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서점 -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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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서점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연서는 기이한 바람이 불어 구조되고, 거기서 만난 남자가 운영하는 서점을 방문합니다. 서점 주인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묘해지지만, 그 후에도 서점을 방문하는 일이 생기죠. 묘한 분위기를 지니 서점주인인 서주가 자꾸만 궁금해지는 연서. 연서는 서주가 과거의 자신을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둘은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을까요? 그리고 서주가 연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각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신은 참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서 결국 결말이 씁쓸하게 끝나는 걸 보면,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신은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사랑하기에, 언뜻 보면 냉혹한 결말을 맺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대가를 치르는 게 맞지만, 조그마한 행복을 잠시 맛보게 하고 큰 대가를 치루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아 보입니다.

 

이는 주인공인 연서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연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 후, 작가가 되기 위해 2년 동안 노력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계속 고달프기만 한 연서는 서주가 낭독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는 위로도 받습니다. 그리고 그와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는지 기억해내게 됩니다.

 

 

죽음을 건너서라도 나를 기억하고 나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리고 기다리는 형벌에 처해진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는 걸까요? 우리가 후회없이 살아야 하는 것은 이 삶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기억도 안 나지만 습관처럼 그 사람만을 찾아오고,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건 이 또한 기다림인 게 아닐까요. 죽지 않고 한 사람만을 기다리는 형벌에 처해진 사람이 계속 기다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옛날 조상들의 사랑이야기를 읽다 보면 뭔가 많은 일을 함께 하지 않더라도 애틋한 느낌이 드는데, 환상서점 또한 그런 애틋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2권이 나온다고 할 때 너무 기대되더라구요.

 

 

다만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옥토와 서주가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만 서술되어 있어 아쉽긴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 환상서점 2권 출간 소식을 들어서 이런 세부적인 설정은 2권에서 풀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드네요. 여름에 걸맞게 으스스한 느낌과 묘하게 축축한 느낌이 드는 환상서점 1.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두운 초록색 버드나무 잎들과 담쟁이 넝쿨, 그리고 고풍스러운 한옥 서점이 떠오릅니다. 너무 무섭지는 않지만 에피소드들의 끝이 기묘한 느낌을 줘서 기담에 걸맞는 책이라 생각해요. 동양풍 기담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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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끝났다
후루타 덴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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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끝났다



‘사건은 끝났다‘는 연작소설로, 지하철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후 그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경위와 가해자를 조명하지만,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나 사건 이후의 삶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사건은 끝났다’는 그런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루는 소설이다. 피해자가 살인범과 겨루는 동안 다른 승객들을 밀치고 도망치던 건장한 청년, 그 옆의 임산부, 맞은편에 앉아있던 학생 등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마지막에는 피해자의 이야기로 끝낸다.

사실 이런 형사 사건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엄청나다는 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들 하나하나의 삶을 조명해서 들여다 본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피해자들이 겪는 공황장애, 두려움 등을 내가 백분의 일도 몰랐다는 걸 알게 되었다. ꖶዞ 피해자들은 자꾸만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걸까 생각했는데, 그건 그들이 평범하게 착한 사람들이라 그럴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곤 한다. 그건 그들이 착하기 때문에 가해자가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쁠 수도 있다. 악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걸 머리로만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이 책의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자책한다. 내가 만약 사람을 밀치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내가 유산하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안 죽지 않았을까 하며 계속 그 상황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피해자들은 잘못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은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고, 내 탓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자꾸만 자책하게 된다면, 피해자의 몫까지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피해자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책할 필요도 없고, 그 상황을 곱씹을 필요도 없다. 과거의 일은 과거에 머무르도록 놔두고,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선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탓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더이상 자책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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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TURN 6
정이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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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결국은 사랑이 이긴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해리포터와 볼드모트는 태생부터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그들은 혼혈 태생에 마법사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둘은 각각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은 인물들이 ‘사랑‘이라는 한 가지 차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는 사고로 부모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사랑할 줄 안다. 그러나 볼드모트는 평생 자신을 연민하며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열 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은 볼드모트처럼 사랑할 줄 모르는 독재자와 맞서 싸우는 수많은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다.

’은수’는 사랑이 금지된 세상에서 사랑을 말하는 ‘이브‘를 사랑한다. 독재자의 명령을 거부한 뒤 실종된 엄마의 행방을 좇다 소녀원에 입학한 은수는 ‘리수‘를 만난다. 리수는 교관들의 지시를 거부하고 학교에서 계속 사랑을 말하는 반동분자로 학교의 주목을 받는다. 소녀원에서는 사랑을 말하다 걸리는 학생은 기억삭제실로 끌려가고, 일정 부분의 기억을 삭제당한다. 그렇게 기억이 계속 삭제되다 보면, 소녀는 결국 감정을 잊고 독재자가 바라는 우성 인간으로 자라서 졸업한다. 그러나 기억삭제 코드가 완전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은수와 은수를 돕는 해커 ‘파머‘는 은수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라일락 코드를 해독하려 한다.

은수는 소녀원의 우등생으로 불리고 리수와 은수는 서로를 탐탁치 않아 한다. 룸메이트로 지내게 된 은수와 리수는 어느 날, 서로가 은수의 엄마인 ’은주’와 관련있음을 알게 되고 필담으로 서로의 정체를 공개한다. 은수가 그토록 사랑하던 이브는 사실 ‘리수’였던 것이다. 리수는 독재자에게 저항하기 위해 이브의 얼굴로 세상에 사랑을 소리치지만, 부작용으로 기억이 조금씩 잊혀진다. 은수는 리수를 학교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백신 코드를 리수에게 주입하지만, 백신의 부작용으로 리수의 몸 일부가 점점 나무로 변한다. 이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교에는 라일락 꽃이 가득해진다. 은수는 리수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고, 숨김 없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이 금지된 세상이라니 너무 흥미로운 소재라 단숨에 읽어내렸다.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독재자는 자신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사랑을 끊임없이 말하는 리수를 질투해서 이런 법을 만든 거라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열등감에 찌든 인간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우성 인간의 가면. 사람이 누가 낫고 누가 못났고를 누가 정한단 말인가. 심지어 그걸 법제화까지 한다니, 정말이지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만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의 계절은 항상 겨울이다. 그러나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움츠렸던 꽃은 싹을 틔우기 위해 발돋움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은 끝나기 마련이다. 마침내 봄은 오고, 라일락은 개화한다.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꽃내음을 맡고, 각자의 생각을 펼친다. 나 하나 용기낸다고, 달라진다고 해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하나쯤이니까 달라질 수 있다고, 용기내서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무력감에 휩싸이지 말고, 나 하나니까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현재는 용기 낸 이들이 만들어낸 과거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서포턴즈로 활동하며 턴시리즈의 책을 다 읽었지만,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할 정도다. 낭만 사랑니도 문장 수집용으로 최고였지만, ‘열 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도 문장 수집용 책으로 최고다. 요즘 세상이 사는 게 너무나 각박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을 구석이 점점 없어져 가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사랑을 노래해야 한다. 사랑이 있어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긴 서평을 쓸 수 밖에 없다. 책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게 당연한데도, 다 읽고 나니 라일락 향기가 가득했다. 진한 꽃 향기를 느끼며 쓰는 서평이라니, 참 낭만적이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결국 사랑으로 이겨낸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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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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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모스크바의 신사’는 호텔에 감금되었지만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백작의 삶을 그린 책이다.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혁명에 찬성하는 시를 써서 호텔 내 ‘종신 연금형‘을 받는다. 호텔 밖을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총살형에 처하게 된다. 백작은 호텔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어린 아이인 니나가 혁명의 물결에 휩쓸린 채 어른이 된 것을 마주하기도 하고 니나의 딸인 소피야를 맡아 키운다. 소피야를 맡아 키우며 백작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음악적 재능이 있던 소피야를 위해 어떤 일을 감행한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읽는데 다소 압박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게다가 평생 호텔 내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고? 하루, 일주일, 한 달 등 일정한 기간 동안 내가 원해서 실내에 있는 게 아니라, 평생동안 ’호텔’이라는 공간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농담으로 누가 가둬놓고 취미 생활만 즐기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갇히는 건 또 다른 기분일 것이다.

백작은 책에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스토프 백작은 귀족이었기에, 유행의 선도주자였다. 한 때는 그랬던 백작이 이제는 호텔에 갇혀 있으면서 어떻게 시대가 급변하는지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안타까웠다. 호텔 바깥에서의 변화는 호텔 내부로도 변화를 몰고 왔고, 백작이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텔 내 직급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두 종류로만 한정되었고, 그는 더이상 유행을 선도하지 않는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바뀌는데 나는 여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고인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건 상당히 비참한 기분일 것이다. 그는 현재에 살지만, 과거의 방법으로 살던 이였기에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백작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직업 특성 상 계속 지역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익숙해질 만하면 옮기다 보니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역을 이동하다 보면 거주지도 이동해야 하는지라, 살림살이를 다 들고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사회 초년생이 살림살이를 다 들고 다니면서 어떻게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을까. 당연히 내 집은 너무나도 좁았고 집에만 들어가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퇴근하면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 콕 박혀 있기만 했다. 집이 너무 좁아서 내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고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하루가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곳은 잠시 머물 곳이었지, 내가 평생 있을 곳이 아니었기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됐었다는 걸.그리고 공간이 좁은 거였지, 내 마음이 좁은 건 아니기에.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기에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다면 내가 그 환경에 좀 더 빨리 적응하고, 우울증에서 좀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내 생각에 갇혀 살지 않고, 좀 더 열린 사고를 했다면 힘든 날이 금방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호텔이라는 좁은 실내에 갇혀 있으면서도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백작을 보며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때는 유행을 선도하던 그가, 이제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혁명이라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백작을 보면 환경을 지배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호텔을 감금 장소로 생각하기 보다 자신이 평생 함께 할 동반자로 여기며 마음을 여는 백작을 보면, 삶을 살아감에 있어 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세계,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기를 원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움으로써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다.

최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밤새들의 도시‘와 ’모스크바의 신사‘를 연달아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러시아 문학의 장벽을 허물도록 하는 데 일조한 작품이라, 사놓은지 오래되어 나를 조용히 째려만 보고 있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손댈 용기가 생겼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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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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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모스크바의 신사’는 호텔에 감금되었지만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백작의 삶을 그린 책이다.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혁명에 찬성하는 시를 써서 호텔 내 ‘종신 연금형‘을 받는다. 호텔 밖을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총살형에 처하게 된다. 백작은 호텔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어린 아이인 니나가 혁명의 물결에 휩쓸린 채 어른이 된 것을 마주하기도 하고 니나의 딸인 소피야를 맡아 키운다. 소피야를 맡아 키우며 백작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음악적 재능이 있던 소피야를 위해 어떤 일을 감행한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읽는데 다소 압박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게다가 평생 호텔 내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고? 하루, 일주일, 한 달 등 일정한 기간 동안 내가 원해서 실내에 있는 게 아니라, 평생동안 ’호텔’이라는 공간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농담으로 누가 가둬놓고 취미 생활만 즐기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갇히는 건 또 다른 기분일 것이다.

백작은 책에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스토프 백작은 귀족이었기에, 유행의 선도주자였다. 한 때는 그랬던 백작이 이제는 호텔에 갇혀 있으면서 어떻게 시대가 급변하는지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안타까웠다. 호텔 바깥에서의 변화는 호텔 내부로도 변화를 몰고 왔고, 백작이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텔 내 직급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두 종류로만 한정되었고, 그는 더이상 유행을 선도하지 않는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바뀌는데 나는 여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고인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건 상당히 비참한 기분일 것이다. 그는 현재에 살지만, 과거의 방법으로 살던 이였기에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백작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직업 특성 상 계속 지역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익숙해질 만하면 옮기다 보니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역을 이동하다 보면 거주지도 이동해야 하는지라, 살림살이를 다 들고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사회 초년생이 살림살이를 다 들고 다니면서 어떻게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을까. 당연히 내 집은 너무나도 좁았고 집에만 들어가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퇴근하면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 콕 박혀 있기만 했다. 집이 너무 좁아서 내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고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하루가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곳은 잠시 머물 곳이었지, 내가 평생 있을 곳이 아니었기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됐었다는 걸.그리고 공간이 좁은 거였지, 내 마음이 좁은 건 아니기에.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기에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다면 내가 그 환경에 좀 더 빨리 적응하고, 우울증에서 좀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내 생각에 갇혀 살지 않고, 좀 더 열린 사고를 했다면 힘든 날이 금방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호텔이라는 좁은 실내에 갇혀 있으면서도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백작을 보며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때는 유행을 선도하던 그가, 이제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혁명이라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백작을 보면 환경을 지배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호텔을 감금 장소로 생각하기 보다 자신이 평생 함께 할 동반자로 여기며 마음을 여는 백작을 보면, 삶을 살아감에 있어 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세계,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기를 원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움으로써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다.

최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밤새들의 도시‘와 ’모스크바의 신사‘를 연달아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러시아 문학의 장벽을 허물도록 하는 데 일조한 작품이라, 사놓은지 오래되어 나를 조용히 째려만 보고 있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손댈 용기가 생겼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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