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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가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다. 첫 이틀은 함께 30분을, 오늘은 교실 입구에서 인사를 한 뒤 바로 나왔다. 아침에 주어진 30분간의 자유시간. 빠른 걸음으로 제일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았다. 혹시나 연락이 올까 휴대폰을 꺼내두고 3분마다 시간을 확인하며. 대략 10분 정도 남았을 때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슬쩍 교실 안을 들여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울고있다. 들어갈 때부터 이미 많은 친구들이 울음바다였는데, 다들 우니까 자기도 울어야 하나보다, 슬퍼해야 하나보다 하고 따라 운 것 같다. 둘째는 평소에 크게 울지 않는다. 교실로 들어가 선생님께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이든이에게 다가갔다. 안겨서 잠시 더 울다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금새 맘에 드는 장난감을 찾아 들고 웃는다. 
  어린이집 마당 놀이터에서 타요 버스를 타더니 내릴 기색이 없어 보인다. 오늘 예방접종을 예약해서 어쩔수없이 한 번 더 울면서 겨우 어린이집을 빠져나왔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그새 차분해졌던 얼굴이 다시 사색이 되어간다. 이제 이 곳이 어딘지 단번에 안다. 체온만 쟀는데도 서러운 눈물이 뚝뚝. 의사선생님 청진기가 나오면 이제 곧 주사를 맞겠구나하고 아는지 더 세게 울어본다. A형 간염 2차, 독감 2차 주사 두 방이나 맞고 왕왕 울고 집에 왔다. 점심도 전인데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쓴 것만 같다. 그대로 퍼지고 싶지만. 이든이 점심을 챙겨주고 오후 일과를 다시 시작한다.

  작년 초, 동생의 권유로 소액을 가지고 주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식 시장을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 먹고, 저녁에 자기 전에. 사실 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오르면 좋고 떨어지면 에이씨 하고 닫았다. 어제는 처음으로 대폭락을 맛 본 날이었다. 지난주만 해도 코스피 6000을 돌파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는데,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하루 아침에 주식이 종이쪼가리가 될 수 있구나를 직접 경험했다. 불안과 초조. 언제 어떻게 사고 팔 계획도 없으면서 하루종일 주식창을 들락날락했다. 사람이 피가 마른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쓸데없이 어플을 켰다 껐다.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느낌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한 가지에 매몰되면 위험하다는 걸 몸소 느끼는 어제 오늘이었다.

  주식도 육아도 초보자로서 ‘인내’ 라는 덕목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도를 닦는다는 말이 이런건가. 주식 시장은 오르락 내리락. 아이의 하루 하루도 다이나믹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도를 탄다는 것. 
매번 파도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무너지겠지만, 이 오르락 내리락 속에서 나의 희로애락을 관찰해본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절망이든 제대로, 내 것으로 남기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인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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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의 눈을 보면서 생각한다. 초조함과 불안.
너의 눈에는 초조함과 불안이 가득해 보이는데
너의 입에서는 늘 괜찮다는 말이 나올 때
나는 그냥 가만히 너를 바라볼 수 밖에.
도망치고 싶지 않다.
너의 눈을 보면 마침내 땅에 닿은 내 두 발을 생각한다.
내 두 발은 너를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제대로 땅 위에 착지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내가 가야할 곳이 저 하늘 위 구름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열심히 발버둥치며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이끌며 애를 쓰고 있었는데
너를 만나고 드디어 내가 땅 위에 발을 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두 눈은 이제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두 발은 땅 위에, 두 눈은 너의 눈 속에 앉아있다.
중력의 힘을 생각하며 너와 발을 맞추며 걷고 있다.
허공에서 헛발질을 해대며 중력을 밀어내려 애쓰던 두 발로
발 뒤꿈치에서부터 앞꿈치까지 지그시 누르며
온전한 한 걸음에 집중하면서.
나는 너의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에 움직임에 귀기울이면서
우리의 걸음이 길이 되도록 계속 이어지도록
두 눈을 바라본다.
손을 맞잡는다.
한 발 한 발 땅 위를 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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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가 흘러나오는 영상을 끄고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를 생각한다. 오늘 나오셨을까. 붕어빵을 사올까, 옥수수를 사올까. 엄마는 옥수수를 참 좋아하는데. 그냥 둘 다 살까. 고민하고 생각한다. 얼굴을 씻고 밖으로 나가면서 요즘의 내가 이런 생각들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죽어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 같은 것을 신경쓰면서 초조해하지 않고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는 아니고 붕어빵이냐 옥수수냐 하는 것이지만.(p.201)


내일 영화 볼까?

M이다. 나는 응, 이라고 답장을 보낸다. 내가 버스를 타고 갈게.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 아니야, 데리러 갈게. 아냐, 미안하게 왜 그래. 내가 갈게. 광역 버스를 타면 금방 가. 에이, 너무 덥잖아. 음....... 그러면 내가 60-3번을 타면 영화관에서 만나면 좋겠고 8000번을 타면 송정역까지 와주면 좋겠고 21번을 타면 개화역까지 와주면 좋겠어. 먼저 오는 것을 타고 연락할게. 그렇게 해줄래? 응, 알겠어.

모든 것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영화를 보기로 했으면 영화를 보면 되지, 어떻게 가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한 문제인가 모르겠다.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그냥 그러라고 할 순 없었던 걸까. 나는 어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의 태도로 인해 일상의 대화가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을 완전히 자각한 뒤부터 자주 괴로웠다. 그러나 결국엔 지금의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당연한 말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부터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일 것이고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것에는 M의 영향이 컸다. 나도 모르게 M을 괴롭히다가,

착하게 사는...... 그런 어떤, 수행을 하는 중이야?
아니?
내가 싫지 않아?
왜 싫어?
달라진 거 모르겠어?
그게 왜?

이런 대화를 하게 되었다. 계속 서로 묻기만 하는...... (pp.204-206)

조금 자고 일어나 일기를 몇 줄 쓰다가 서울에 살 때를 떠올려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일을 한 뒤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나면 하루가 지나 있었고 말하자면 일기에 쓸 일도 일기에 쓸 말도 일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기껏해야 남의 욕이라든가 나 자신이 싫다는 그런 말들이나 썼다. 정말 싫다, 정말 정말 싫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부턴 막무가내로 싫어하기만 했다. 일을, 하루를, 그러나 다른 방법을 모르는 나를. 나는 그것 말고 달느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p.209)

넌 쉽게 말했지만_이주란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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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가능성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극장을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길에 서 있는 참나무들을 더 좋아한다.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디킨즈를 더 좋아한다.

인간성을 사랑하는 나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

비상용으로 실을 끼운 바늘을 준비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을 더 좋아한다.

모든 것이 이성의 탓이라고 말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를 더 좋아한다.

약속엔 조금 일찍 나서는 편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장자리가 예쁜 옛날 삽화들을 더 좋아한다.

시를 쓰지 않을 때의 어리석음보다 시를 쓸 때의 어리석음을 더 좋아한다.

해마다 맞이하는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사랑으로 모든 날들을 기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지만 도덕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너무 많은 걸 믿는 것보다 현명한 친절을 더 좋아한다.

문명이 있는 땅을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하는 나라를 더 좋아한다.

약간 주저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질서 잡힌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는 꽃이 없는 잎들을 더 좋아한다.

꼬리의 일부를 잘라내지 않은 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기 때문에 옅은 색 눈을 더 좋아한다.

서랍을 더 좋아한다.

여기서 말한 많은 것들보다 여기서 말하지 않은 것들을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정렬되지 않은 분리된 제로를 더 좋아한다.

별들의 시간보다 벌레들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더 오래, 그리고 언제라고 묻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모든 존재가 그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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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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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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