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 분위기와 빙의

강연을 듣고 감동하는 것도, 설교를 듣고 감화되는 것도 경미한 최면이라고 볼 수 있다. 최면은 열중, 몰입, 황홀경, 무아지경, 물아일체를 낳기도 하고 졸도, 혼절, 실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접신이나 빙의까지 가능하게 한다. 무속계에서 대대로 전승되는 최면 의례를 치르다 보면 접신하거나 빙의하는 현상 같은 것이 나타난다. 심리 현상인데도 영적인 현상인 양 받아들인다. 무당의 작두타기도 강한 최면 의례의 부산물로 이해된다. 강한 최면을 걸어 마취도 없이 수술을 했다지 않은가.

기독교에서는 물론 어떤 종교에서든 강한 최면이 영적인 현상 같은 것들을 만들곤 한다. 그러고는 서로 속는다. 미국의 신사도 운동,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 그리고 다양한 민속종교에서 최면 의례와 영적인 현상 같은 것들의 상호작용을 엿볼 수 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가 최면적인 분위기를 한껏 조성한 후 심신 미약의 피실험자를 이끌면 피실험자는 가이드의 주입에 따라 귀신을 만날 수도 있고 귀신이 될 수도 있다. 가이드는 피실험자를 심지어 예수, 부처, 달라이 라마로 만들 수도 있다.

사울이 신경 쇠약 중에, 강한 압박 중에, 밥을 굶어 기력이 쇠한 중에 무녀와의 최면적인 분위기를 타고서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올리고 사무엘의 영혼과 대화하는 드라마를 찍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울 왕가가 패망한 것은 생전의 사무엘의 예언에 따른 것이지, 사후의 사무엘의 예언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하나님은 계시고 귀신도 있다. 영적인 현상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영적인 현상 같은 것들의 거의 전부는 사람들이 최면적인 상황에서 찍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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