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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친척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슬픔도 ‘인생의 친척’처럼 <인생의 친척>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웅진출판사 / 1997
눈이란 정말,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기억 저편에 있는, 지금은 잊혀진 아득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한 대목.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에 얼어 죽어갈 때, 유일하게 소녀를 지켜주며 위로했던 것은, 다름아닌 소담스레 내리는 눈이었다. 고 생각된다. 눈은 녹고 난 후의 지저분함과는 상관없이, 그 포근함과 순백의 깨끗함에서 정갈하다 못해 성스러운 마음까지도 갖게 한다. 그 성스러움은 현실과 괴리된 저 하늘 위의 무엇이 아니, 우리 곁에서 발 딛고 서 있는, 친근한 성스러움이다. 그것은 우리의 고통 어린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보살펴주며 치유해주는 것이다. 마치, 추운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성냥팔이 소녀를 어루만져주었던 눈처럼,
나에게 있어, ‘치유’, 또는‘성스러움’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는 아마도 일본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이다.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문학성은 익히 정평이 나 있긴 하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는 노벨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평생을 ‘장애아 문제, 핵, 공동체, 실존’등을 소재로 다루면서 인간의 구원을 희구하는 작품을 주로 썼기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 대다수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문학이며, 어찌 보면 손쉬워 보이는‘죽음’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처절하고 힘들지만, 우리가 의무적으로도 살아내야 할 ‘생(生)’을 지향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마치 생(生)에 대한 간절한 기도문 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애아는, 정상(이라고 말해지는)인에게는 상실된 근원적 영혼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지성의 비판자로, 동시에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강하게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고통을 감지하고 또 그 고통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로서 오히려 보통 사람 이상의 존재로 설정된다. 이러한 점은 특히 <인생의 친척>에서 잘 드러나 있다.
“마리에는 갑자기 찾아온 슬픔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받아들인다. 언제까지고 감정에 얽매이기에는 생활이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나 괴로워서, 어느새 고통도 기쁨도 잊는 일에 더 많이 익숙해져 있는 우리와는 달리…. ”
이 작품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슬픔을 감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라는 설명에 걸맞게, 생(生)의 최대치의 불행을 경험한 한 여인의 고통과 그 극복의 과정을 깊고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우리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바닷가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진, 장애를 가진 두 아이의 유해 앞에서, 그 고통의 늪에서 몸부림치며 결국에는 구원을 얻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아이들이 과연 왜 자살을 했는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며 신을 원망하던 마리에가 “결국은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구원을 얻게 되는 험난한 인생 여정이 펼쳐져 있다.
두 아들의 죽음이라는 부조리한 고통에 직면하여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살아가면서 죽은 아이들을 기억하는 ‘삶’을 선택한 어머니. 자식들이 죽고 난 뒤, 그녀는 평생을 살아온, 삶의 근원이다시피 한 일본을 벗어나 먼 타국인 멕시코의 농장에서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면서 그들을 보살피며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에서 멕시코의 농장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성녀(聖女)’의 모습을 발견한다. 결국, 슬픔이나 고통은 평생 혼자서 껴안고 갈 수 없으며, 타인과 더불어 위로하고 위로 받으면서 가야 하는 건 아닐까?
광활한 멕시코 농장의 들판에서 펼쳐진 영화 상영막을 통해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나오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이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했으면,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각인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그녀지만, 그녀 또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원하는 것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기억되기를…
그것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찬 인생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낸 강인한 자들만이 누리는 축복”이며, 그로 인한 자기 승화이자 치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슬픔(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삶에서 도피적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종교의 순례나 자기를 방기하다시피 발생하는 육체적인 쾌락을 통한 편력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절제와 희생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만 고통이 치유됨을 깨닫게 한다.
소설 속에서 마리에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스페인어‘Parientes de la vida’ 즉 ‘인생의 친척’은, 살아가는 데 있어 고난을 함께 하는 사이 진정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작중 화자가 발견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서의 문구처럼 어떤 처지의 인간에게도 쫒아다니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인생의 친척’으로서의 슬픔”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우리는 인생에서 아주 큰 슬픔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까? 보통의 경우는 갑자기 닥친 슬픔과 고난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거나, 아니면 역설적이게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만큼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에 감사하며, 잊은 듯, 잊으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마다 각자 슬픔에서 헤쳐 나오는 모습들이 다르겠지만……. <인생의 친척>에 나오는 마리에의 모습은 정말, 너무 치열하고 숙연하며 성스러워서 감동적이다 못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
우리는, 우리의 생(生)에서, 결코 원하지도 않았고, 달갑지 않은 “인생의 친척인 슬픔”을 만났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할까…. *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 1935년 일본 에히메 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지 편집을 하며, 시와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는데 1957년 교내 신문 소설 현상공모에 <기묘한 일>로 입상한 후, 문예지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전후 가장 촉망받는 청년작가로 인정받는다.
등단 후 역동적 상상력을 토대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실존과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표현하되 이를 사회문제와 결합하는 특징을 지닌 작품들을 줄곧 발표해 온 그는, 아쿠타가와상(1958),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1985) 등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전후세대의 대표적 작가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1994년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개인적 체험>, <핀치러너 조서>, <'나의 나무' 아래서>, <인생의 친척>, <2백년의 아이들>, <체인지링>, <동시대게임>, <치료탑>, <레인 트리를 듣는 여자들> 등이 있다.
박유하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게이오 대학 국문과(일본문학)을 졸업하고, 이후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했다. 연구활동 이외에도 통역사로서 노태우 전 대통령, 다케시타 전 일본 수상 등이 참석한 정재계의 주요 회의 통역을 맡았고,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 한국어 강사, NHK 국제국 아나운서 등 일본 사회를 폭넓게 접할 기회를 가졌다.
1993년 귀국한 뒤 일본을 소개하는 작업의 하나로 <20세기 일문학의 발견(전 12권)>을 기획, 번역했다. 2007년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이며 타자론, 탈식민지주의, 페미니즘,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음>, <만엔원년의 풋볼>, <인생의 친척>, <풍장의 교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