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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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행복

 

모두의 행복은 버지니아 울프가 쓴 모든 글을 정원이라는 주제의 챕터별로 나눠서, 그녀가 평소 정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감없이 볼 수 있습니다. 유년기의 정원, 런던의 정원, 문학 속에서 그린 정원 등 여러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등장하는 정원은 모두 다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죠.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정원에 있을 때 행복감과 안정을 느껴 자신만의 공간으로 인식해서, 정원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에세이나 편지에 많이 쓰곤 했다고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정원이란 일상 속의 피난처이자 안정을 찾는 나만의 공간입니다. 그녀가 정원에서 보낸 시간은 글 속에 잘 녹아 들어가 있는데, 그녀가 정원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마치 모네의 작품을 보는 듯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져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정원에 대한 글들을 모두 발췌한 산문집이기 때문에 다소 산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용하게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저 또한 고요히 산책을 하며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느낄 수 있습니다. 엄청난 사건이 생기는 건 아니더라도 정원을 거닐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반추하는 그녀를 보자면, 이 책을 읽는 저 또한 일상의 행복을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일에 몰두하는 모습, 퇴근 후 읽고 싶던 책을 열중하여 읽는 모습 등 큰 사건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조용히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한 저의 일상을 보다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라는 감정 외에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울림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재독을 하며 천천히 곱씹어봐야겠어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버지니아 울프가 여자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있으면 된다고 말했는지, 확실하게 이해했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처럼 제게도 이 이런 안정감을 주는 공간인데, 그런 공간이 하나라도 있으면 사람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원을 거닐며 행복이라는 단어 없이 행복을 표현한 글을 읽으며 저도 제 방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웠습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그녀의 모든 글 이곳 저곳에서 정원에 관련된 글만 발췌한 글 모음집이라, 가지치기마냥 읽을 책이 증식해서, 그 책들을 어느 정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책에 몰두하여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진 버지니아 울프를 항상 동경했는데, 이번에 모두의 행복을 읽으며 그녀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 기쁘네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모두의 행복에 수록된 그녀의 편지나 에세이도 행복하게 읽을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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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번째 여름 (양장) 소설Y
청예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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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알지만 그럼에도 결말을 바꾸기 위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들의 사량 이야기.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국한시키고 싶지 않지만 사랑을 빼놓고선 이 책을 논하기 어렵다. 등장인물 별 시점이 나오는데, 시점별로 장면이 겹치기도 하지만, 등장인물의 속내를 알아가는 묘미가 있어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지키고 싶던 단 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니, 속절없이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던 최선을 다한 것이니까. 사랑하니까 목숨 바쳐 구하는 선택도, 자신의 쓰임새를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행복해 하는 모습도 전부 응원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가족 간의 관계, 우정과 사랑 사이 그 어드매에 있는 관게, 나와의 관계 등을 돌이켜보게 한다. 담담하게 서술된 문장을 통해 삐져나오는 감정이 더욱더 짙은 여운을 남긴다. 평생동안 자신의 쓰임새를 고민한 일록의 외로움도, 주홍을 살리기 위해 주홍을 버린 이록도, 배신자라 알고 있지만 이록을 구하려 애쓴 주홍도. 모두의 입장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읽고 난 뒤, 계속 곱씹게 되었다.

이 책의 여름은 계절적 배경이기도 하지만 관념적인 의미에서 보면 등장인물들의 감정 같기도 하다. 들끓는 햇빛과 무성한 초록들 사이로 숨어버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의 감정. 여운이 짙어 쓰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꼭 읽어보세요.“. 다가오는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다가오는 멸망을 막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을 향해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 타임루프물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뮤지컬 하데스타운이 떠올랐다. 끝을 알지만, 그럼에도 다시.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올해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일억번째 여름이 올해의 책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감명 깊게 읽었다. 청예 작가님 사랑단이라면 무조건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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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에밀리 오스틴 지음, 나연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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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길다. 그녀는 동성애자인 걸 숨기고 성당에 취업하기도 했고, 애인인 엘리노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유일한 행복으로 여기기도 한다. 자신의 전임자인 그레이스의 죽음을 모르는 로즈마리가 슬픈 게 싫어서, 그레이스인 척 하고 메일을 보내는 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간혹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지만, 길다는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을 품고 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따스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냉혹하다. 길다의 우울감, 불안함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타박만 받지만, 길다는 가족을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동생 일라이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그가 죽었을까봐 걱정하고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나쁜 일들을 상상하지만, 그와 연락이 닿고 안도한다.

 

이런 길다의 모습을 보면 애틋하다는 생각이 든다. 길다 본인도 본인이 사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살아가는 걸 힘겨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간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살아가려 애쓴다. 그래서 그녀가 애틋하고 안쓰럽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한 번 삶의 궤도를 놓치더라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읽다보면 길다의 불안한 마음이 보이는 서술 방식이 다소 지칠 때가 있다. 우울증이 심해 집에 안 씻은 컵이 쌓이고 고장난 리모컨과 전등을 내버려둔 채로 계속 살거나, 며칠씩 출근을 안 하는 게 반복되는 걸 보면 책을 넘기기 힘들 때도 있다. 다 읽고서 왜 이런 서술이 불편했는지 생각해봤는데, 열심히 고민한 결과 답을 알아냈다. 나같아서다. 직장을 다니며 힘들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해는 유독 힘들어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옷 갈아입는 데도 힘이 들었다. 씻지도 못하고 잠만 자다 새벽에 일어나 아무거나 주워 먹고 아침이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삶을 반복했다. 빨래와 설거지거리는 쌓여만 가고 반찬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음식을 방치했다. 사실 그때의 기억이 명확하지 나지는 않는다.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잊기로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가 겹쳐보여서 읽는 내내 안쓰럽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듯이, 길다의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약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길다가 끝까지 살아보려 하는 게 너무나 애틋하기에 그녀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남들과 다를 바 없어도 그 삶이 내게는 너무나 지치고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려 애쓰는 길다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린 친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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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히지 않는 문
엄성용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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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지만 읽는 데 전혀 문제 없이 잘 읽을 수 있다. 동양풍 오컬트물 소설은 워낙 귀해서 찾아 읽는 편인데, 띠지의 문구인 귀를 소환하려는 자와 귀를 끊어내려는 자라는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아 단숨에 읽어내렸다. ’를 소환하는 방법이 담긴 고서적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이준과 영문도 모른 채 지하철에 갇혀 절망한 성식과 정은의 이야기를 읽는 초반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작가님의 이력 중 웹소설 연재도 있ᄋᅠᆻ는데, ’닫히지 않는 문에서도 웹소설의 느낌이 나서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ᄋᅠᆻ다. 그러나 중후반부로 전개될수록 사건의 개연성이 약간 부족해 보였다. 형사가 갑자기 인간은 선하다며 희생하는 부분이나 소희가 고서적에 잠식되는 부분, 고서적이 인피로 만들어진 이유, ’가 강원도에서만 소환할 수 있는 이유 등이 나와있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작가님이 호러 소설을 좋아하시는 만큼 무서운 장면들은 장면이 생생히 보이는 듯 서술되어 더욱 재밌게 읽었지만, 후반부의 떡밥 회수가 약간 아쉬워서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봤다. ’동양풍 오컬트물이 워낙 마이너한 장르라서, 이런 장르를 출간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되게 감사한 일이다. 귀하디 귀한 이 동양풍 오컬트물 장르를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동양풍 오컬트물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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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 바리스타
송유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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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각각의 고민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걸 극복해 나가는 게 삶이다는 걸 보여주는 책. 달순이 겪는 치매가 사람들의 고민 상담소가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너무나도 사람 냄새 풍기는 인간적인 일들이라 따스한 시선으로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좋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저를, 기억 속에 숨겨주셨어요"라는 문장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필사하면서 4주동안 열심히 읽었는데,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읽다보니 필사할 때도 보다 공들여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비가 오는 날이 많겠지만,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장마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비가 싫지만, 비를 맞아서 따듯한 물로 샤워하는 순간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모든 경험은 삶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괴로워한 뒤 커피 한 잔 마시며 털어내도록 도와주는 힐링소설, 별다방 바리스타. 따뜻한 문체와 온기 가득한 감성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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