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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에밀리 오스틴 지음, 나연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도서협찬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길다. 그녀는 동성애자인 걸 숨기고 성당에 취업하기도 했고, 애인인 엘리노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유일한 행복으로 여기기도 한다. 자신의 전임자인 그레이스의 죽음을 모르는 로즈마리가 슬픈 게 싫어서, 그레이스인 척 하고 메일을 보내는 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간혹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지만, 길다는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을 품고 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따스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냉혹하다. 길다의 우울감, 불안함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타박만 받지만, 길다는 가족을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동생 일라이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그가 죽었을까봐 걱정하고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나쁜 일들을 상상하지만, 그와 연락이 닿고 안도한다.
이런 길다의 모습을 보면 애틋하다는 생각이 든다. 길다 본인도 본인이 사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살아가는 걸 힘겨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간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살아가려 애쓴다. 그래서 그녀가 애틋하고 안쓰럽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한 번 삶의 궤도를 놓치더라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읽다보면 길다의 불안한 마음이 보이는 서술 방식이 다소 지칠 때가 있다. 우울증이 심해 집에 안 씻은 컵이 쌓이고 고장난 리모컨과 전등을 내버려둔 채로 계속 살거나, 며칠씩 출근을 안 하는 게 반복되는 걸 보면 책을 넘기기 힘들 때도 있다. 다 읽고서 왜 이런 서술이 불편했는지 생각해봤는데, 열심히 고민한 결과 답을 알아냈다. 나같아서다. 직장을 다니며 힘들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해는 유독 힘들어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옷 갈아입는 데도 힘이 들었다. 씻지도 못하고 잠만 자다 새벽에 일어나 아무거나 주워 먹고 아침이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삶을 반복했다. 빨래와 설거지거리는 쌓여만 가고 반찬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음식을 방치했다. 사실 그때의 기억이 명확하지 나지는 않는다.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잊기로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가 겹쳐보여서 읽는 내내 안쓰럽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듯이, 길다의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약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길다가 끝까지 살아보려 하는 게 너무나 애틋하기에 그녀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남들과 다를 바 없어도 그 삶이 내게는 너무나 지치고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려 애쓰는 길다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린 친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