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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평점 :
아, 간만에 책으로 즐거웠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냅다 이 책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금각사>의 그 미시마 유키오가 1960년대 여성주간지에 연재했던 연애소설을 편집해 출간한 책이다. ‘일본 탐미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가가 여성지에 연애소설을 연재했다는 사실부터가 흥미를 자극한다. 적당한 독서를 즐기는 남편도 집에 도착한 이 책을 보고는 ‘어! 이거 읽어보고 싶었는데!’ 하며 좋아하던.
그리고 읽어보니 표지 일러스트와 북디자인이 너무 예쁘게 잘 되었단 생각도 들었다.
편지글이지만 이 책에는 20대와 중년 남녀 커플, 그리고 상당히 괴짜 같고(상당히 일본스러운..?) 남성 1명 총 5명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이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주고받는 서간문의 형식과는 달라 참신했다. (처음엔 인물의 이름이 헷갈려서 소개 부분을 계속 들추며 봤지만 나중엔 편지글의 말투로도 좀 유추가 된다.)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 대필을 부탁하는 편지, 수신인과 발신인이 동일한 편지, 같이 죽자고 제안하는(그러나 꽤 진지한 태도로) 편지 등, 그저 좋은 기분과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식의 편지보다 훨씬 다양한 주제와 상황이 등장하는 것도 이 책이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5인 5색의 관계와 편지 속에서 욕망과 우정, 애정, 동경하는 마음, 복수심과 증오, 불안, 허무함 등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지는데, 발칙하면서도 새침하고 어딘가 깜찍한 구석이 있어 읽는 중간중간 다양한 리액션이 절로 나온다. (책 속에 욕부터 웃음까지 자잘한 메모가 난무한..)
비단 연애나 사랑뿐만 아니라 고민의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내밀한 심경을 누군가에게 토로해 내고 또 그 상황에 어울리는 위로나 충고를 던져줌으로써 오고 가는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서간문의 매력이 아닐까.
카톡이나 dm 등 쉽고 간편한 연락 방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손편지나 메시지카드에는 분명히 있다. 오랜만에 서간문집 읽으며 연애시절 쓰곤 했던 편지라든지, 카톡이 없었던 중학생 시절에 학교 선배와 주고받던 편지가 생각났다. 편지를 쓰던 때에도, 답장을 기다릴 때에도, 그리고 답장을 읽기 전까지도 얼마나 떨렸고 설렜던지.
오랜만에 편지 쓰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거나,
연희동 편지가게 글월이나, 엽서가게 포셋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되고 읽으며 낄낄거리고 싶은 책이 필요하다거나,
일본 문학의 거장인 작가가 말하는 (1960년대 스타일의) 연애 처세술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재밌습니다.
"만사를 전화로 해결하는 세상이라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영상전화도 실용화되었지만 편지의 효용은 여전해서, 사람들은 잘 봉한 종이의 밀실 안에서 느긋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이야기 할 수도 있는가 하면 엎드려 누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상대가 누구든 다섯 시간 동안 독백을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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