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 창비교양문고 20 ㅣ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199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2년 4월

 

 

...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없이는, 애시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작과비평사 /p91에서 

1993년 7월 장마에, 함께 일하던 친구로부터, “… 내가 받았던 감동, 눈부신 발견의 기쁨을 공감하게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우중충한 장마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에 대한 감상문이 아니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안고 있는 저자의 이력과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다. 고통스럽지만 숙명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영혼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삶을 관통하고 있는 통찰력이 오롯이 드러나는 글이다. 이 글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그 책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알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진다. 그럼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배경지식이 도움이 될까? 제목이 “서양미술 순례”이니 미술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리라 기대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서양 미술 순례:가 아니라 “나의”란 제목인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서경식’이라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않으면 피상적으로 이해되는 이 책의 내용들이 그의 삶, 특히 ‘운명이 지워놓은 부당한 무게’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의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깊이와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난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책을 읽고 그의 가족사가 궁금하여 그의 형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그의 형들의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놀라게 될 것이다. 그가 쓴 문장 하나하나는, 어쩌면 부당한 인생의 무게를 거역하지 못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가족사가 만들어낸 인생의 깊은 성찰을 득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이 글은 스무 살 시절에,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교포로 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조국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유학왔다기 이른바 ‘유학생 간첩단’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두 형(서승, 서준식)을 둔 이의 글이다. 그는, 7년 형기를 마쳤으나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10년 동안 보안감호처분을 받은 그의 형들을 옥바라지하는 일로 20여년을 보내게 된다. 그는 그는 <옥중 19년>을 쓴 서 승과 < 옥중서한집>을 쓴 서준식의 동생이다.

이 글을 두 형의 옥바라지 와중에,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다가온 삶의 허망함과 고단함, 고통 등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여동생과 함께 벨기에 뷔르셀을 기점으로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같은 곳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순례를 한 결과물이다. 그는 서양의 명화들을 보며 자신의 가족사와 가족이 그렇게 되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처지를 생각한다.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는 명화들을 보고도 그는 그것을 그림 자체로만 보지 못하고 민족사 혹은 가족사의 관점에서 그림을 바라본다. 따라서 그의 미술관 순례는 화려하지 않고 춥고 고단한 느낌이 묻어난다.

 요즘에야 외국여행 자체가 자유화되고 일반화되어 유럽 여행이나 미술기행에 관한 책들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겨우 15여년 전에는 굉장히 독특한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그 독특함은 미술 교과서를 통해 본 그림이 전부였을 만큼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에 다가온 미술(그림)에 관한 책이며, 미술(그림)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조그마한 포켓북 형태에  칼라가 아닌 흑백 인쇄를 선택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기억된다. 최근에 서점에서 새로 나온 이 책을 보니, 세월의 흐름탓인지.. 조금은 해사한(?) 얼굴로 바뀐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고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십여년 전에 읽었던 흑백사진 같은 자그마하고 투박한 그 책이, 훨씬 더 친근하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 책의 지은이 같은 비극적인 가족사는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고, 이런 일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만,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거라고 말할 만큼, 우리 사회는 그만큼 성숙했을까? 역사는 우리의 믿음처럼, 신념처럼 과연 진보하는가?

이런 우매한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난 20여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라고.*

 

 

서경식 1951년 일본 쿄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했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으며, 현재 도쿄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있다. 그밖의 지은 책으로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분단을 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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