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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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가님의 퇴사나 파리 여행 소식을 접했기에 그곳에서의 시간을 작가님 특유의 찰진 문장들로 어떻게 담아냈을까 궁금했다.


책 이야기 전에 잠시 덧붙이자면, 나는 2011년에 프랑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약 1년간 파리에 거주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아름답고 감사한 시절임이 분명한데, 그 시간을 스스로 포기하듯이, 도망치듯이 마무리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가 되어서, 귀국 이후 파리와 관련된 에세이나 브이로그 같은 콘텐츠를 좀 일부러 멀리하곤 했다는....


그런 마음으로부터 13년이 지나서야 파리를 다시 마주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민철 작가님의 책을 펼친다. 책의 중반(두 달의 파리 생활 중 첫 달을 보냈던 파리 5구에서의 생활기)까지 읽는 동안 책의 곳곳에서 오래전의 내모습을 보듯이, 세월에 묻혀 잊고 있던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시간’을 보냈다.


워홀 기간 중 가장 많이 방문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 퐁피두센터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작가님의 도서관 사랑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고, 아침 일찍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오고, 저녁에 와인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의 묘사를 보며 22살의 제 모습이 겹쳐지곤 했다. (그리워라)


그러다 이야기가 파리 5구에서 20구로 무대가 바뀌자 그곳은 저도 처음 만나는 이야기로 가득했는데.. 생각해 보면 저 또한 파리 북쪽은 위험하다는 말을 믿으며 파리 전역을 돌아다녔어도 19,20구는 가본 적이 없었다. (특히 뷔트 쇼몽 공원이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책을 읽으면서 ‘1년간 지내며 곳곳을 누비고 다녔으니 파리는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하고, 다소 오만했던 태도를 보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파리’의 모습에선 참 반갑게도 파리에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찾은 것 같았다. (새삼 타인의 경험담이 고마워지는 순간!)



로망의 시간에 머물면서(‘산다’라는 동사가 허락하는 세상에서) 오랜 회사 생활을 정리한 뒤 비로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앞으로의 삶을 어떤 모양으로 빚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는 김민철 작가의 파리 여행기. 아니 파리 생활기. 덕분에 파리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고, 앞으로의 삶의 모양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참 오래 걸렸지, 이 모양의 나를 만나기까지

참 만나고 싶었지, 이토록 낯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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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수업 -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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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인문학 이야기를 다정하고 꼼꼼한 마음으로 전하는 정여울 작가의 새로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꽤 많은 책을 써낸 작가인데, 문학이나 그림에 기대어 사유한 것들이나 심리학, 글쓰기에 관련한 책이 있었다. 


이번 신간은 43개의 자잘한 챕터들이 총 3부로 나뉘어있다. 사회면의 키워드에서부터(1부 개념), 일상적인 것들(2부 장소와 사물), 그리고 문학(3부 인물과 캐릭터)을 통해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한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꼭지들은 2부에 많이 몰려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각자 자신의 상황과 마음이 따르는대로 키워드를 고르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무엇을 느낄 수 있었는지 써보는 활동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나만의 감수성 수업’목차를 만들어 나가는 거다.


예민하고 깊은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수많은 문학과 그림을 접하며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정여울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득하며, 개인은 쉽게 고립감에 시달릴 수 있다고. 이런 시대인만큼, 삶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지대를 선물하는 용기와 다정함이 필요하다고. 감수성을 예리하게 벼려 서로의 고통을 보살피고 마침내 타인과 함께 공감할 수 있다고.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다 못해 무진장 풍부한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심연을 아름답게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너무 많은 자극, 충격적 자극 속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길을 잃고 개성화의 미로에서 이탈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조금 느끼고 공감할 있는 감수성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면, 삶의 모든 곳에서 에너지를 흡수하며 배움을 나누는 정여울 작가의 이야기에 기대어봐도 좋겠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다 못해 무진장 풍부한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심연을 아름답게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너무 많은 자극, 충격적 자극 속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길을 잃고 개성화의 미로에서 이탈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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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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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열고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던 작가의 경험을 녹인 작품이라는 설명을 보고 궁금해졌던 ‹ 마은의 가게 › . 훗날 작은 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부푼 꿈 앞에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마음과 안정을 갈망하게 되는 매일의 불안, 끝끝내 지켜보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애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마은의 가게 › 사장, 공마은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면서 섬세하게 느껴볼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공마은 같은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두려움과 자괴감, 이를 극복하게 하는 사랑과 연대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잘 그려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소설에서 현실의 모습을 마주하며 좀 춥고 씁쓸하게 느껴졌으니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여성 자영업자에게 늘 어려움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마은의 가게에는 다정한 인연도 있고 각자의 불안을 안고 살지만 서로 ‘관심’이란 말로 신경을 써주는 이들도 있다. (관심이란 말로 포장된 폭력이나 위협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배우 공효진이 연기한 동백이가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여성 자영업자들이, 시련과 함께하는 생활이 있었고, 타인에게 기댈 수 있는 마음이나 츤데레같은 도움이 있었다. 드라마와 책에서 그려내는 자영업자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사는 하루하루 전쟁같이, 목숨 걸고 해야 한다’고. 모두 각자 인생의 힘듦을 짊어지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또 열심히 살아간다.


“패를 던지는 게 아니라 공을 굴린다고 생각해. 힘껏 굴리면 그 방향으로 가겠지. 하지만 언젠가 멈출 거야. 그때 다시 힘껏 굴리면 돼. 어디로든 갈 수 있어. 방향은 정하지 마.”


다시 자영업자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이서수 작가에게 소설은 매우 각별할 같다. 작가에게 자신의 모든 작품이 각별하지 않겠냐마는,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글이기에 앞으로의 당신에게 바라마지않는 희망과 다짐을 눌러쓴 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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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개빈 지음, 김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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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연에서 어떤 책을 주로 읽느냐는 질문에 김영하 작가가 예술가의 전기 읽는 걸 추천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때마침 필립 글래스 자서전을 읽고 난 뒤라서 그런 독서가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에 대해 크게 공감이 되었다.


평소 호감 가는 아티스트의 전기나 자서전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자.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 하나 없이 예술을 감상할 때의 느낌과, 작품을 만들어낸(연주한) 아티스트의 삶을 들여다본 뒤의 감상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쳇 베이커의 연주와 노래는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재즈 음악이라고 생각해서  참 많이 들었다. 그의 음악은 시간대와 날씨를 가리지 않고  상황과 공간에 편안하게 녹아들어 늘 더 괜찮은 무드를 만들어 주곤 했다. 하루종일 틀어놔도 어색하거나 튀지 않지만 나른하고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오로지 ‘쳇 베이커’의 이름만 알던 시절엔 ‘이렇게 편안한 재즈 음악도 있구나’ 생각했고, 웅얼거리는 듯한 발음과 목소리도 한 톤으로 느껴졌다. 그의 음악에 흐르는 나른함과 여유, 적당함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약 중독이었고 결국 마약 때문에 생을 마감한 아티스트 중 하나라는 사실만을 알았을 때와, 그의 전기를 다 읽고 난 뒤의 느낌도 좀 다르다. 그의 중독과 집착 수준은 단지 ‘마약 중독’이라는 네 글자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1000쪽이 넘는 지면에 빼곡하게 담겨있는 비운의 트럼페스트의 삶은, 안타깝고도 처연했다. 타고난 재능과 빼어난 외모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여자들과의 숱한 스캔들을 일삼으면서도 절대로 책임지지 않는 삶. 시기 질투와 평가, 해소되지 않는 인정 욕구와 중압감, 그 모든 것을 마약으로 잊어버리던 사람. 결국 눈앞의 현실과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마약을 위해 가족과 연인과 친구, 동료를 배신해가며 트럼펫을 불어댄 사람. 



차분하고 부드러운 연주와 음색 이면에 존재했던 그의 폭력성, 인간으로서 별로인 태도들, 마약에 대한 광적인 집착 어마어마한 모순을 목도하고 나면 예전에 좋다고 생각했던 그의 음악이 더는 듣고 싶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오히려 나는 슬퍼졌다. 물론 마약은 그의 자의적인 선택이었지만, 1950-60년대 미국의 상황과 시대가 인간을 어떻게 집어 삼키게 되는지를 보면서 갖가지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달콤한 꿈을 꾸는 들려오던 그의 연주가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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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만세 - 100%의 세계를 만드는 일
리베카 리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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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직업 에세이’를 좋아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종사자가 직접 들려주는 말들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이 세계를 좋아하는지 같은 마음일 때가 있어 응원하게 되고, 그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해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한 세계를 둘러싼 인물들의 고군분투기를 읽고 나면 애정의 마음은 더욱 커지고, 나도 내가 몸담은 자리에서 더 열심히 임하고 싶어진다.

『편집 만세』는 좋은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낱낱이 탐색해 알려주는 책이다. 세련된 표지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미권 출판사 펭귄의 편집장 리베카 리가 20년간 편집 일을 하며 경험한 것들을 녹여냈다.

이시하라 사토미가 연기한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를 본 적 있다면, 혹은 출판사 제철소에서 출간된 『출판하는 마음』을 읽어본 적 있다면 이쪽 세계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울 것이다.


❝좋은 교열자는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세계에 들어와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다.❞ p.105

❝그 어떤 경험, 시련, 훈련, 상식 퀴즈, 사소한 탐닉, 집착, 취해서 혹은 맨 정신으로 나누는 대화도 교열 편집자에게 허비되는 것이란 없다. 수년간 어지럽게 쌓아온 지식의 파편들이 결국 쓸모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p.111

❝글은 가장 복잡하고도 심오한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이므로, 독자에게 좋은 글을 선사하려면 인간의 마음을 거쳐야만 한다. 그래야 의미가 통하는 최상의 글로 만들 수 있다. … 좋은 편집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p.130



책 한 권에는 작가들의 글을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교열하는 편집자들, 글이 ‘더 잘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한 고민을 이어가는 디자이너들,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다른 문화권의 독자를 글과 이어주는 번역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집약되어 있다. 그들의 모든 결정을 존중하고 싶어진다.

📚 thanks to @willbooks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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