모토 세이쵸까지. 물론 그 중 동시대 각광받는 추리소설가이자 이 소설을 쓴 이사카 고타로를 빼 놓을 수는 없다.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기 전 가제본으로 받아서 읽기 시작한 소설 『화이트 래빗』.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음... 토끼가 다 하얗지 않나? 흰토끼를 굳이 영어로 화이트 래빗이라고 한 이유는 뭘까?"였다.

서평을 작성하기로 마음 먹은 날, 마치 내마음을 알았는지 출판사로부터 오리지날 책이 도착했다.
요런 표지로 장식되었구나~

 

 

 

일본어판 표지가 뭔가 쓰산~했다면 한국어판 표지는 참 따뜻하다.

 

 

 

저자는 자신이 10대 시절에 읽은 아이라 레빈의 소설 『죽음의 키스』를 읽으며 누웠다 벌떡!일어날 정도로 흥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독자가 읽다가 깜짝 놀랄 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었고 그런 마음으로 쓴 작품이 『화이트 래빗』이라 했다.
솔직히 이 소설을 읽으며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누워서 소설을 읽지 못하기에... ^^;

벌떡!은 아니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책에서 눈을 때기가 힘든데 때야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내려야할 때, 책 읽고 있는데 엄마가 부를 때... 시간에 쫓겨 일해야 할 때... --;

이번 『화이트 래빗』역시 센다이가 무대배경이다.
이사카 고타로의 고향은 원래 도쿄부근의 치바현 마츠도시다. 나 역시 한때 잠깐 살았던 곳. 마츠도.
치바현내에서는 비교적 번화한 곳이다. ( 특급 전철의 정거장이 있으니... ^^;)
하지만 내겐 힘든 기억의 장소다. 그때 좀 이래저래 몸고생 맘고생 하던 시절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모두 추억의 장소가 되었지만.

전업작가가 되고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의 고향인 치바가 아니라 센다이로 이주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배경 센다이에 대해 상당한 애정이 느껴진다. 

일본인들의 성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 2글자의 한자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 글자, 세 글자도 있다.
여하튼 뜻글자인 한자로 이루어져 있고 글자 수도 많다보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뜻으로 해석한 소재가 종종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역시 등장인물의 이름에 담긴 색상을 이야기했다.

 이 소설  『화이트 래빗』의 주인공 이름은 '우사기타 다카노리'다.
우사기타.  일본어 원서를 아직 보지 못했기에 '우사기타'의 한자를 모르겠지만 지명으로 본다면 이렇게 '宇佐北' 쓰지 않을까 싶다. 한자는 전혀다르지만 '우사기(兎)'는 일본어로 '토끼'를 뜻한다. 그러니 주인공의 이름에서 토끼를 연상할 수 있다.

시작은 센다이에서 발생한 인질농성사건으로 시작한다. 일명 '흰토끼 사건'. (비록 소설 속 화자 말고는 아무도 이렇게 부르지 않지만... ) 그러나 단순한 인질사건만이 아니다.
마치 천문학자와 점성술사처럼 오리온좌에 대해 끝없이 설명하는 남자 오리오 오리오.
인질이 된 유스케와 그의 어머니.
인질범 우사기타.
나쓰노메 과장을 비롯한 형사들.
그리고 이나바... 구로사와...
소설은 시작부터 복선을 깔아주는 '레 미제라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과연 5년에 걸쳐 읽을 만 한가? ^^;

추리소설답게 중간중간 복선이 잘 깔려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처럼 위트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이야기의 짜임새를 섬세하게 몇번씩 얽어 놓는 재주가 뛰어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는 참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면,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작가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