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TURN 6
정이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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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결국은 사랑이 이긴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해리포터와 볼드모트는 태생부터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그들은 혼혈 태생에 마법사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둘은 각각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은 인물들이 ‘사랑‘이라는 한 가지 차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는 사고로 부모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사랑할 줄 안다. 그러나 볼드모트는 평생 자신을 연민하며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열 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은 볼드모트처럼 사랑할 줄 모르는 독재자와 맞서 싸우는 수많은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다.

’은수’는 사랑이 금지된 세상에서 사랑을 말하는 ‘이브‘를 사랑한다. 독재자의 명령을 거부한 뒤 실종된 엄마의 행방을 좇다 소녀원에 입학한 은수는 ‘리수‘를 만난다. 리수는 교관들의 지시를 거부하고 학교에서 계속 사랑을 말하는 반동분자로 학교의 주목을 받는다. 소녀원에서는 사랑을 말하다 걸리는 학생은 기억삭제실로 끌려가고, 일정 부분의 기억을 삭제당한다. 그렇게 기억이 계속 삭제되다 보면, 소녀는 결국 감정을 잊고 독재자가 바라는 우성 인간으로 자라서 졸업한다. 그러나 기억삭제 코드가 완전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은수와 은수를 돕는 해커 ‘파머‘는 은수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라일락 코드를 해독하려 한다.

은수는 소녀원의 우등생으로 불리고 리수와 은수는 서로를 탐탁치 않아 한다. 룸메이트로 지내게 된 은수와 리수는 어느 날, 서로가 은수의 엄마인 ’은주’와 관련있음을 알게 되고 필담으로 서로의 정체를 공개한다. 은수가 그토록 사랑하던 이브는 사실 ‘리수’였던 것이다. 리수는 독재자에게 저항하기 위해 이브의 얼굴로 세상에 사랑을 소리치지만, 부작용으로 기억이 조금씩 잊혀진다. 은수는 리수를 학교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백신 코드를 리수에게 주입하지만, 백신의 부작용으로 리수의 몸 일부가 점점 나무로 변한다. 이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교에는 라일락 꽃이 가득해진다. 은수는 리수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고, 숨김 없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이 금지된 세상이라니 너무 흥미로운 소재라 단숨에 읽어내렸다.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독재자는 자신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사랑을 끊임없이 말하는 리수를 질투해서 이런 법을 만든 거라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열등감에 찌든 인간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우성 인간의 가면. 사람이 누가 낫고 누가 못났고를 누가 정한단 말인가. 심지어 그걸 법제화까지 한다니, 정말이지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만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의 계절은 항상 겨울이다. 그러나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움츠렸던 꽃은 싹을 틔우기 위해 발돋움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은 끝나기 마련이다. 마침내 봄은 오고, 라일락은 개화한다.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꽃내음을 맡고, 각자의 생각을 펼친다. 나 하나 용기낸다고, 달라진다고 해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하나쯤이니까 달라질 수 있다고, 용기내서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무력감에 휩싸이지 말고, 나 하나니까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현재는 용기 낸 이들이 만들어낸 과거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서포턴즈로 활동하며 턴시리즈의 책을 다 읽었지만,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할 정도다. 낭만 사랑니도 문장 수집용으로 최고였지만, ‘열 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도 문장 수집용 책으로 최고다. 요즘 세상이 사는 게 너무나 각박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을 구석이 점점 없어져 가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사랑을 노래해야 한다. 사랑이 있어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긴 서평을 쓸 수 밖에 없다. 책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게 당연한데도, 다 읽고 나니 라일락 향기가 가득했다. 진한 꽃 향기를 느끼며 쓰는 서평이라니, 참 낭만적이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결국 사랑으로 이겨낸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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