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바흐를 듣고 여자는 바흐를 느꼈다
윤병대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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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다를까? 당연히 그렇다. 어떤 점에서 그런 걸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기질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점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영향으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면서 바뀐 부분도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기질, 성향, 성격은 남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같은 기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은 아마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남자는 듣고, 여자는 느낀다는 한 마디이지만 이처럼 남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도 따로 없을 정도다. 듣는다는 표현과 느낀다는 표현이 주는 차이가 그만큼 크기에 말이다.

 

남녀는 사랑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소설 속 주인공 성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커졌다. 아내와의 불화가 또 다른 사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분명한 점은 성빈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남녀의 차이는 성빈과 영교가 서로를 대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영교와 심드렁하게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 넘기는 성빈은 분명히 다르다. 듣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는 바로 이런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 생각하는 나이기에 성빈과 영교의 삶을 나와 남편의 삶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떤 부부일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까?

 

신혼 아닌 신혼이기에 아마 또래의 부부들과는 다른 점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성빈과 영교와는 다른 부부의 삶을 살고 있다. 서로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 이런 모습이 점차 사라져가면서 성빈과 영교와 같이 될까?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게 충실한 부부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다. 이런 기대감은 인간적 마음에 더해 신앙적인 믿음이 합쳐졌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말하는 광고도 있지만 사랑은 본질적으로 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만 그 변화가 어떤 변화냐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혼에는 신혼에 맞는 사랑이, 중년에는 중년에 맞는 사랑이, 노년에는 노년에 맞는 사랑이. 서로 다르지만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이어나간다면 매순간 행복함이 이어지지 않을까? 진정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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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여자를 찾아서
안느 브레스트 지음, 김혜영 옮김 / 올댓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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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여자를 찾아서, 솔직히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아니 왜 여자에게서 완벽함을 찾아야하지, 완벽하지 않은 여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정말 완벽할 수 있을까? 완벽하다는 것도 결국은 상대적인 의미 아닐까?

 

제목 하나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작가는 정말로 완벽한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소설을 쓴 걸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완벽해 보이는 여자도 그 속에는 자신만의 고민과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숨기고 또 숨기고 숨겼을 뿐.

 

완벽해 보이는 줄리, 줄리가 성녀라고 부르는 마리 바그너 등 에밀리엔느가 만나는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완벽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들인지, 완벽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여자들인지 알게 된다.

 

완벽한 여성을 원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내로서도 완벽해야 하고, 엄마로서도 완벽해야 하고, 직장으로서 완벽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감, 주변인들의 기대감. 이런 기대감에 자신을 맞추고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옭아맨 채 삶을 살아가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런 여성들 중에 일부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혹은 완전히 잃어버린 존재가 완벽해질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아마 그런 경우는 0%에 가깝지 않을까? 결국 완벽한 여성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백일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완벽한 여성은 결국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차이를 느끼기도 한 소설이지만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한 소설이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그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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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화가 이중섭 - 미술계를 뒤흔든 희대의 위작 스캔들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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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중섭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는 없을 듯하다. 작품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이 고통과 시련의 나날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의 삶이 바로 우리네 선조가 살았던 그런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 이중섭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의 삶이 묻어난 작품들을 이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의 삶이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다기보다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소설 <가짜화가 이중섭>이다. 다른 것보다 이 소설이 눈에 먼저 띈 이유는 온전히 제목 때문이다. 가짜화가라니? 이중섭이 가짜화가라는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제목을 쓴 걸까? 궁금증이 넘쳐 났다.

 

물론 이 소설은 이중섭이 가짜화가라는 말이 아니다. 이중섭의 작품을 모방하고 베껴낸 가짜화가 이허중에 관한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허중이라는 사람과 이중섭이 정말로 청량리뇌병원에서 같이 치료를 받았던 사제지간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소설은 시작부터 아주 흥미롭다. 프롤로그에서 들려준 한스 반 메이허런이라는 화가의 일화는 과연 작품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진품과 위작의 경계선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중섭의 그림을 모두 사들이고자 하는 야쿠자 두목과 이중섭의 그림을 한낱 상품으로 생각해 위작을 판매하려고 하는 판매상, 거기에 이중섭을 닮고 싶어 했던, 아니 이중섭이 되고 싶어 했던 이허중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이중섭의 흥미로운 그림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나간다.

 

예술은 보는 이에 따라 당연히 다른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평가가 올바른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림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예술 작품들이 몇 사람의 판단에 의해 그 가치가 정해지는 현실은 무언가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평론가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한편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가짜화가 이허중. 그를 이중섭을 모방한 그저 그런 가짜화가라고 불러야 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는 결국 각자가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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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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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내 이름 석 자가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누구 엄마라는 타이틀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 이름을 대신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나 익숙해지면서 지금 내 모습에 별다른 의문점을 가지지 않는다.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인 것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물론 엄마로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는 따로 얘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 내 모습, 내 이름을 생각하면 텅 빈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느리게 움직이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한 반항아달팽이에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은.

 

반항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이 책에 나오는 달팽이는 느리지만 세상의 관습에 맞서 싸우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 마리의 달팽이가 맞서 싸우자 그 뒤로 수많은 달팽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

 

인간 세상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 새로운 세상, 올바른 세상으로 한 걸음만 뗀다면 그 뒤를 이어 느리지만 그 길을 따라가는 이들이 생기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희망찬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반항아달팽이는 느리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다. 나는 지금 어떤 길로 나아가고 있을까? 그저 익숙한 길을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찾는 그 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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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바이러스
티보어 로데 지음, 박여명 옮김 / 북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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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라고 하면 신비로운 미소와 함께 완벽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실제로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모나리자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 환상적인 그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그만큼 완벽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문제는 아름다움이 과연 선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이 선이라면 추함은 자동적으로 악함이 된다. 이 말이 맞는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는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선, 추함은 악이라는 명제는 참일 수가 없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소설을 끌어나가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나리자로 대변되는 아름다움이 결코 선만은 아니라는. 이런 생각은 모나리자의 쌍둥이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프라도 미술관에 보관된 작품을 그린 살라이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돌리고자 모나리자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미녀 대회 출전자들의 외모를 아주 추하게 바꾸는 이들의 생각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의 생각은 무엇인 걸까? 온라인 상의 사진을 추하게 바꾸는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들의 생각 자체가 너무 추하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읽으면서 소설 속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가 정말 궁금했다. 이 책에서도 역사적으로 정말 있었던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궁금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첫 번째로 궁금한 내용은 쌍둥이 모나리자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이냐는 것이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어라, 그렇다면 파치올리가 쓴 내용도 정말 사실일까?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파치올리가 남긴 글에서 나오는 로 스트라니에로일명 낯선 이는 과연 어떤 존재인 걸까(소설 후반부에서 나오는 그 낯선 이가 바로 이 낯선 이겠지^^)?

 

모나리자 바이러스가 의미하는 내용이나 사건의 전말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마지막 순간의 반전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낯선 이에 대한 궁금증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었기에 책을 읽는 긴장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그의 정체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유사하면서도 담고 있는 주제는 그보다 더 강하지 않나 싶다. 재미는 그보다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무더운 여름날을 꼬박 새우게 할 정도로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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