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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 삶의 감각으로 이야기한 장애의 세계
앤드루 릴런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평점 :
이 책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작가의 회고록으로, 한 권의 시각장애 실험 일기와 같지만 저자가 시력과 실명 사이에서 세상을 탐구하는 법을 여러 분야에 걸쳐 다루고있다.
미국 사회 속 시각장애인들의 연대와 갈등의 역사, 점자와 음성해설, 보르헤스나 제임스 조이스 등 시력을 잃은 작가들의 집필 이야기, 시각장애인이 겪는 편견들, 복잡한 정체성 등, 비시각장애인 독자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듬어가듯 읽게된다.
이러한 앤드루의 탐구생활과 함께 그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 이야기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예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는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친할아버지도 중도실명인이었기에,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거동, 식사와 세면 등을 도와주시던 기억을 아주 오랜만에 떠올려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뿌옇게 흐려진 눈과. 손의 감각에만 의지해서 접어주시곤 하던 사탕껍질 인형도 생각나고.. 그래서인지 ‘실명인에게 무엇보다 크나큰 상실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흐려지는 것’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코끝이 찡해졌다.
눈멂은 출발이라기보다 도착이라는 말을 보며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지, 서서히 진행되는 눈멂이라면 차라리 실명인을 원하게 될지, 그 마음이 어떨까 헤아려보는 지점들도 많았다.
책에서는 특히 앤드루가 자신의 실명, 눈멂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슬픔과 두려움을 지나 자신의 정체성을 눈멂이 어떻게 바꿀지 ‘알고 싶다’는 말에서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이 느껴졌다. 순수한 시각적 기쁨은 잃어버리게 되겠지만 눈멂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어떠한 감각으로 다가오게 될지 기대하며 마음을 열고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릴런드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시각장애를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시각의 한계를 넘어 다차원적인 경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눈멂이라는 더 넓은 세계로 떠나는 의도적인 여행의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