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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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저자의 『추사 김정희』는 '추사답사기' 같다. 
조선 후기를 공부하다보면 추사에 대한 평가가 이리 저리 갈린다.
그래서 과연 저자가 풀어낸 추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물론 저자가 이미 2002년에  추사 김정희에 대한 책 『완당 평전』을 낸 바 있다.
이 책은 『완당 평전』을 개정한 문학판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학술적 성격보다는 문학적 성격이 강해서인지 더 빨리 쉽게 읽혔다.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후기 북학파 학자이자 예인이었던 추사.
추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과 영조의 딸 화순옹주가 결혼했으니, 영조랑 추사는 촌수가 어찌되나...
음... 어렵다. 암튼 이렇게 따지고 보면 추사는 왕가의 외척이다.
 김정희는 충청도 예산 용궁리에서 출생했으며 본관은 경주다.
1808년에 결혼했으니... 스물 셋에 결혼한 건데... 음... 생각보다는 늦게 했다.
당시 사람들은 십대에도 결혼했다고 들었기에...

결혼한 이듬 해 추사는 생원시에 합격했다.
오호~ 결혼하고도 공부 열심히 했나보다.
예전에 나의 외할아버지도 20대 초반에 외할머니랑 결혼하고 그 상태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맨날맨날 외할머니랑만 있고 싶고, 학교가기 싫었다고 했었는데 추사는 어땠을까?  ^^;

생원시에 합격한 해 아버지를 따라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갔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당시 중국에 간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음... 역시 집 안의 포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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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p.82
연경에서 돌아오면서 추사는 자신이 앞으로 추구할 학예의 길이 경학과 더불어 고증학과 금석학에 있다는 확신을 세웠다. 추사는 더 이상 지난날의 추사가 아니었다. 추사는 연경 학계와 학문과 예술을 긴밀히 교류했다. 엄청난 양의 책과 탁본과 서화가 연경에서 추사에게 들어왔고, 추사는 추사대로 조선의 자료와 선물을 보냈다.
 추사는 신사조의 도입에서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는 자기화, 토착화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외국에서 배운 지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요즘의 천류 해외파와는 차원이 달랐다. 고증학의 정신과 방법을 우리 현실에 적용했고, 거기서 이룩한 성과를 연경 학계에 전했다. 이런 식으로 추사는 조선 학계는 물론이고 중국 학계(국제사회)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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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부분에서 살짝 걸리는 건 요즘의 해외파를 '천류'라는 상당히 부정적인 단어로 확정한 점이다. 

과거 선비들 중에 한다~하시는 분들의 특기는 역시 독서.
추사 역시 그러한 계열에서 절대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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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p273
 아프고 외로운 귀양살이에서 추사는 참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학예에 열중했다. 조선시대 행형제도에서 유배형이 갖는 미덕은 결과적으로 학자들에게 책을 읽고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강제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의 학문은 18년의 유배생활이 낳은 결과였고, 원교 이광사의 글씨도 22년 유배의 산물이었으며 신영복 선생의 글씨도 19년 감옥생활에서 나왔듯이, 추사 역시 제주도에 유배된 9년간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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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추사의 독서열을 다른 학자들의 예와 비유하며 다산 정약용에서부터 우리시대 신영복선생님까지 폭넓은 시대에 걸친 인물들을 거론했다.  음... 나도 논문을 마무리하려면 아무래도 스스로 유배를 보내야하나.... 고민고민.

저자는 추사의 생애 흐름을 이야기할 때 조선시대와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 사회상, 정치적 사건 등을 거론한다. 역시 다양한 시대에 걸쳐 박식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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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p398
 추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고 철저한 장인정신의 소유자였다. 추사가 글씨를 쓸 때 얼마나 피눈물 나는 장인적 수련과 연찬을 보였는가느 상상을 초월한다. 추사는 훗날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칠십 평생에 나는 벼루 열 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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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다니~~~
음... 근데 요즘 세대들은 손글씨를 안쓰니 나중에 자신의 노력을 회고할 때 노트북을 몇개 해 먹었네..
뭐 이런 말을 쓸까? ^^;

 6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좀 두꺼운 책이지만 추사 답사기같은 문학적 성격의 책이고 실린 도판의 화질이 매우 훌륭하여 이것을 보는 맛도 쏠쏠하기에 읽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역시 추사의 글씨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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