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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농담을 조금 섞어, 세상에는 믿고 볼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국민배우 송강호 씨의 영화,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연주, 그리고 창비의 책입니다. 「꽃달고 살아남기」 「내 이름은 망고」 등등의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 나온다는 신간도 저에게 그런 기대를 하게 했고, 마지막 책장을 덮자 역시 창비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제본 책을 받아봤던지라 아무런 이미지 없이 백지상태로 책을 펼쳐봤는데, 첫 10페이지가량을 읽자마자 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이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사진결혼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저는 한국사를 배울 때 언뜻 선생님이 가르쳐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도 교과서에 나와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곁가지로 들려주신 이야기였습니다. 조선에서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간 조선 사람들이 조선인 신부를 구하기 위해 자기 사진을 보내서 아내를 구하고, 여자도 사진을 보내서 성사되는 결혼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면 좋았을 테지만, 남자 쪽에서 현재 사진이 아닌 몇십년 전 젊었을 때 찍었던 사진을 보내거나, 자기 것이 아닌 자동차나 집을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 ‘사기’사진 결혼식에 반 친구들이 모두 경악했던 기억에 납니다. 하여튼 사진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뒤로 잊어버렸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이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엄청 생생하게요.
책은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조선에 사는 강버들이라는 여자아이는 ‘포와’에 시집가면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이끌려 하와이로 가게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 부잣집 딸이지만 과부가 되어버려 손가락질당하는 친구 홍주,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돌을 맞는 아이 송화와 함께요. 이 셋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와이로 먼 길을 떠납니다. 부푼 마음을 가득 안고 내린 땅 하와이였지만, 그들을 맞는 것은 사진과는 다른, 부자도 아니고 잘생기지도 않은 늙은 신랑이었습니다. 주인공 버들이의 남편 될 사람, 서태완만 빼고요. 버들이는 태완이 사진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어서 안심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협소한 태완의 형편에 조금 실망합니다. 그래도 버들이는 낯선 곳 하와이에서 남편과 태완과 잘 지내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태완은 무뚝뚝하기만 하고, 어쩌다 아주머니들의 수근거림을 우연히 들어보니 태완이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가족, 친구와 헤어지고 데면데면한 남편과 결혼하게 된 버들은 낯선 땅 하와이에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뒤의 줄거리는 다 설명하면 재미없어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씁니다. 뒤의 내용은 책 속에서 확인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태완이 한 선택, 버들의 자식들, 버들의 친구 홍주, 송화의 인생을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또다른 묘미는 실제 역사를 등장시켜서 이야기가 더 실제처럼 느껴지는 데에 있습니다. 이승만과 박용만이 갈라선 사건, 박에스더(작중에서는 결혼 전 이름인 김에스더)를 만난 것, 윤치호(결국 친일파가 되었던)에 대한 언급이 있던 것,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 그것입니다. 작품 실제 인물과 사건들의 등장은 옛날 역사 속 어딘가에 버들의 가족이 정말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래 문단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버들의 자식의 시선으로 전개된 에필로그도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조국을 위해 전쟁을 나갔었던 아버지 태완과 자신의 시민권을 위해 전쟁에 나가려고 한다는 버들이 아들의 대립을 통해 옛날 세대와 현재 세대의 차이도 극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 세대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지요. 작중에서 펼쳐지는 모든 사건들은 너무나 생생하여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료조사가 풍부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뒷페이지 참고자료를 보면 책을 쓰기 위해 작가님이 참고한 자료들도 한가득이더군요. 작가님이 정말 섬세하게 글을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버들이의 파도 같은 인생을 다 읽고 보고 난 후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왠지 <국제시장> 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진한 인생 이야기를 읽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어서 영화 판권이 꼭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로 나온다면 천만영화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만큼 재밌습니다.
비슷한 제목의, 「알로하, 나의 신부들」 라는 책이 있던데, 작가님이 의도하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뜻 줄거리를 살펴보니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같고, 불합리한(!) 결혼을 한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더군요. 진짜 의도한 것이 맞다면, 판타지나 다름없는 로맨스 소설을 뒤튼다는 현실적인 위트있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버들이의 삶은 판타지라기보다는 현실이었으니까요.
일제 강점기 하와이 사진결혼이라는 참신한 소재와, 믿고 보는 이금이 작가의 문장이 돋보이는 「알로하, 나의 엄마들」,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