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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평점 :
엄중한 헌법 재판소, 그곳에서 꼿꼿한 목소리로 “파면한다”라고 말하던 문형배 재판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판사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작은 답이자, 한 법관이 걸어온 길 위에 남긴 기록이다. 문형배 재판관은 공직자 생활 동안 품었던 생각과 성찰을 담담히 엮어 『호의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일상과 자연, 특히 나무를 통해 삶을 성찰한 이야기이고, 2부는 그가 읽은 책들을 통해 얻은 배움과 사유가 담겨 있다. 3부는 사법부의 현안에 대한 견해로 채워져 있다. 얼핏 평범한 구성 같지만, 읽다 보면 글 속에 배어 있는 태도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겸손함'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읽으면서 마음에 머물렀던 대목은 사형제도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사형제도가 남아 있지만 실제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스위스처럼 폐지한 나라들도 있는데, 그 이유는 오판의 위험, 그리고 국가가 이성적인 판단 아래에서 ‘살인’을 행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 문제는 법률 전문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였는데, 그의 글을 읽으며 시민으로서 다시 숙고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법과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들을 위해서도 친절하게 글을 풀어낸다.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같은 조언은 법을 가까이하지 못한 이들에게 작은 팁을 건낸다. 무엇보다 착한 사람들이 법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그의 당부는, 법이 결코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이런 점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갖게 한다.
책 곳곳에는 판사라는 직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소명으로 여겨온 흔적이 묻어난다. 지금처럼 사법부가 불신을 받고 있는 시대에, 이 글은 다른 판사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성찰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화려한 수사나 거친 언어 대신, 담담하고 고요한 문장들이 곧은 마음으로 다가온다.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라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함을 느꼈다.
다만 3부 「사회에 바란다」에서 다루는 사법부 현안에 대해서는 법과 친하지 않은 내게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모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조차도 독자로 하여금 더 배우고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겨준다.
책에서 말하는 ‘호의’에 대해 곱씹어 본다. 어쩌면 가장 엄정한 법이라는 잣대 위에 인간적인 따뜻함, 선의, 호의가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작은 마음들이 결국 사회를 원만하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법을 아는 사람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평범한 일상과 시민의 삶을 존중하는 시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형배 재판관이 말하는 호의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에 관한 성찰이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더없이 진중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서 정의를 찾아내게 만드는 책 『호의에 대하여』, 추천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