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2-14).

늙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칼로 잡으려는 찰나 천사의 다급한 제지가 있었고 이삭은 아마 심정지 상태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제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이 보였다. 그 숫양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후 아버지와 아들은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충격이 너무 크면 실어증에 걸린다. 이삭은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사흘 길을 되돌아갔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을 수도 있다.

늙은 아버지는 자기 신앙심으로 그 충격을 감내할 만했다고 해도 어린 아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합작 이벤트에 이삭이 무기력하게 당한 셈이었다. 하나님은 크고 영원한 상급이 달린 시험 문제를 출제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시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험생이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당할 충격의 크기를 헤아리긴 했겠지만 잠깐의 고통 후에 크고 영원한 상급이 오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당할 충격의 크기를 헤아리긴 했겠지만 잠깐의 고통 후에 크고 영원한 상급이 오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 예수님이 한없이 높아지신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2:8-9).

심신의 원기를 회복한 후 이삭은 종종 그 번제 사건의 전후를 복기하곤 했을 것이다. 기억의 저항이 컸겠으나 기억할수록 모든 게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진짜다. 하나님이 직접 숫양을 준비하셨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맞다. 온전한 번제를 드렸고 살아서 귀가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제주였다면 이삭은 제물이었다. 제주는 죽지 않아도 되지만 제물은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니까 이삭의 신앙 체험이 아브라함의 그것보다 더 극적이었다. 또한 이삭의 신앙 이력이 아브라함의 그것보다 더 압축적이었다. 아브라함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신앙 이력을 이삭은 짧은 기간에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험생 아브라함과 함께 이삭도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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