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의 별 11 - 완결
김혜린 지음 / 팀매니아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북해의 별>  김혜린 글 그림

 

요즘 때가 때인지라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우국지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나만 뽑아주면, 이토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들 한다.

하기야 언제인들 정치의 계절이 아닌 때가 있었겠냐만… 적어도 요즘처럼 화려하게 치장된 무수한 말들이 난무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20여년도 더 전에 본 만화책이 생각나는 것은?

그때는 개인 소장용으로 만화책을 산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대부분의 만화책은 만화방에서 빌려봤다. 용돈이 생기기만 하면 만화방에 가서 다음책을 빌려봤다. 1권 나오고 한참 있다가 출간되는 후편을 기다리지 못해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수시로 만화방에 가서 후속편이 나왔는지를 확인하곤 하던 시절…

보통은 동네 허름한 곳에 있는, 담배연기 자욱한 만화방… 순정만화, 무협만화, SF만화, 기업만화 등으로 분류되던 시절.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박봉성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등의 기업만화와 <베르사이유의 장미>, <유리의 성> 등의 일본 만화가 휩쓸고 간 순정만화의 틈을 <불새의 늪>, <아뉴스데이>, <이오니아의 푸른별> 등의 만화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이름하여, <북해의 별>이다. <비천무>, <불의 검> 등을 통해 이제는 유명 만화가의 대열에 오른 김혜린 씨의 작품으로, 그 시절, 여자애들이나 보는 만화책이라는  폄하를 받던 순정만화가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만화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며, 수많은 매니아층을 거느리기도 했다.

20여년 전에는 금서(禁書)라는 것이 있어 조금만 불온하면 무조건 금서로 걸리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엔 만화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 시절엔 소위 이념서적이란 것이 단계별로 책의 리스트를 정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북해의 별>은 하늘거리는 옷차림과 고불고불한 머리카락 등으로 순정만화(?)의 대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게도 소위 학습화 단계의 상위에 자리매김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어쨌든, 혁명이란 말이, 피의 범벅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같은 것, 격정적이고 화려한 사랑을 통해 불평등하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로맨틱한 환상 등으로  등치되던 시절….

80년대 중반은, 돈이면, 성공이면 모든 게 용서되는 바로, 지금의 이 우리 시대와 달리, 가슴을 옥죄이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메시지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나만 잘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게” 중요한 시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의식이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였다. 내가 아닌 우리가 중요한 시절이었다…..

북해 옆에 보드니아라는 가상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엔 멋쟁이 유리핀 멤피스라는 역사에 조예가 깊고 민중을 사랑한 귀족이 살고 있었다. 그는 완벽하다. 부유하게 태어났으되 가난한 이를 보살필 줄 알았고, 배신당했으되 조국을 버릴 줄 모르는 바보이며, 한 여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순정남이다. 왕과 측근의 음모로 가장 혹독하다는 감옥에 들어가서 귀족이란 이유로 그에게 막무가내의 증오심을 보이던 죄수를 위해 눈물을 뿌릴 줄 아는 사람이다. 혁명의 선봉에 서서 온갖 고초를 겪고 난 이후에도 혁명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그.  

비록 만화책의 주인공이지만 나는 그를 보고 반해버렸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역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웅으로 불리지만,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단지 남들보다 더 인내하고 남들보다 더 포기할 줄 아는, 신념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새시대를 열어나갔던 것이다.

만약 그와 같은 정치가가 우리나라에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구석진 곳에 유리핀 멤피스 같은 정치가가 있을지도…. 있을까? 없을지도, 아니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묵묵하게 일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결코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있게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아마도, 그래서 일 게다. 이십 여년이 더 지난 지금, 순정만화 속에 있던 한 영웅이 새삼스레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 넨 것은….. 

“모두가 힘을 합하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가능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연,  꿈은,  이루어질까?

 

김혜린: 1962년생. 1983년 <북해의 별>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비천무> <아라크노아>  <불의 검> <광야>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