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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모스크바의 신사
‘모스크바의 신사’는 호텔에 감금되었지만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백작의 삶을 그린 책이다.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혁명에 찬성하는 시를 써서 호텔 내 ‘종신 연금형‘을 받는다. 호텔 밖을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총살형에 처하게 된다. 백작은 호텔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어린 아이인 니나가 혁명의 물결에 휩쓸린 채 어른이 된 것을 마주하기도 하고 니나의 딸인 소피야를 맡아 키운다. 소피야를 맡아 키우며 백작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음악적 재능이 있던 소피야를 위해 어떤 일을 감행한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읽는데 다소 압박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게다가 평생 호텔 내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고? 하루, 일주일, 한 달 등 일정한 기간 동안 내가 원해서 실내에 있는 게 아니라, 평생동안 ’호텔’이라는 공간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농담으로 누가 가둬놓고 취미 생활만 즐기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갇히는 건 또 다른 기분일 것이다.
백작은 책에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스토프 백작은 귀족이었기에, 유행의 선도주자였다. 한 때는 그랬던 백작이 이제는 호텔에 갇혀 있으면서 어떻게 시대가 급변하는지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안타까웠다. 호텔 바깥에서의 변화는 호텔 내부로도 변화를 몰고 왔고, 백작이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텔 내 직급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두 종류로만 한정되었고, 그는 더이상 유행을 선도하지 않는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바뀌는데 나는 여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고인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건 상당히 비참한 기분일 것이다. 그는 현재에 살지만, 과거의 방법으로 살던 이였기에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백작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직업 특성 상 계속 지역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익숙해질 만하면 옮기다 보니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역을 이동하다 보면 거주지도 이동해야 하는지라, 살림살이를 다 들고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사회 초년생이 살림살이를 다 들고 다니면서 어떻게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을까. 당연히 내 집은 너무나도 좁았고 집에만 들어가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퇴근하면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 콕 박혀 있기만 했다. 집이 너무 좁아서 내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고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하루가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곳은 잠시 머물 곳이었지, 내가 평생 있을 곳이 아니었기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됐었다는 걸.그리고 공간이 좁은 거였지, 내 마음이 좁은 건 아니기에.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기에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다면 내가 그 환경에 좀 더 빨리 적응하고, 우울증에서 좀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내 생각에 갇혀 살지 않고, 좀 더 열린 사고를 했다면 힘든 날이 금방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호텔이라는 좁은 실내에 갇혀 있으면서도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백작을 보며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때는 유행을 선도하던 그가, 이제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혁명이라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백작을 보면 환경을 지배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호텔을 감금 장소로 생각하기 보다 자신이 평생 함께 할 동반자로 여기며 마음을 여는 백작을 보면, 삶을 살아감에 있어 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세계,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기를 원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움으로써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다.
최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밤새들의 도시‘와 ’모스크바의 신사‘를 연달아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러시아 문학의 장벽을 허물도록 하는 데 일조한 작품이라, 사놓은지 오래되어 나를 조용히 째려만 보고 있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손댈 용기가 생겼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