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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친척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슬픔도 ‘인생의 친척’처럼 <인생의 친척>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웅진출판사 / 1997

 


 

눈이란 정말,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기억 저편에 있는, 지금은  잊혀진 아득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한 대목.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에 얼어 죽어갈 때, 유일하게 소녀를 지켜주며 위로했던 것은, 다름아닌 소담스레 내리는 눈이었다.   고 생각된다. 눈은 녹고 난 후의 지저분함과는 상관없이, 그 포근함과 순백의 깨끗함에서 정갈하다 못해 성스러운 마음까지도 갖게 한다. 그 성스러움은 현실과 괴리된 저 하늘 위의 무엇이 아니, 우리 곁에서 발 딛고 서 있는, 친근한 성스러움이다. 그것은 우리의 고통 어린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보살펴주며 치유해주는 것이다. 마치, 추운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성냥팔이 소녀를 어루만져주었던 눈처럼,

 

나에게 있어, ‘치유’, 또는‘성스러움’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는 아마도 일본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이다.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문학성은 익히 정평이 나 있긴 하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는 노벨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평생을 ‘장애아 문제, 핵, 공동체, 실존’등을 소재로 다루면서 인간의 구원을 희구하는 작품을 주로 썼기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 대다수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문학이며, 어찌 보면 손쉬워 보이는‘죽음’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처절하고 힘들지만, 우리가 의무적으로도 살아내야 할 ‘생(生)’을 지향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마치 생(生)에 대한 간절한 기도문 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애아는, 정상(이라고 말해지는)인에게는 상실된 근원적 영혼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지성의 비판자로, 동시에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강하게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고통을 감지하고 또 그 고통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로서 오히려 보통 사람 이상의 존재로 설정된다. 이러한 점은 특히 <인생의 친척>에서 잘 드러나 있다.

 

“마리에는 갑자기 찾아온 슬픔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받아들인다. 언제까지고 감정에 얽매이기에는 생활이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나 괴로워서, 어느새 고통도 기쁨도 잊는 일에 더 많이 익숙해져 있는 우리와는 달리…. ”

 

이 작품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슬픔을 감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라는 설명에 걸맞게, 생(生)의 최대치의 불행을 경험한 한 여인의 고통과 그 극복의 과정을 깊고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우리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바닷가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진, 장애를 가진 두 아이의 유해 앞에서, 그 고통의 늪에서 몸부림치며 결국에는 구원을 얻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아이들이 과연 왜 자살을 했는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며 신을 원망하던 마리에가 “결국은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구원을 얻게 되는 험난한 인생 여정이 펼쳐져 있다.

 

두 아들의 죽음이라는 부조리한 고통에 직면하여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살아가면서 죽은 아이들을 기억하는 ‘삶’을 선택한 어머니. 자식들이 죽고 난 뒤, 그녀는 평생을 살아온, 삶의 근원이다시피 한 일본을 벗어나 먼 타국인 멕시코의 농장에서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면서 그들을 보살피며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에서 멕시코의 농장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성녀(聖女)’의 모습을 발견한다. 결국, 슬픔이나 고통은 평생 혼자서 껴안고 갈 수 없으며, 타인과 더불어 위로하고 위로 받으면서 가야 하는 건 아닐까?

 

광활한 멕시코 농장의 들판에서 펼쳐진 영화 상영막을 통해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나오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이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했으면,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각인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그녀지만, 그녀 또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원하는 것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기억되기를… 

 

그것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찬 인생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낸 강인한 자들만이 누리는 축복”이며, 그로 인한 자기 승화이자 치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슬픔(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삶에서 도피적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종교의 순례나 자기를 방기하다시피 발생하는 육체적인 쾌락을 통한 편력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절제와 희생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만 고통이 치유됨을 깨닫게 한다.

 

소설 속에서 마리에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스페인어‘Parientes de la vida’ 즉 ‘인생의 친척’은,     살아가는 데 있어 고난을 함께 하는 사이 진정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작중 화자가 발견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서의 문구처럼 어떤 처지의 인간에게도 쫒아다니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인생의 친척’으로서의 슬픔”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우리는 인생에서 아주 큰 슬픔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까? 보통의 경우는 갑자기 닥친 슬픔과 고난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거나, 아니면 역설적이게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만큼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에 감사하며, 잊은 듯, 잊으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마다 각자 슬픔에서 헤쳐 나오는 모습들이 다르겠지만……. <인생의 친척>에 나오는 마리에의 모습은 정말, 너무 치열하고 숙연하며 성스러워서 감동적이다 못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 

 

우리는, 우리의 생(生)에서, 결코 원하지도 않았고, 달갑지 않은 “인생의 친척인 슬픔”을 만났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할까….  *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 1935년 일본 에히메 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지 편집을 하며, 시와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는데 1957년 교내 신문 소설 현상공모에 <기묘한 일>로 입상한 후, 문예지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전후 가장 촉망받는 청년작가로 인정받는다.

등단 후 역동적 상상력을 토대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실존과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표현하되 이를 사회문제와 결합하는 특징을 지닌 작품들을 줄곧 발표해 온 그는, 아쿠타가와상(1958),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1985) 등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전후세대의 대표적 작가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1994년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개인적 체험>, <핀치러너 조서>, <'나의 나무' 아래서>, <인생의 친척>, <2백년의 아이들>, <체인지링>, <동시대게임>, <치료탑>, <레인 트리를 듣는 여자들> 등이 있다.

 

박유하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게이오 대학 국문과(일본문학)을 졸업하고, 이후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했다. 연구활동 이외에도 통역사로서 노태우 전 대통령, 다케시타 전 일본 수상 등이 참석한 정재계의 주요 회의 통역을 맡았고,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 한국어 강사, NHK 국제국 아나운서 등 일본 사회를 폭넓게 접할 기회를 가졌다.

1993년 귀국한 뒤 일본을 소개하는 작업의 하나로 <20세기 일문학의 발견(전 12권)>을 기획, 번역했다. 2007년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이며 타자론, 탈식민지주의, 페미니즘,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음>, <만엔원년의 풋볼>, <인생의 친척>, <풍장의 교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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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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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기형도 지음/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년

 


 

요즘에는 “문학”이란 단어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문학 목매어 죽어도 좋을 나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문학이 대접(?)을 받는 때가 있었다.

 

요즘에는 새해가 되면 각 신문사마다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난이 있었는데, 아주 인기가 많았다. 문학인을 꿈꾸든, 아니든 소위 문화적, 또는 문화적으로 교양이 있다고 자부할라치면, 문학에 대한 나름의 조예가 있어야 어디 가서 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는 때였다. 그때는.

 

1985년도였던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란에 소개된 “안개”라는 시를 보곤 난 너무나 놀랐다. 일단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온통 희뿌연한 안개이 이미지가 암울하게 다가왔다. 이 안개의 이미지는 그 유명한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약간은 로맨틱하고 우수어린 안개가 아니라 앞이 꽉 막힌 듯한, 어디로도 갈 곳 없어 헤매는 듯한, 출구 없는 비명 같은 느낌이 스산하게 날 엄습해왔다.

그 느낌은 너무나 낯설고 두렵고 놀라웠다. 그러나 그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는 잊혀졌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의식 저편으로 밀쳐진 그 시(詩)가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90년이던가…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듯했던 3월. 우연히 서점에 들러 시집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나 특이한 제목으로 인해 내 눈길을 끈 시집이 있었다. <입속의 검은 잎>이라니… 도대체 어떤 시일까?  무심코 시집을 뒤적이다가 너무나 놀랐다. 그 시집에는 예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란에서 봤으나 잊혀졌던, 시인이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잊혀지지 않았던,  <안개>라는 시가 첫장에 실려 있었다. 그게 기형도라는 시인을 만나게 된 사연이다.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중략)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안개> 중에서



 

 

알고 봤더니, 기형도란 시인, 꽤나 유명한 시인이었다. 특히 1990년대의 시대적인 아이콘이 되어버린 시인. 특히나 대부분의 젊은 우상들이 그렇듯이 젊은 시절에 요절한 시인이라는 것 때문에 신비적인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 그 완전한 사라짐이 사실은 세계를 지탱하는 힘일는지도 모른다”라는 故 김현 선생의 평처럼, 그는 죽어서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르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빈 집> 전문(全文)

 

 

 

<빈 집>을 비롯, 기형도의 시들은 대부분 절망적이다.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라고 분석한 김현 선생이 말이 아니더라도 기형도의 시 전반에 흐르는 이미지는 절망 또는 죽음이다. 그것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절망감이다. 아니, 어쩌면 절망의 밑바닥까지 다다라야만 다시 비상(飛上)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우선 나는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전문(全文)




이 시를 읽다보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설 자리가 없네…”라는 가시나무새라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뭐든 너무 과하거나 모지라면 문제가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어쩜 이리도 잘 대변했는지… 이미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이 제목은, 기형도의 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어쩌면 나도 질투가 나의 힘일까?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으며,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등에서 근무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그는 독창적이면서 강한 개성의 시들을 발표했으나 1989년 3월 아까운 나이에 타개했다. 지은 책으로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짧은 여행의 기록>,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전집 <기형도 전집>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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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 교양선집 6
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 까치 / 197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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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엔 어제, 심지어는 방금 전에 들은 얘기도 기억이 잘 안 날 때가 있다. 뭔지 아득한 느낌이 들면서 어색한 듯한 기억의 가물거림…. 그러나 너무나 이상하게도, 어떤 때는 과거 수십년 전의 기억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나곤 한다. 특히 책이나 영화에 관한 기억들은 더욱더 그 편차가 크다.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는 고등학교 때 선배가 권해준 책이었다. 책의 제목처럼, 자신의 전 생(生)을 불꽃처럼 살다간 그녀의 삶은 나에게는 내 생(生)의 나침반이자 삶의 표상으로 삼고 싶었다.

1909년부터 1943년까지, 세른네 살의 생을 살다간 그녀의 삶은, “행동하는 지성인”이자“금욕주의 혁명가”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가 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아닌, 어쩌면 회색에 더 가까운 이미지…  그녀는 “성녀(聖女)라는 말로도 어울리지 않는 뭐랄까, 청빈(淸貧)한 삶을 산 혁명가(?)이자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그 당시 유행하던 마르크시스트도 아니면서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넘쳐났다.”라고 이 책의 지은이는 회고하고 있다. 

<제 2의 성>의 저자이며 사르트르와의 계약연애 등으로도 유명한 시몬느 드 보봐르가 부르주아적인 성향과  냄새를 풍겼다면, 시몬느 베이유는 철저한 금욕주의적인 삶으로 인해 자주 비교되곤 했다. 실제로 시몬느 베이유와 시몬느 드 보바르가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는데, 부르주아 냄새를 풍기는 시몬느 드 보바르를 시몬느 베이유가 경멸하는 바람에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도 한다….

 시몬느 베이유는 노동자/서민들의 고통이 자신의 영혼과 살 속에 파고들어 왔다고 말한다. “그녀는 세상의 가장 낮은 사람보다 더 혜택받은 생활을 하는 것에 항상 죄의식을 느꼈다. 세상에 굶주리고 헐벗는 사람이 있는 한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시몬느 베이유의 일생을 관통한 '인간의 조건'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철저해 그녀는 후에 기독교에 깊이 빠졌을 때도 끝내 세례를 받지 않았다. 기독교라는 한 세계에 속하게 되면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으며,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소홀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음의 시 (詩)는 시몬느 베이유가 말년에 애송했다고 하는 조지 허버트의 '사랑'이란 시다.

 

'사랑은 말한다 받아들이라고.

그러나 내 영혼은 의심과 죄에 휩싸여 뒷걸음친다.

하지만 눈치빠른 사랑은

내가 들어가려다가 물러서는 것을 보고

다가와서 상냥하게 물었다

무엇이 부족해 못 들어오느냐고

저는 여기에 들어갈 만한 손님이 못 됩니다.

하고 대답하자 사랑은 말했다.

그대가 바로 그 손님이 되리라

나는 인정머리 없는 배은망덕한 자일까? 아 사랑이여

나는 당신을 바라볼 수도 없다.

사랑은 내 손을 잡고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나말고 누가 그대의 눈을 만들었을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저는 눈을 망쳐버렸습니다.

수치스러운 저는 어디로든 가야겠습니다. 절 버려두십시오.

사랑은 말했다. 누가 그 멍에를 졌는지 모르느냐고?

사랑이여, 그러다면 제가 몸을 바치겠습니다.

자, 앉아서 내 살을 먹어라. 사랑은 말했다.

나는 앉아서 그리고 먹었다.

위 시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금욕주의 혁명가”의 생을 산 그녀의 사상 이면에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고 싶은 사랑으로 가득찬 모습이 배어있다. 이런 그녀가 “용감하고  순수하고,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며 독립적인 면을 가진” 철학자 스피노자를 좋아한 이력이 묻어난다고 할 것이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소”라는 말로 더 유명한 그 스피노자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굶주리며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목도하고는 먹는 행위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게 된 시몬느 베이유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굶주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  누추한 잠자리와 거친 일과 굶어죽기 않을 만큼의 식사를 고집했다. 병적으로…….결국 굶주림은 그녀의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우리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우리 자신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음을 알고 여기에 대비하도록 하자. 우리의 힘은 작은 것이지만 이 작은 힘이라도 우리의 이상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의 손아귀에 넘겨 주지 않도록 하자. 최소한 우리의 명예를 지키자.”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지구상의 절반은 굶주려서 죽고, 절반은 너무 많이 먹어서 고통스러운 이 세상…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끊임없이 소비를 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이 시대에는 정말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사상가일지도 모르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그녀가 다시 절절하게 생각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끔씩 쥐꼬리만한 기부금을 통해 이 세상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듯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돈이 더 있으면 더 많이 할 텐데…라며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 취하고 만족한 뒤에 기부를 하는, 그래서 조금은 불편한 나의 마음과 죄의식에 대해, 끊임없이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나… 그때마다 전 생(生)을 걸고 불꽃처럼 치열하게 삶을 불사른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

<끝>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르뜨망 지음/   옮김/ 까치/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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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별 11 - 완결
김혜린 지음 / 팀매니아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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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별>  김혜린 글 그림

 

요즘 때가 때인지라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우국지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나만 뽑아주면, 이토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들 한다.

하기야 언제인들 정치의 계절이 아닌 때가 있었겠냐만… 적어도 요즘처럼 화려하게 치장된 무수한 말들이 난무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20여년도 더 전에 본 만화책이 생각나는 것은?

그때는 개인 소장용으로 만화책을 산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대부분의 만화책은 만화방에서 빌려봤다. 용돈이 생기기만 하면 만화방에 가서 다음책을 빌려봤다. 1권 나오고 한참 있다가 출간되는 후편을 기다리지 못해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수시로 만화방에 가서 후속편이 나왔는지를 확인하곤 하던 시절…

보통은 동네 허름한 곳에 있는, 담배연기 자욱한 만화방… 순정만화, 무협만화, SF만화, 기업만화 등으로 분류되던 시절.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박봉성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등의 기업만화와 <베르사이유의 장미>, <유리의 성> 등의 일본 만화가 휩쓸고 간 순정만화의 틈을 <불새의 늪>, <아뉴스데이>, <이오니아의 푸른별> 등의 만화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이름하여, <북해의 별>이다. <비천무>, <불의 검> 등을 통해 이제는 유명 만화가의 대열에 오른 김혜린 씨의 작품으로, 그 시절, 여자애들이나 보는 만화책이라는  폄하를 받던 순정만화가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만화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며, 수많은 매니아층을 거느리기도 했다.

20여년 전에는 금서(禁書)라는 것이 있어 조금만 불온하면 무조건 금서로 걸리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엔 만화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 시절엔 소위 이념서적이란 것이 단계별로 책의 리스트를 정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북해의 별>은 하늘거리는 옷차림과 고불고불한 머리카락 등으로 순정만화(?)의 대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게도 소위 학습화 단계의 상위에 자리매김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어쨌든, 혁명이란 말이, 피의 범벅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같은 것, 격정적이고 화려한 사랑을 통해 불평등하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로맨틱한 환상 등으로  등치되던 시절….

80년대 중반은, 돈이면, 성공이면 모든 게 용서되는 바로, 지금의 이 우리 시대와 달리, 가슴을 옥죄이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메시지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나만 잘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게” 중요한 시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의식이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였다. 내가 아닌 우리가 중요한 시절이었다…..

북해 옆에 보드니아라는 가상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엔 멋쟁이 유리핀 멤피스라는 역사에 조예가 깊고 민중을 사랑한 귀족이 살고 있었다. 그는 완벽하다. 부유하게 태어났으되 가난한 이를 보살필 줄 알았고, 배신당했으되 조국을 버릴 줄 모르는 바보이며, 한 여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순정남이다. 왕과 측근의 음모로 가장 혹독하다는 감옥에 들어가서 귀족이란 이유로 그에게 막무가내의 증오심을 보이던 죄수를 위해 눈물을 뿌릴 줄 아는 사람이다. 혁명의 선봉에 서서 온갖 고초를 겪고 난 이후에도 혁명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그.  

비록 만화책의 주인공이지만 나는 그를 보고 반해버렸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역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웅으로 불리지만,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단지 남들보다 더 인내하고 남들보다 더 포기할 줄 아는, 신념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새시대를 열어나갔던 것이다.

만약 그와 같은 정치가가 우리나라에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구석진 곳에 유리핀 멤피스 같은 정치가가 있을지도…. 있을까? 없을지도, 아니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묵묵하게 일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결코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있게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아마도, 그래서 일 게다. 이십 여년이 더 지난 지금, 순정만화 속에 있던 한 영웅이 새삼스레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 넨 것은….. 

“모두가 힘을 합하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가능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연,  꿈은,  이루어질까?

 

김혜린: 1962년생. 1983년 <북해의 별>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비천무> <아라크노아>  <불의 검> <광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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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 창비교양문고 20 ㅣ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199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2년 4월

 

 

...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없이는, 애시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작과비평사 /p91에서 

1993년 7월 장마에, 함께 일하던 친구로부터, “… 내가 받았던 감동, 눈부신 발견의 기쁨을 공감하게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우중충한 장마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에 대한 감상문이 아니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안고 있는 저자의 이력과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다. 고통스럽지만 숙명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영혼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삶을 관통하고 있는 통찰력이 오롯이 드러나는 글이다. 이 글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그 책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알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진다. 그럼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배경지식이 도움이 될까? 제목이 “서양미술 순례”이니 미술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리라 기대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서양 미술 순례:가 아니라 “나의”란 제목인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서경식’이라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않으면 피상적으로 이해되는 이 책의 내용들이 그의 삶, 특히 ‘운명이 지워놓은 부당한 무게’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의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깊이와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난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책을 읽고 그의 가족사가 궁금하여 그의 형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그의 형들의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놀라게 될 것이다. 그가 쓴 문장 하나하나는, 어쩌면 부당한 인생의 무게를 거역하지 못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가족사가 만들어낸 인생의 깊은 성찰을 득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이 글은 스무 살 시절에,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교포로 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조국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유학왔다기 이른바 ‘유학생 간첩단’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두 형(서승, 서준식)을 둔 이의 글이다. 그는, 7년 형기를 마쳤으나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10년 동안 보안감호처분을 받은 그의 형들을 옥바라지하는 일로 20여년을 보내게 된다. 그는 그는 <옥중 19년>을 쓴 서 승과 < 옥중서한집>을 쓴 서준식의 동생이다.

이 글을 두 형의 옥바라지 와중에,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다가온 삶의 허망함과 고단함, 고통 등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여동생과 함께 벨기에 뷔르셀을 기점으로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같은 곳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순례를 한 결과물이다. 그는 서양의 명화들을 보며 자신의 가족사와 가족이 그렇게 되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처지를 생각한다.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는 명화들을 보고도 그는 그것을 그림 자체로만 보지 못하고 민족사 혹은 가족사의 관점에서 그림을 바라본다. 따라서 그의 미술관 순례는 화려하지 않고 춥고 고단한 느낌이 묻어난다.

 요즘에야 외국여행 자체가 자유화되고 일반화되어 유럽 여행이나 미술기행에 관한 책들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겨우 15여년 전에는 굉장히 독특한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그 독특함은 미술 교과서를 통해 본 그림이 전부였을 만큼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에 다가온 미술(그림)에 관한 책이며, 미술(그림)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조그마한 포켓북 형태에  칼라가 아닌 흑백 인쇄를 선택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기억된다. 최근에 서점에서 새로 나온 이 책을 보니, 세월의 흐름탓인지.. 조금은 해사한(?) 얼굴로 바뀐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고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십여년 전에 읽었던 흑백사진 같은 자그마하고 투박한 그 책이, 훨씬 더 친근하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 책의 지은이 같은 비극적인 가족사는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고, 이런 일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만,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거라고 말할 만큼, 우리 사회는 그만큼 성숙했을까? 역사는 우리의 믿음처럼, 신념처럼 과연 진보하는가?

이런 우매한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난 20여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라고.*

 

 

서경식 1951년 일본 쿄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했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으며, 현재 도쿄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있다. 그밖의 지은 책으로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분단을 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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