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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산책 -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의 여행 철학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편역 / 지콜론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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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월의 따뜻한 초저녁에 태어났다. 그 시간의 온도는 평생 무의식적으로 사랑하고 추구해 온 것이며, 그것이 없으면 고통스럽게 그리워했다. 추운 나라에서는 절대 살 수 없었고, 내 인생의 모든 자발적 여행은 남쪽으로 향했다.”



(pp.233-238)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를 여행으로, 특히나 예술 여행으로 이끄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왜 해마다 수백 마일을 이곳저곳으로 여행하며, 더 풍요로운 시대의 건축물과 그림 앞에서 기쁜 마음으로 서 있고,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이방인의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걸까. 왜 우리는 기차와 배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외국 대도시 거리의 풍경을 홀로 관찰하는 걸까. 한때 나는 이것이 일종의 배움에 대한 열망과 교양을 쌓으려는 욕구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오래된 성당의 프레스코화에 대해 노트를 가득 채웠고, 식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고대 조각상의 사진을 샀다. 그러다가 이에 지쳐 풍경과 이국적인 민속 문화만이 나의 관심을 끄는, 더 가난한 나라로의 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 수수께끼같은 여행 충동이 일종의 모험심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 중에 겪은 일은 모험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잘못 배송된 가방, 도난당한 외투, 뱀이 있는 방, 모기가 들끓는 침대 등을 모험으로 본다면 모를까.

아니다, 이것도 정답이 아니다. 지금은 교양에 대한 갈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도시 전체와 큰 성당들, 큰 박물관들은 그냥 지나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내가 우연히 발견하고 만나는 것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집중적으로, 더 섬세하게 즐기고 있다. 여행의 모험성에 대한 믿음도 이제는 사라졌지만 15년 전이나 10년 전, 혹은 5년 전보다 결코 더 적게 여행하거나 혹은 줄어든 열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더 지적으로 변모하거나, 흐릿하게 경험하는 삶의 일부를 대체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나 이는 순수한 미적 충동의 발현을 대체한다. 이 충동을 우리 민족에게선 거의 사라졌지만, 그리스인들과 독일인들, 그리고 위대한 시대의 이탈리아인들은 가지고 있고, 아시아 어디에서나 여전히 찾아 볼 수 있다. (...)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에도 흐려지지 않는 순수한 관찰, 즉 눈과 귀, 코, 촉각이 스스로 충분해지는 이러한 훈련. 이것이 바로 우리 중 더 섬세한 사람들이 깊이 그리워하는 낙원이다.

여행 중에 우리는 이를 가장 잘, 가장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다. 미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언제든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할 집중력을,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최소한 이런 구속에서 벗어난 날들과 시간 동안에는 얻을 수 있다. 이때는 고향과 일상의 어떤 걱정이나 업무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

이런 여행의 기분 속에서 우리는 집에서는 거의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몇 점의 훌륭한 그림 앞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조용하게 감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건축물의 조화로운 울림에 매료되어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일 수 있으며, 풍경의 선을 깊이 있고 즐겁게 따라갈 수 있다. 그때 우리의 욕망, 관계, 소망, 걱정의 흐릿한 형체는 도리어 우리에게 그림이 된다. 거리와 시장의 삶, 물과 땅 위의 햇빛과 그림자의 유희, 나무 꼭대기의 형태, 동물의 울음소리와 움직임,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행동 등이 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내면에서 이것을, 즉 목적 지향적인 삶으로부터의 해방을 찾지 않는 사람은 공허하게 돌아올 것이며, 기껏해야 교양의 지루만 약간 채우고 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이 순수한 관찰과 이타적 수용을 향한 미적 충동에는 더 넓고 높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이는 단순히 어두운 쾌락에 대한 갈망일 뿐일까. 단지 무시된 힘과 욕구, 숨겨진 배고픔과 숨겨진 에로티시즘, 숨겨진 분노, 숨겨진 약점에 대한 복수와 경고의 고통일 뿐일까. 그런데도 왜 만테냐의 작품을 보는 것이 아름다운 도마뱀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일까. 왜 나에게는 지오토나 루카 시뇨렐리가 그린 작품이 있는 예배당에서 보내는 1시간이, 해변에서 보내는 1시간보다 더 소중할까. 근본적으로 우리가 찾고 갈망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인간적인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볼 때, 우연한 현실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확인한다. 내가 보는 능력과 선을 느끼는 능력을 즐긴다. 아름답고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결코 문화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경을 통해 내 감각과 생각을 시험하며 문화를 연습하고 사랑하며 즐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감사하며 기꺼이 예술로 돌아간다. 그래서 대담한 건축물, 아름답게 그려진 벽, 훌륭한 음악, 가치 있는 그림이 결국 정복되지 않은 자연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 모호한 탐색에 대한 더 큰 만족을 준다.

나는 이 미적 충동이 추구하는 것이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나쁜 본능과 습관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최선의 것에 대한 확신, 인간 정신에 대한 우리의 비밀스러운 믿음의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에서의 편안한 해수욕, 즐거운 공놀이, 용감한 눈 속 산행이 내 육체적 자아를 확인시키고, 그 최선의 욕망과 예감을 인정하며, 그 욕구에 건강함으로 응답하듯이, 순수한 관찰에서는 인간 문화의 거대한 보물, 정신적 업적이 인류 전체에 요구하는 믿음에 응답한다. 티치아노의 그림이 내 예감을 실현하고, 내 안의 충동을 확인하고, 꿈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면, 내가 티치아노의 그림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 생각에 우리는 여행을 통해 낯선 것을 경험하고, 인류의 이상을 가장 깊은 곳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모차르트의 음악, 토스카나의 대성당이나 그리스 신전이 우리의 존재를 깨닫고 심화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 문화의 의미, 깊은 통일성, 그리고 불멸성에 대한 갈망을 여행 중에 특별히 깊게 느낀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핮는 순간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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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인간의 최후
세컨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5년
<마지막 목격자들>
<체르노빌의 목소리>
2015년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둘 다 똑같이 비참하다. 수용소가 일깨워준 교훈은 그 둘이 함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는 점에서 형제와도 같다는 것이다.” _다비드 루세, <우리 죽음의 날들>

“악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한 첫번째 책임은 악의 눈먼 수행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정신적으로 방관한 선의 추종자들에게 있다.”_표도르 스테푼,<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못한 일들>



어느 가담자의 수기

‘호모 소비에티쿠스(Homo Sovieticus)‘
소보크 : 소비에트 시대의 발상, 사고방식, 행동 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속어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고, 우리만의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이 있고, 우리만의 영웅과 순교자들이 있다.우리는 죽음과도 특별한 관계로 얽혀 있다. .... ’총을 쏘다‘ ’사살하다 ‘제거하다’ ‘총살하여 처단하다’같은 문장이거나 아니면 사실상 ‘실종’을 뜻핟는 소비에트식 표현들, 예를 들어 ‘체포’ ‘외부 연락이 일절 불가한 10년형’(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총살형을 선고받은 숙청 대상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정부에 문의해올 경우 대외적으로 전달되었던 형벌의 명칭. 당시는 총살 및 숙청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자 ‘외부 연락이 일절 불가한 10년형’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 대부분의 수감자는 이미 총살형에 처해진 후였다.) ‘이주’ 등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백만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한 우리에게 과연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증오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굴라크(스탈린시대 강제노동수용소)와 끔찍한 전쟁이 낳은 사람들이고, 집단농장화, 탈쿨라크화(쿨라크, 즉 부농 계층을 소멸시키고자 스탈린이 추진했던 정책. 부농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함.), 강제 이주 정책 등을 지나온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이 사회주의였고, 바로 우리네 일상이었다.
나는 가정 속에 나타난 사회주의 또는 내부적으로 나타난 사회주의의 역사적 파편과 부스러기를 모아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나는 항상 인간, 하나의 인간이라는 작은 공간에 매료되곤 한다. 사실 모든 역사가 그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

내가 찾는 사람들은 사상에 유착되어서 그 사상을 뽑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자기 안에 심어놓은 사람들, 즉 국가를 우주로 여긴 나머지 국가를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인생까지 갖다 바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위대한 역사에서 헤어날수도, 그 역사와 이별할 수도 없어서 다른 방식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사소한 것을 가장 위대하게 여기듯이 사적인 것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냥 살아본 적이 없다.
전쟁에 길들여진 사람들
우리는 항상 전쟁중이거나 전쟁을 준비해왔다.
‘전시 심리’
우리는 모두 같은 공산주의의 기억을 갖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소련의 고르바초프 정권이 추진한 사회주의 개혁정책의 기본 노선. 러시아어로 ‘페레’는 다시, ‘스트로이카’는 건축을 의미. 개혁, 재건을 의미함. 대내적으로는 민주화와 자유화를, 대외적으로는 긴장 완화를 기조로 삼음.)가 시행된 이후 우리 모두는 기록보관소의 개방을 애타게 기다렸다.

많은 이들이 적을 마주하듯 진실을 보게 되었다. 진실과 함께 찾아온 자유도 적대시했다.

“우리는 우리 조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라. 매일 보고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니까?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서 그것을 알아봐야 해. 조만간 모든 걸 알게 되겠지. 아마도 경악을 금치 못할 거야.”

소비에트인을 네 세대로 분류
스탈린 세대 / 흐루쇼프 세대 / 브레즈네프 세대 / 고르바초프 세대

제1차 체첸전쟁 당시, “난 아들이 죽게 내버벼둘 수 없어요. 내 아들이 남을 죽이는 것도 싫어요.”
국가는 이미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그런 자유로운 인간은 많지 않았다. 사실 주어진 자유 때문에 성을 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예전엔 아침에 <프라우다>(소련의 공산당 기관지) 신문 하나만 읽고 나오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었는데,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모두가 자신을 희생자로 여겼지 가담자로 생각하진 않았다.

모두가 자유에 흠뻑 취해 있엇찌만, 정작 자유를 누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도대체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식탁에 둘러앉아 습관적으로 정부를 욕할 때나 자유가 있었다.
옐친은 러시아를 변화시켰다는 이유로, 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20세기 전체를 송두리째 바꾼 대가로 욕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이라곤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밖에 없었다.

옛다, 자유를 받아라! 과연 우리는 이런 자유를 기다려왔던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다. 전장에 나가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건 체호프의 소설 같은 인생이었다. 아무 역사가 없는 인생. 생명이라는 가치, 생명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가치가 무너져내렸다. 대신 새로운 꿈들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집을 짓고, 좋은 차를 사고, 구스베리나무를 심는 등의 꿈이. 자유란 것은 알고 보니 러시아에선 줄곧 모욕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희생한 것이었다. 자유란 ‘위대하신 소비 전하’의 등장이었고, ‘어둠의 왕’이 출현한 것이었다. 인간의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우리가 그동안 대략적으로만 상상했던 욕구와 본능이라는 어둠의 왕.

공동체는 폭파되었고, 생명체는 수백만 개의 작은 조각, 세포, 원자로 쪼개졌다.

아버지들은 자유란 공포가 부재할 때를 가리키며, 8월 쿠데타 세력을 제압했던 사흘이 그 자유에 해당한다고 대답했다. 또 식료품 가게에서 햄 백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열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보다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했다. 얻어맞지 않고 사는 것이 자유지만, 맞지 않고 사는 세대는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고, 러시아인은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러시아인에게는 명령자와 채찍이 필요할 뿐이라고도 했다.
자녀들은 자유란 사랑이며, 내적 자유는 절대적 가치라고 했다. 자유란 스스로가 자신의 소원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라고도 말했다. 또한 자유란 돈을 많이 갖는 것이며,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유란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살아갈 때를 말하는 것이고, 자유란 정상적인 것이라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 자유에 대한 논쟁
“그렇게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빌어먹을 선과 악을 깨우칠 필요가 있을까?”
자유냐 삶의 평안과 안녕이냐, 고통스러운 자유냐 자유 없는 행복이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대심문관이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 그리스도에게
”당신은 그(인간)를 너무도 존중한 나머지 오히려 인간을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았소. 당신은 인간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어. 당신이 인간을 조금 덜 존중했다면 요구사항도 그만큼 적었을 테니, 오히려 그것이 사랑에 더 가까운 행동이었을 거요. 왜냐하면 인간이 지닌 짐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을 테니까. 인간은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요. 그토록 버거운 선물을 받을 힘이 없었던 나약한 영혼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이오?“
”이 불행한 존재에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유라는 선물을 한시바삐 넘겨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괴롭고 끈질긴 걱정거리란 말이오!“

“요즘 학생들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불평등, 가난, 뻔뻔한 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고 뼈저리게 느낀 아이들이에요. 학생들의 눈에 약탈당한 국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부모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비친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은 극단적인 사상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자신들만의 혁명을 꿈꾸는 거죠. 레닌이나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지 붉은 티를 입고 다니면서요.”

소련에 대한 동경
신스탈린 숭배자들의 출현
‘나시’ : 우리들의 것이라는 뜻의 청년 민주주의 반파시스트 운동단체. 나시의 목표는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러시아의 건설’이다. 푸틴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어 푸틴의 홍위병으로도 불림.

1971년의 혁명 직전 알렉산드르 그린은 이렇게 썼다.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를 그만둔 것 같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가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부> 아포칼립스의 위로

길거리에서 나눈 잡담과 부엌에서 나눈 대화(1991~2001)

바보 이반과 황금 물고기에 대하여
“우리 러시아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몽상가예요! 정신은 열심히 일하고 괴로워하는데 반해 실제 행동은 더디거든요. 정신에 온 힘을 쏟느라 행동으로 옮길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일은 항상 제자리를 맴돌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거나 책 읽기를 좋아해요. 그러니 러시아인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은 독자, 그리고 관객인 셈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러시아인은 근거 없이 자기네 민족을 특별하고 유일하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우리 주변에는 오블로모프(러시아 소설가 곤차로프의 대표작 <오블로모프>의 주인공. 관대하지만 우유부단한 귀족 청년으로, 박력 있고 실리적인 친구 슈톨츠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만다. 오블로모프처럼 허무감에 빠지고 무기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사람들을 일컫는 대명사.) 투성이예요. 모두가 소파에 드러누워 기적을 바라고 있죠. 반면 슈톨츠는 없어요. 러시아인들은 자기들이 아끼는 자작나무숲과 벚꽃동산을 베어버렸다는 이유로 슈톨츠를 증오해요. 그곳을 밀어낸 뒤 공장을 짓고 돈을 번다는 이유로요. 우리들 사이에서 슈톨츠는 타인이에요.”

러시아의 부엌
흐루숍카같은 부엌
식당, 응접실, 사무실, 연단, 집단심리치료의 장소
‘부엌에서의 삶’
정부를 욕할 수 있었던 공간
아이디어, 공상에 가까운 프로젝트들이 떠오르는 공간
유머 제조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읽는 사람들이고, 반공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이해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가난한 것도 부끄럽고 취미로 운동 하나 안 하는 것도 부끄러운 시대요. 한마디로 쫓아가기가 벅차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엔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오. 자본주의가 터진 봇물처럼 쏟아집디다. 90루블의 가치가 10달러 정도로 곤두박질했지. 그 돈으로 살아갈 방도가 없었기에 난 부엌에서 길거리로 나섰소.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보니 우리에게 사상이란 게 없었다는 것을, 그저 항상 둘러앉아 계속 떠벌떠벌 말만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리고 어디선가 전혀 다른 유의 사람들이 출현했소. 산딸기색 자켓을 입고 굵직한 금반지를 낀 젊은이들이었소.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말해주었소. 돈이 있으면 인간이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법칙을. 내가 헤겔 전집을 읽은 사람이라는 걸 대체 누가 알아준단 말이오? ’인문학도‘라는 말은 질병의 진단명같이 들렸지.”

“이제는 감정에 허비할 시간이 없는 시대요. 모두 돈을 벌어야 하니까. 돈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폭발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오.”


위대한 역사냐, 평범한 삶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들에 대하여
-사회주의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사 속에서 살도록 강요했어요. 위대한 그 무언가에 참여하게 했다고요.
-제기랄! 우리는 너무 영적이고, 너무 특별하다니까.
-러시아는 위대하거나 아예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어. 우리는 강한 군대가 필요해.
-난 사상을 가지고 살았던 옛사람들에게 질투가 나요. 우리는 아무런 사상 없이 살고 있으니까요. 나는 위대한 러시아를 원해요! 난 위대한 러시아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런 나라가 존재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항상 고통에 대해서 말을 하죠......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면서요. 우리가 보기에 서양 사람들은 그래서 바보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처럼 직접 고통받지 않으니까요. 그들에게는 모든 종류의 종기 치료제가 있어요. 우리들은 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전쟁을 치를 때는 시체로 천지를 덮었어요. 맨손으로 체르노빌에서 핵연료를 퍼냈지요. 그랬는데, 지금은 무너진 사회주의의 폐허 위에 앉아 있어요. 전쟁이 끝난 뒤의 모습처럼 우리는 얻어터지고 기진 맥진한 상태예요.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요. 고통의 언어요.
이런 주제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해본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대놓고 비웃더군요. ‘우리는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은 그런 것과는 뭔가 달라요.’ 얼마 전까지 우리의 세계였던 그 세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벌써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하나의 문명 전체가 쓰레기장에 버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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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진짜 이상한 인간이다…ㅎㅎㅎ



단편집을 읽을 때 이소라의 노래를 bgm 삼아 들었는데
이소라의 track9의 가사가 체호프의 이야기들과 같은 맥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소라_track9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서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가 생각나기도.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들.
무의미한 선율 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

아그뇨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쿠즈네초프의 딸인 베라였다. 이 스물한 살 난 처녀는 늘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지만 재치 있는 여성이었다. 공상을 즐기고 하루 종일 누워서 손에 잡히는 책은 무엇이든느긋하게 읽으며 따분해하고 우울해하는 아가씨, 이런 아가씨들은 대체로 아무렇게나 차려입는 법이다. 자연으로부터 미적인 취미와 본능을 부여받은 이 아가씨들에게 부주의한 옷차림은 오히려 특별한 매력을 가져다준다. - P93

「이런 멋진 날씨에 떠나고 싶지 않군요! 낭만적인 달과고요함, 모든 것이 갖추어진 훌륭한 저녁입니다. 아세요, 베라 가브릴로브나? 저는 이 세상에서 이십구 년을 살아왔지만 로맨스 한번 없었답니다. 평생 낭만적인 사건 한번 겪지 못해서 은밀한 만남이나 오솔길에서의 한숨이니 입맞춤이니 하는 건 귀동냥으로나 알 뿐이에요. 한심하지요! 도시에서 자기 방에 앉아 있을 때는 그런 결함을 깨닫지 못하지만 이런 신선한 공기 속에서는 절실하게 느껴지는군요.......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왜 그렇게 사세요?」 - P96

<・・・・・・ 그리고 그는 죽었다>는 체호프의 고정관념과도 같은 문장이다. 유머소설이든 진지한 소설이든 간에, 체호프는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서 결코 머뭇거리지 않는다. 마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손쓰던 의사가, 환자가 죽자 그 얼굴에 시트를 덮어버리고 방을 나서듯 체호프는 망설임 없이 죽은 주인공으로부터 시선을거두곤 하는 것이다. 하긴 체호프 자신이 의사이기도 했다. 비록 짧은 분량이긴 하지만 삶의 찰나성, 그 환희와누추함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 이 작품은 체호프 문학의 특성이 극도로 축약되어 있는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_작품해설 중 - P193

체르뱌코프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아무것도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로 그는 문을 향해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흐느적흐느적 밖으로 걸어나갔다.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 P12

나의 병은 삶에 대한 공포지요. 풀밭에 누워서, 어제 막 태어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딱정벌레를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그 벌레의 삶이 끔찍한 일로 가득 찬 것 같고 그 미물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돼요. - P20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각들을 내가 얼마나 겁내고 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일에 몰두합니다. 밤에 깊이 잠들기 위해서 농장 일로 자신을 혹사시키는 거죠. 애들과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문제 될 일이 없겠지요. 하지만 이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 P22

그는 삶이 무섭다고 말했지.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삶에 대해 격식을 차리지 말라고. 삶이 나를 짓누르기 전에 네가 먼저 삶을 부숴버려. 삶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취하란 말이야.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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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너무 흔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정작 그 기본 원리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막연할뿐이다.

최근 소비 습관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디에 어떻게 돈을 써야 잘 썼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장착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선 ‘내가 어떤 소비자가 될 것인가’하는 고민이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결정할만큼 소비는 삶에서 중요한 이슈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 포인트>
소비와 소유에 대하여
돈을 쓰는 행위 뒤의 심리에 대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하여
진정한 경제적 자유에 대하여
개인적인 생각 정리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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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목표 중 하나는 집밥 잘 챙겨먹기다.

집밥을 꾸준히 잘 해먹으려면!
주간 식단 계획을 세워, 그에 맞는 재료를 적절한 양만큼 구매하고, 그때 그때 해먹기 편하게 정리해 두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소한 아침이나 저녁 한 끼 정도는 내 손으로 요리하고 가족들과 둘러 앉아 먹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때로는 신성하게까지 느껴진다.

앞으로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복직하기 전까지 나만의 집밥 차려먹기 노하우를 처곡차곡 쌓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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