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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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이란 연애 관계에 있어서의 적을 말한다. 그래, 이리 됐든 저리 됐든 적이다. 적이라면 한 자리에 함께 하기조차 꺼리는 사이다. 그런데 이런 적이 뭉쳤다. 일명의 적과의 동침이라고 할까. 적대 관계인 이들이 뭉친 이유는 자신들이 사랑했던 여자 친구를 위해서이다.

 

오호, 여기까지 보면 둘 다 너무 멋져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적대 관계에 있었던 사람과 타협할 수 있다니. 그 마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둘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갑자기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둘 다 왠지 모르게 뭔가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저자 김호연의 두 번째 소설 <연적>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1주년 기일에 만난 두 남자. 그들은 연인이었던 여인의 납골당을 들고 냅다 달아난다. 자유로운 영혼의 그녀가 납골당에 갇혀 있는 게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가 소위 말하는 연적 관계이다.

 

얼떨결에 의기투합했지만 연적 관계인 이들이 마냥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는 법. 그녀가 좋아할만한 장소를 찾아다는 동안 너무나도 다른 성격에 티격태격 끝도 없이 싸우지만 어느새 그들 사이에 점차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로 변해간다. 또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자 친구를 이용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실행한다.

 

김호연 작가의 전작 <망원도 브라더스>를 읽지 않았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누군가의 모습을 부족하다고 바라보는 세상과는 다리 그들만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그려낸 점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소설 곳곳에서 만나는 위트와 유머가 소설에 대한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남해, 여수, 제주 등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글에서는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여러 여운이 남았던 적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그만큼 좋은 소설이었다. 작가의 전작도 바로 찾아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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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난
르네 바르자벨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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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2년 프랑스 배경으로 한 르네 바르자벨의 <대재난>1943년에 발표되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에 나오는 장면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초고속 열차, 무인 조종 개인 비행기, 전기 자동차 등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현실이다. 물론 우유가 공급되는 우유관처럼 아직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있지만 말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발전한 사회에서 대재난은 어떻게 벌어진 걸까? 자동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미래 사회에 전기가 끊어지면서 소위 말하는 대재난이 시작된다. 전기가 사라지면서 자동차가 멈추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떨어지고, 도시는 암흑과 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이처럼 도시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자 사람들은 폭도로 변해 날뛰기 시작하고 주인공 프랑스아는 블랑슈를 구한 후 몇몇 사람들과 함께 도시를 떠나 원시 사회로 돌어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도 작가가 그린 세계의 모습처럼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잃어버린 채 모든 것을 기계에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간단한 예로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아주 간단한 전화번호조차 전혀 외우지 않는 모습이 그러하다.

 

물론 기계가 주는 편리함을 무조건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계가 주는 편리함에 빠져 스스로 나태해져 가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소설에 그린 것처럼 사회가 무너져 내리는 외적인 재앙이 아니더라도 그래야 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멈추는 그 때가 바로 대재난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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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레이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4
커트니 서머스 지음, 최제니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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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단순히 소설이라고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은 소설에 겹쳐 떠오르는 현실 때문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현실. 그렇기에 아픔을 넘어서, 분노를 넘어서, 절망스러운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나도 한 여자이고,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예쁜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결코 그럴 수 없다. 로미에게 일어난 일이 내 앞에, 내 딸아이 앞에 닥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인생이 무너지는 범죄의 대상이 된 것도 억울한데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가해자와 세상의 편파적인 시선이다. 켈란의 집안이 권력이 있고 돈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뼈 속 깊이 뿌린 내린 편견 때문일까? 지역 사람들은 켈란을 비난하는 대신 로미의 무분별한 행태가 문제라고 말하며 애써 진실을 외면한다. 어휴,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이 책을 내가 끝까지 읽어야 할까? 이렇게 속에서 열불이 나는 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여리디 여린 로미가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린 성폭행을 당한 것도 이겨낼 수 없을 텐데 자신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까? 로미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다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두렵다. 결코 그렇지 못할까봐. 한 번의 상처가 아니라 두 번의 상처로 결코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까봐. 가해자는 아무런 상처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말이다.

 

아프고 또 아픈 건 이게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판 한공주이야기라는 말처럼 소설 속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현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피해자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던지는 세상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런 제재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위로를 받아야 할 자는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한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두가 일어나야 한다. 남의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쳐다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딸아이의 이야기이고 딸아이의 딸아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코 물러설 데가 없다. 이제 머뭇거리지 말고 일어나자. 모든 여성들이여!! 아니 모든 지각 있는 사람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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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름이 없는 자
르네 망조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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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워낙에 유명한 시이다 보니 그 의미도 대부분 다 알겠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없는, 좀 더 정확하게는 이름이 없어진 사람은 그 존재 의미가 사라진 것일까?

 

용의자 X(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혹은 그녀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죽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의미 없는 존재는 그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 혹은 그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 살인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엽기적 살인행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해 사람을 속이는 것. 대표적인 사례라면 바로 보이스 피싱이 그렇다. 자녀가 아프다고, 아내에게 사고가 생겼다고. 이런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인 걸까? 용의자 X와는 또 다른 이유로 그런 것이겠지만.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다. 살인사건이 워낙 엽기적이라 역겨운 느낌도 들긴 했지만. 또한 장기이식이라는 화두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용의자 X와는 완전히 반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주는 행동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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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이면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1
이영훈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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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주인공의 성격에 몰입할 때도 있고, 사건에 빠져들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소설 속 한 구절에 꽂혀 책을 읽는 내내 그 구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랬다. 오로지 한 구절에 꽂혔다. 바로 이 문장에.

 

연호는 연희에게 착실히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p.115)

 

사람 간의 관계를 설명한 문장 중에서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문장은 길들인다는 말로 유명해진 어린왕자와 여우의 대화일 것이다. 바로 그에 버금가는 글이 바로 이 구절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의 관계, 특히 연인으로 발전하는 관계는 연호와 연희처럼 착실하게 스며들며 만들어진다.

 

물론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끌렸다. 하지만 그런 끌림이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연희가 말했듯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착실히 스며든 관계는 상대방의 본질을 알게 된 후에도 쉽사리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 연호의 진짜 얼굴을 본 연희가 오히려 장난하듯이 그와의 관계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또 다른 면에서 나를 뒤흔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연희의 태도에서 말이다. 어머니를 대할 때도, 그녀를 철저하게 조롱하는 듯한 유나를 대할 때도, 무엇보다 그녀의 남자였던 상호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복창이 터져나갈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사람들을 너무 무르게 대하는 연희는, 에휴. 진짜 보는 내가 너무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연희와 연호의 관계를 열심히 응원했는데, 연호의 또 다른 모습은 상상을 넘어섰다. 설마 그런 행동을 할 정도라니. 연애가 주는 열병을 넘어서 진짜 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올 정도였다. 그런 연호를 연희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너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연애의 이면에는 연호가 보인 모습과 같은 그런 어두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어내는 어두움. 그래도 그런 사랑이 그리워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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