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간의 최후
세컨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5년
<마지막 목격자들>
<체르노빌의 목소리>
2015년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둘 다 똑같이 비참하다. 수용소가 일깨워준 교훈은 그 둘이 함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는 점에서 형제와도 같다는 것이다.” _다비드 루세, <우리 죽음의 날들>

“악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한 첫번째 책임은 악의 눈먼 수행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정신적으로 방관한 선의 추종자들에게 있다.”_표도르 스테푼,<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못한 일들>



어느 가담자의 수기

‘호모 소비에티쿠스(Homo Sovieticus)‘
소보크 : 소비에트 시대의 발상, 사고방식, 행동 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속어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고, 우리만의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이 있고, 우리만의 영웅과 순교자들이 있다.우리는 죽음과도 특별한 관계로 얽혀 있다. .... ’총을 쏘다‘ ’사살하다 ‘제거하다’ ‘총살하여 처단하다’같은 문장이거나 아니면 사실상 ‘실종’을 뜻핟는 소비에트식 표현들, 예를 들어 ‘체포’ ‘외부 연락이 일절 불가한 10년형’(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총살형을 선고받은 숙청 대상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정부에 문의해올 경우 대외적으로 전달되었던 형벌의 명칭. 당시는 총살 및 숙청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자 ‘외부 연락이 일절 불가한 10년형’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 대부분의 수감자는 이미 총살형에 처해진 후였다.) ‘이주’ 등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백만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한 우리에게 과연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증오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굴라크(스탈린시대 강제노동수용소)와 끔찍한 전쟁이 낳은 사람들이고, 집단농장화, 탈쿨라크화(쿨라크, 즉 부농 계층을 소멸시키고자 스탈린이 추진했던 정책. 부농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함.), 강제 이주 정책 등을 지나온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이 사회주의였고, 바로 우리네 일상이었다.
나는 가정 속에 나타난 사회주의 또는 내부적으로 나타난 사회주의의 역사적 파편과 부스러기를 모아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나는 항상 인간, 하나의 인간이라는 작은 공간에 매료되곤 한다. 사실 모든 역사가 그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

내가 찾는 사람들은 사상에 유착되어서 그 사상을 뽑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자기 안에 심어놓은 사람들, 즉 국가를 우주로 여긴 나머지 국가를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인생까지 갖다 바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위대한 역사에서 헤어날수도, 그 역사와 이별할 수도 없어서 다른 방식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사소한 것을 가장 위대하게 여기듯이 사적인 것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냥 살아본 적이 없다.
전쟁에 길들여진 사람들
우리는 항상 전쟁중이거나 전쟁을 준비해왔다.
‘전시 심리’
우리는 모두 같은 공산주의의 기억을 갖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소련의 고르바초프 정권이 추진한 사회주의 개혁정책의 기본 노선. 러시아어로 ‘페레’는 다시, ‘스트로이카’는 건축을 의미. 개혁, 재건을 의미함. 대내적으로는 민주화와 자유화를, 대외적으로는 긴장 완화를 기조로 삼음.)가 시행된 이후 우리 모두는 기록보관소의 개방을 애타게 기다렸다.

많은 이들이 적을 마주하듯 진실을 보게 되었다. 진실과 함께 찾아온 자유도 적대시했다.

“우리는 우리 조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라. 매일 보고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니까?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서 그것을 알아봐야 해. 조만간 모든 걸 알게 되겠지. 아마도 경악을 금치 못할 거야.”

소비에트인을 네 세대로 분류
스탈린 세대 / 흐루쇼프 세대 / 브레즈네프 세대 / 고르바초프 세대

제1차 체첸전쟁 당시, “난 아들이 죽게 내버벼둘 수 없어요. 내 아들이 남을 죽이는 것도 싫어요.”
국가는 이미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그런 자유로운 인간은 많지 않았다. 사실 주어진 자유 때문에 성을 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예전엔 아침에 <프라우다>(소련의 공산당 기관지) 신문 하나만 읽고 나오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었는데,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모두가 자신을 희생자로 여겼지 가담자로 생각하진 않았다.

모두가 자유에 흠뻑 취해 있엇찌만, 정작 자유를 누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도대체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식탁에 둘러앉아 습관적으로 정부를 욕할 때나 자유가 있었다.
옐친은 러시아를 변화시켰다는 이유로, 고르바초프는 모든 것을, 20세기 전체를 송두리째 바꾼 대가로 욕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자유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이라곤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방법밖에 없었다.

옛다, 자유를 받아라! 과연 우리는 이런 자유를 기다려왔던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다. 전장에 나가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건 체호프의 소설 같은 인생이었다. 아무 역사가 없는 인생. 생명이라는 가치, 생명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가치가 무너져내렸다. 대신 새로운 꿈들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집을 짓고, 좋은 차를 사고, 구스베리나무를 심는 등의 꿈이. 자유란 것은 알고 보니 러시아에선 줄곧 모욕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희생한 것이었다. 자유란 ‘위대하신 소비 전하’의 등장이었고, ‘어둠의 왕’이 출현한 것이었다. 인간의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우리가 그동안 대략적으로만 상상했던 욕구와 본능이라는 어둠의 왕.

공동체는 폭파되었고, 생명체는 수백만 개의 작은 조각, 세포, 원자로 쪼개졌다.

아버지들은 자유란 공포가 부재할 때를 가리키며, 8월 쿠데타 세력을 제압했던 사흘이 그 자유에 해당한다고 대답했다. 또 식료품 가게에서 햄 백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열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보다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했다. 얻어맞지 않고 사는 것이 자유지만, 맞지 않고 사는 세대는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고, 러시아인은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러시아인에게는 명령자와 채찍이 필요할 뿐이라고도 했다.
자녀들은 자유란 사랑이며, 내적 자유는 절대적 가치라고 했다. 자유란 스스로가 자신의 소원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라고도 말했다. 또한 자유란 돈을 많이 갖는 것이며,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유란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살아갈 때를 말하는 것이고, 자유란 정상적인 것이라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 자유에 대한 논쟁
“그렇게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빌어먹을 선과 악을 깨우칠 필요가 있을까?”
자유냐 삶의 평안과 안녕이냐, 고통스러운 자유냐 자유 없는 행복이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대심문관이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 그리스도에게
”당신은 그(인간)를 너무도 존중한 나머지 오히려 인간을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았소. 당신은 인간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어. 당신이 인간을 조금 덜 존중했다면 요구사항도 그만큼 적었을 테니, 오히려 그것이 사랑에 더 가까운 행동이었을 거요. 왜냐하면 인간이 지닌 짐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을 테니까. 인간은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요. 그토록 버거운 선물을 받을 힘이 없었던 나약한 영혼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이오?“
”이 불행한 존재에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유라는 선물을 한시바삐 넘겨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괴롭고 끈질긴 걱정거리란 말이오!“

“요즘 학생들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불평등, 가난, 뻔뻔한 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고 뼈저리게 느낀 아이들이에요. 학생들의 눈에 약탈당한 국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부모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비친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은 극단적인 사상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자신들만의 혁명을 꿈꾸는 거죠. 레닌이나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지 붉은 티를 입고 다니면서요.”

소련에 대한 동경
신스탈린 숭배자들의 출현
‘나시’ : 우리들의 것이라는 뜻의 청년 민주주의 반파시스트 운동단체. 나시의 목표는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러시아의 건설’이다. 푸틴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어 푸틴의 홍위병으로도 불림.

1971년의 혁명 직전 알렉산드르 그린은 이렇게 썼다.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를 그만둔 것 같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가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부> 아포칼립스의 위로

길거리에서 나눈 잡담과 부엌에서 나눈 대화(1991~2001)

바보 이반과 황금 물고기에 대하여
“우리 러시아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몽상가예요! 정신은 열심히 일하고 괴로워하는데 반해 실제 행동은 더디거든요. 정신에 온 힘을 쏟느라 행동으로 옮길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일은 항상 제자리를 맴돌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거나 책 읽기를 좋아해요. 그러니 러시아인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은 독자, 그리고 관객인 셈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러시아인은 근거 없이 자기네 민족을 특별하고 유일하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우리 주변에는 오블로모프(러시아 소설가 곤차로프의 대표작 <오블로모프>의 주인공. 관대하지만 우유부단한 귀족 청년으로, 박력 있고 실리적인 친구 슈톨츠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만다. 오블로모프처럼 허무감에 빠지고 무기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사람들을 일컫는 대명사.) 투성이예요. 모두가 소파에 드러누워 기적을 바라고 있죠. 반면 슈톨츠는 없어요. 러시아인들은 자기들이 아끼는 자작나무숲과 벚꽃동산을 베어버렸다는 이유로 슈톨츠를 증오해요. 그곳을 밀어낸 뒤 공장을 짓고 돈을 번다는 이유로요. 우리들 사이에서 슈톨츠는 타인이에요.”

러시아의 부엌
흐루숍카같은 부엌
식당, 응접실, 사무실, 연단, 집단심리치료의 장소
‘부엌에서의 삶’
정부를 욕할 수 있었던 공간
아이디어, 공상에 가까운 프로젝트들이 떠오르는 공간
유머 제조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읽는 사람들이고, 반공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이해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가난한 것도 부끄럽고 취미로 운동 하나 안 하는 것도 부끄러운 시대요. 한마디로 쫓아가기가 벅차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엔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오. 자본주의가 터진 봇물처럼 쏟아집디다. 90루블의 가치가 10달러 정도로 곤두박질했지. 그 돈으로 살아갈 방도가 없었기에 난 부엌에서 길거리로 나섰소.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보니 우리에게 사상이란 게 없었다는 것을, 그저 항상 둘러앉아 계속 떠벌떠벌 말만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리고 어디선가 전혀 다른 유의 사람들이 출현했소. 산딸기색 자켓을 입고 굵직한 금반지를 낀 젊은이들이었소.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말해주었소. 돈이 있으면 인간이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법칙을. 내가 헤겔 전집을 읽은 사람이라는 걸 대체 누가 알아준단 말이오? ’인문학도‘라는 말은 질병의 진단명같이 들렸지.”

“이제는 감정에 허비할 시간이 없는 시대요. 모두 돈을 벌어야 하니까. 돈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폭발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오.”


위대한 역사냐, 평범한 삶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들에 대하여
-사회주의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사 속에서 살도록 강요했어요. 위대한 그 무언가에 참여하게 했다고요.
-제기랄! 우리는 너무 영적이고, 너무 특별하다니까.
-러시아는 위대하거나 아예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어. 우리는 강한 군대가 필요해.
-난 사상을 가지고 살았던 옛사람들에게 질투가 나요. 우리는 아무런 사상 없이 살고 있으니까요. 나는 위대한 러시아를 원해요! 난 위대한 러시아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런 나라가 존재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항상 고통에 대해서 말을 하죠......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면서요. 우리가 보기에 서양 사람들은 그래서 바보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처럼 직접 고통받지 않으니까요. 그들에게는 모든 종류의 종기 치료제가 있어요. 우리들은 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전쟁을 치를 때는 시체로 천지를 덮었어요. 맨손으로 체르노빌에서 핵연료를 퍼냈지요. 그랬는데, 지금은 무너진 사회주의의 폐허 위에 앉아 있어요. 전쟁이 끝난 뒤의 모습처럼 우리는 얻어터지고 기진 맥진한 상태예요.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요. 고통의 언어요.
이런 주제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해본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대놓고 비웃더군요. ‘우리는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은 그런 것과는 뭔가 달라요.’ 얼마 전까지 우리의 세계였던 그 세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벌써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하나의 문명 전체가 쓰레기장에 버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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