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한주 기행
백웅재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혀 끝을 맴도는 맛에 더하는 이야기, 우리 술 한주 기행



처음으로 마셔봤던 소주의 맛을 잊기란 쉽지 않다. 무슨 정신으로 배우는지 모르겠던 그 가족 모임에서의 첫 소주, 악으로 마셨던 20대 초반의 격정의 음주기를 거쳐 이제는 한달에 한 두번, 좋은 사람들과의 술만을 즐기고 있는 지금까지.가까이 지내는 이들은 모두 믿지를 않지만, 술을 50일 정도 끊어본 적도 있다. 365일 중 50일을 끊었다고 대단한 걸 했다는 둥 말하는 것 같기는 하겠지만, 연일 마시던 술을 50일이나 끊으면서 느낀 건 술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면면이 의외로 크다는 것이었다. 많은 약속들이 술에 기반한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대화들이 술이 없이는 조금 아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것. 새로운 이를 만나는 데에도 술이 주는 도움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더라. 아쉽기도 슬프기도, 술을 마실 핑계를 찾아 기쁘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최근 술을 조금씩 “즐기기”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술에 대한 지식이었다. 시작은 위스키와 와인이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자주 즐기지 못하는 술이었기 때문이었고 특히 와인의 경우에는 적정한 보관또한 그 맛을 결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에 테이스팅을 거치면서도 교과서같은 맛을 느끼기가 어려웠던 이유다. 그러던 중 출판사 창비의 <우리 술 한주 기행>을 읽으면서 술에 대한 욕심이 또 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술, 한국의 방식을 고수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녹여낸 술의 이야기가 담겼다. 


 

내가 정의하는 프리미엄 한주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쓰고, 누룩을 사용해 술을 빚어 장기 숙성하고, 인공 감미료는 넣지 않은, 그러면서도 충분히 문화적 가치가 있는 술들을 말한다. 



K-POP이 빌보드 차트에 들어가고 K-Beauty가 그 위상을 떨치는 요즘, K-alcohol의 문화는 어떤가? 음주 문화라면 러시아인이 혀를 내두룰 정도이지만 정작 한국의 술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국제 공항이 문을 닫은 지금에는 당장이라도 홍천이고 문경이고 차를 몰아 이 온갖 이야기가 담긴 술들을 한모금씩 느끼며 그 여운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에 사람을 만나며 취해든 저자 백웅재 작가가 써내린 양조장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 술 한주 기행>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어떤 것에 얽힌 역사를 좋아하는 이라면 책의 마지막까지 웃음을 띄게 될 듯 하다. 술 하나에, 양조장 하나에, 그 옅은 빛깔 하나에 얽힌 술의 이야기와 양조가의 역사가 얽히니 취하는 줄 모르고 젖어들게 되니 말이다. 단순한 술에 대한 이야기라면 조금 지루했을 법도 하겠지만, 정말이지 모든 지역과 사람에 얽힌 이야기와 그의 전문적인 지식들이 더해지니 그 깊이와 풍미가 한층 더 살아나는 기분이랄까. 



그 곳에 가야만 마실 수 있는 술이 있다는 건

그 곳을 꼭 다시 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 중 마음을 뒤흔든 이야기는 첫번째로 소개되었던 #미담양조장 에 담겨 있다. 홍천에 위치해 여인이 혼자 술을 빚는다는 이야기. 처음 소개하니 만큼 강렬한 이야기를 담아서인지 “오미가 다 담겨있고 향이 화려한”술을 빚는다는 그 말에 생강주의 향을 감히 상상했던 이유였는지, 온 몸으로 술을 빚어내 그 향을 담아내었다는 역사가 마음 깊이 닿았다. 술이야 취하려고 마시는 것, 이라는 부끄러운 신념 때문일지도. 그저 알코올 정도로 이해했던 술에 이다지도 많은 표현을 적어내리는 저자의 글에 감탄도 했다. 석탄주며 송화주며, 역사가 숙성된 술의 매력도 매력이지만은 그를 알아주는 누군가들이 있다는 데에도 그 행복이 녹아들지 않을까. 하루라도 빨리 이 술들을 옆에 두고 책을 교과서 삼아 충분히 음미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사람도 중년이나 노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듯이 술도 개성에 따라, 또 마시는 사람의 취향과 관점에 따라 가장 좋은 때가 달라진다.




누군가, 무언가. 둘 중 무엇이든 그에 대해 배워간다는 것은 사실 무서운 일이다. 사연 없는 이가 없듯이 그에 젖어들게 되면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술 한주 기행>은 나에게 있어 무서운 책이다. 간신히 놓았던 밤 늦은 혼술의 의미를 되살리니까. 짙은 오크향에 진절머리를 치던 위스키의 첫 맛은 석 잔쯤 되면 코 끝의 여운으로 남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니 우리의 술이 가지는 그 의미는 오죽하랴. 취하기 위해 먹지 않더라도 충분히 마음에 점을 남기는 한주 한 잔이라면 아쉬운 채로 끝나는 명절의 끝 자락에 어떤 의미를 더해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