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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안개>
기형도 지음/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년
요즘에는 “문학”이란 단어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문학 목매어 죽어도 좋을 나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문학이 대접(?)을 받는 때가 있었다.
요즘에는 새해가 되면 각 신문사마다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난이 있었는데, 아주 인기가 많았다. 문학인을 꿈꾸든, 아니든 소위 문화적, 또는 문화적으로 교양이 있다고 자부할라치면, 문학에 대한 나름의 조예가 있어야 어디 가서 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는 때였다. 그때는.
1985년도였던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란에 소개된 “안개”라는 시를 보곤 난 너무나 놀랐다. 일단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온통 희뿌연한 안개이 이미지가 암울하게 다가왔다. 이 안개의 이미지는 그 유명한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약간은 로맨틱하고 우수어린 안개가 아니라 앞이 꽉 막힌 듯한, 어디로도 갈 곳 없어 헤매는 듯한, 출구 없는 비명 같은 느낌이 스산하게 날 엄습해왔다.
그 느낌은 너무나 낯설고 두렵고 놀라웠다. 그러나 그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는 잊혀졌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의식 저편으로 밀쳐진 그 시(詩)가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90년이던가…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듯했던 3월. 우연히 서점에 들러 시집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나 특이한 제목으로 인해 내 눈길을 끈 시집이 있었다. <입속의 검은 잎>이라니… 도대체 어떤 시일까? 무심코 시집을 뒤적이다가 너무나 놀랐다. 그 시집에는 예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란에서 봤으나 잊혀졌던, 시인이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잊혀지지 않았던, <안개>라는 시가 첫장에 실려 있었다. 그게 기형도라는 시인을 만나게 된 사연이다.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중략)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안개> 중에서
알고 봤더니, 기형도란 시인, 꽤나 유명한 시인이었다. 특히 1990년대의 시대적인 아이콘이 되어버린 시인. 특히나 대부분의 젊은 우상들이 그렇듯이 젊은 시절에 요절한 시인이라는 것 때문에 신비적인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 그 완전한 사라짐이 사실은 세계를 지탱하는 힘일는지도 모른다”라는 故 김현 선생의 평처럼, 그는 죽어서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르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빈 집> 전문(全文)
<빈 집>을 비롯, 기형도의 시들은 대부분 절망적이다.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라고 분석한 김현 선생이 말이 아니더라도 기형도의 시 전반에 흐르는 이미지는 절망 또는 죽음이다. 그것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절망감이다. 아니, 어쩌면 절망의 밑바닥까지 다다라야만 다시 비상(飛上)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우선 나는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전문(全文)
이 시를 읽다보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설 자리가 없네…”라는 가시나무새라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뭐든 너무 과하거나 모지라면 문제가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어쩜 이리도 잘 대변했는지… 이미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이 제목은, 기형도의 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어쩌면 나도 질투가 나의 힘일까?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으며,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등에서 근무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그는 독창적이면서 강한 개성의 시들을 발표했으나 1989년 3월 아까운 나이에 타개했다. 지은 책으로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짧은 여행의 기록>,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전집 <기형도 전집>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