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밤인 세계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먼저 얘기하고 시작하자면, 이 책은 내가 읽었던 국내 문학작품 중 거의 베스트다.
첫 충격은 정유정 작가의 작품이 그랬고 이 책 역시 그만한 충격을 내게 주었다.

나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한 책.
첫 장부터 무서우리만치 빠져들게 만들었다.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문체와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뛰어난 묘사, 동화스러운 분위기, 신비한 존재들, 무덤덤한 잔인함까지.

📖
이야기는 샴쌍둥이로 태어난 에녹-아길라 남매가 수술대에 오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의사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말했고 남작 부부는 좀 더 온전해보이는 에녹(아들)을 살리기로 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아이들을 수술실에 들여보낸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수술은 대성공으로 끝나 아길라(딸) 역시 하반신은 없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

남작 부부는 매우 기뻐했으며 이들 가족은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은 왜 하반신이 없는 채로 태어났는지 항상 궁금해하던 아길라에게 한 하녀가 "아가씨는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고 말해준다.

그 진실을 듣기 위해 찾아간 부모의 방에서 그녀는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그제서야 자신이 버려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아길라는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흑주술에 관한 모든 서적을 섭렵하고 날이 갈수록 사악해져 그녀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치거나 죽어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사랑스러운 남동생 에녹을 불러 "너의 몸은 본디 나의 것이기도 했으며 내가 양보했으니 너 또한 나에게 협조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부모 몰래 보름달이 뜬 겨울의 새벽, 그들은 달빛 아래서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아길라는 드디어 그토록 갈망하던 다리를 얻게 된다.
남동생인 에녹의 몸에 들어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밝혀진 남매의 출생의 비밀.
왜 그렇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아기를 갖기 위해 그들의 어머니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348p.
무엇보다 큰 문제는 네가 원죄를 짓지 않고 태어났다는 거였지.
밤에 속할 존재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태어나게 되어 있는 그것, 너의 원죄는 그러니까......

형제 살해였다.

너는 너와 함께 잉태된 형제를 어머니의 배 속에서 죽이고 태어날 운명이었지. 네 형제는 오직 그걸 위해 너와 생명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죽은 채 태어났어야 할 그 아기가 살아 태어나 버렸다.
.
.
.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어야 할 아이가 순수하게 태어나 버린 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자살하려는 소녀 앞에 계속해서 나타나 그녀를 방해하는 남자.
그는 소녀가 어디서 시도하든 귀신같이 나타나 그녀의 손목을 잡아챈다.

그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매번 그녀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바'라는 스무살 남자가 있다.
아기 때 부모에게서 버려지고 다섯 살 때 지금의 양부모님에게 입양되었으나 귀염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껏 남처럼 지내고 있다.
더욱이 자신은 가지지 못한 가족이란 것을 당연스레 누리는 동급생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에게 남은 것은 없다.

'새해가 되기 전에 죽자.'
12월 25일, 모두가 행복해보이는 크리스마스날 아이바는 다리 위에 선다.

그리고 죽기 직전 그의 앞에 나타난 사신.

사신은 그에게 3년의 시간을 주고 나머지 수명을 뺏는 대신, 24시간 전으로 돌릴 수 있는 은시계를 건넨다.
남자는 죽기 전 이 시계로 3년간 맘껏 즐기다 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 제안을 수락한다.

"당신은 3년 후 12월 26일 밤 12시에 숨을 거둘 겁니다.
남은 3년 동안 즐겁게 보내십시오."

그렇게 마음껏 은시계를 이용하며 살던 어느 날, 뉴스에서 자신이 원래 자살하려고 했던 다리에서 한 여중생이 투신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고 왠지 신경이 쓰여 시간을 24시간 전으로 돌려 그녀를 찾아간다.

그렇게 죽고 싶은 소녀와 곧 죽게 될 남자의 시곗바늘이 만난다.

✏️
이런 류의 소설 간만에 읽으니 몽그르르하니 재밌었다.
일단 표지부터가 영롱하고 예뻐서 마음에 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신'의 등장과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 시공간의 초월 등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소재였다.

요즘 같은 봄, 가벼이 즐기기에 딱 좋을 듯한 로맨스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물 위를 걷고 싶은 당신과, 물 속으로 잠기고 싶은 여자의 (자세히 보면) 사랑 이야기.

"이승우는 묘사하지 않고 진술한다. 심문하고 색출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심문과정은 한층 더 차갑고 치밀해진다."_박혜진(문학평론가)

📖
아내와는 사실상 종료된 것과 다름없는 결혼생활을 하던 남자는, 출장을 위해 멕시코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관광가이드인 그녀를 만나게 된다.

신비한 고대 마야 문명의 유적지에서 둘은 키스했고 남자는 그 강렬한 충격을 잊지 못한 채 돌아온다.

🏷32p.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대는 순간 당신의 모든 감각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당신은 식물의 잎맥들이 뿌리에서 줄기까지 수분과 양분을 운반하며 내는 소리를 들었고,
풀 위에 맺힌 이슬들이 진주알처럼 또르르 구르는 모습을 보았고,
달빛이 공기 속으로 섞여들어 가 몸을 부비는 모습을 보았고,
아직 피지 않은 꽃이 미리 발산하는 향기를 맡았다.

그로부터 십육 개월이 지나 남자는 발령을 받고 그녀가 사는 H시로 내려가게 되고, 그들은 재회한다.
하지만 과거의 강렬했던 기억과는 사뭇 다른 날것 그대로의 동거생활에서 그는 다시 도망치고 만다.

상처 입고 욕조에 잠겨있는 그녀를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둘이 만나기 이전, 그녀에게로 오던 남편과 다섯살짜리 아이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녀는 그때부터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도망치고 나서 다시 그녀가 보고 싶어 찾아가는 남자.

저자는 이 이야기가 연애소설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마지막엔 사랑이 있기나 한거냐며 다시금 도발한다.

'그러게. 사랑이 있기나 했던가?'

"이 소설은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되어 사랑이 시작된 자리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사랑이 끝난 자리로 돌아온다."_정여울(문학평론가)

✏️
이 소설은 작가정신의 '소설, 향' 중편소설 시리즈로, 새로운 시대의 독자를 위해 16년 만에 다시 나온 개정판이다.

120페이지 분량의 작품에 두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55페이지 가량 첨가되어 있는 이 소설은 가볍지만은 않다.

표면적인 줄거리보다는 저자가 서술하는 '사랑'에 대한 탐색에 같이 마음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
저자는 현 시점 가장 도발적인 이슈를 던지는 미래학자이자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그저 21세기의 윤리 규범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친구들과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논쟁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책이란 말이다."_정재승(뇌과학자)

📖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선택지가 많아졌고 그에 따른 윤리적 규범 역시 계속하여 변화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 당연한 것이 내일도 당연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과거 우리 조상들은 물건을 사고팔듯 노예를 부렸으며 광장에서 사람을 처형해 구경거리로 제공하고, 또 성소수자를 고문하고 죽이기도 하였다.

지금의 우리는 그것이 잘못되었고 그들이 무지하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현 세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여전히 차별이 만연하고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실험을 자행하며 가축을 정성껏 보살피다 도살해 잡아 먹는다.

우리 역시 미래 세대에겐 무지하고 야만적인 조상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가축을 키워 도살하지 않고도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이 윤리 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될테고 나아가 윤리 규범이라는 것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주,로봇,유전자,성소수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과연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것들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독서모임 책으로 꼽히던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책 한 권에 끊임없이 토론할 이슈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
매 장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매일 조금씩 읽다 보니 늦어져버렸지만, 이 책은 천천히 즐기는 게 맞는 것 같다.
간만에 읽은 어려운 책이었지만 계속 소장하면서 꺼내보고 싶은 책.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토론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영화 #라이프오브파이 의 원작 소설.

One boy, One boat, One tiger...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250킬로그램의 뱅골 호랑이와 열여섯 살 인도 소년의 227일간의 표류기.

이들은 서로를 해하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
나는 쪽지를 적어 병에 넣었다.

"파나마 국기를 내건 일본 소유 화물선 침춤 호가 1977년 7월 2일 가라앉았음. 구명보트에 있음. 이름은 파이 파텔. 음식과 물이 약간 있지만, 벵골 호랑이는 심각한 상황임. 캐나다 위니펙에 있는 가족에게 알려주기 바람."

인도의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파이.

어느 날, 운영이 어려워지자 동물들을 처분하고 캐나다행 선박에 오른 가족들과 팔리지 않은 몇 마리의 동물들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조난당한다.

파이와 동물들은 가까스로 구명보트를 붙잡아 목숨을 건졌지만, 빠른 속도로 가라앉던 선박은 결국 20분이 채 안되어 침몰하고 만다.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는 하늘과 바다뿐.
이 32인승 구명보트 위에선 굶주린 동물들이 먹이사슬의 순리대로 차례차례 잡아먹고 잡아먹힌다.

남은 것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소년 '파이'와 최고 포식자인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파이는 정신을 다잡고 리처드 파커를 조금씩 길들여나간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
언제였을까, 이 이야기를 영화로 본 게.
기억나는 장면이라곤 까무잡잡하고 마른 소년과 커다란 호랑이가 위태롭게 서로를 마주하며 보트 위에서 대치하던 것.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던 바다의 풍경.

읽으면서 다시금 그 장면들이 생생히 살아났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인간과 동물과 자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분명 가족은 잃었지만 리처드 파커와 파이는 살아남는다.
둘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켜주며 파이는 그에게 깊은 사랑을 느낀다.

이 감동적인 아름다움은 이야기 자체를 예술로 만들고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영화도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둘 중 하나라도 꼭 접해보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