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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평점 :
고전이 그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유연함에 있다. 오랜 시간 문화와 사회에 깃들어, 때로는 도덕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 어떻게 유연함을 가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수천년 전의 글이 오랜 세월 동안 무궁 무진한 변화에도 적용될 수 있었을 정도로 유연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특히 동양 문화에 근간이 되고,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공자의 “논어”라면 더욱이 그렇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내게는 그저 그림같은 한자들에 눈이 팽팽 돌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수천년동안 이렇게 당연한 것을 왜 지키지 못하고 사는가에 대한 의구심 또한 떨칠 수가 없었다. 동양 사유의 기본을 말하는 <논어>가 2020년의 목표 중 하나였던 고전읽기에 또다른 불씨를 지펴주었다.
덕을 수양하지 않고 학문도 구하지 않으며 의로움을 듣고도 행하지 않고 선하지 못한 것이 있어도 고치지 못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곧 내가 걱정하는 바다.
고전은 지루하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차별적인 시선들에 속이 쓰리기도 하다. 유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 중에는 공자가 나라의 걱정을 하느라 가정의 안위를 살피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능한 가장으로서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조선 시대의 청렴 결백 선비가 현대에서 받는 평판과 비슷하겠다. 이 모든 새로운 시각에 옳고 그른 잣대를 대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맞는 줄 알았고, 이제는 이게 맞는 것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여전히 우리 동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나 또한 야사와 같이 전해지는 공자의 몇몇 일화를 들어오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도 이루지 못했다면 그 학문은 탁상 공론이 아니고서야 뭐겠는지에 대한 회의를 품어 왔다. 하지만 <논어>의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하나. 맞는 말이기는 맞는 말이다.
인덕을 좋아하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우롱을 당하는 것
지혜를 좋아하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탕하게 되는 것
믿음을 좋아하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가까운 이를 해치는 것
정직을 좋아하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말이 날카로워지는 것
용기를 좋아하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을 도모하게 되는 것
강직을 좋아하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자기 망상이다.
<논어> 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학습과 국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국치의 바탕은 옳은 사상으로 바르게 배운 이들에 의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다는 것에서 결국 <논어>의 핵심은 학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이 학습은 개인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대한 소양에서부터 가족과의 관계에 까지 얽혀 있으니 공자에 따르면 인생은 결국 배움의 연속인 것이다. 한자로 눈이 팽팽 돌고, 함축적인 의미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옮긴 이의 조언에 따라 문장들을 억지로라도 씹어내리다 보면 신기하게도 요즘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답변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제 17편 양화에 나와있는 위의 구절이 그랬다. 요즘처럼 사람간의 거리가 멀어진 시기에는 나를 비롯한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고는 한다. 인간의 성품에 있어 이 말 처럼 옳은 결론이 어디있겠는가.가 나의 결론. 공자가 말한 배움은 결코 책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답답한 강직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함께 학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도 함께 도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함께 도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도를 견지할 수 있다고 해도 반드시 함께 이 세상사에 임기응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전문가로서 해박한 지식을 함께 풀어내며 <논어>를 옮겨낸 소준섭 박사의 해석과 함께 읽어 내리는 고전 <논어>는 고리타분한 고전의 느낌보다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나의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조언하는 등대의 역할을 해 주는 듯 하다. 해석에 집중해 결론을 내리는 데에 급급하지 않도록, 소준섭 박사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우리 시대의 <논어>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덕분에 도덕 시간에, 국어 시간에 배운 논어의 해석에서 벗어나게 되어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파급 효과일 것이다. 관계중심적인 지향을 말하는 논어는, 개인의 가치를 중시 여기는 21세기의 사상과는 차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열린 시각으로 논어를 바라본다면, 그로 인해 그 관계 중심의 사상 또한 결국 나를 바로 세우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면 <논어>는 기꺼이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든든한 지지대로 남아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