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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화가 이중섭 - 미술계를 뒤흔든 희대의 위작 스캔들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7월
평점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중섭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는 없을 듯하다. 작품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이 고통과 시련의 나날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의 삶이 바로 우리네 선조가 살았던 그런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 이중섭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의 삶이 묻어난 작품들을 이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의 삶이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다기보다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소설 <가짜화가 이중섭>이다. 다른 것보다 이 소설이 눈에 먼저 띈 이유는 온전히 제목 때문이다. 가짜화가라니? 이중섭이 가짜화가라는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제목을 쓴 걸까? 궁금증이 넘쳐 났다.
물론 이 소설은 이중섭이 가짜화가라는 말이 아니다. 이중섭의 작품을 모방하고 베껴낸 가짜화가 이허중에 관한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허중이라는 사람과 이중섭이 정말로 청량리뇌병원에서 같이 치료를 받았던 사제지간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소설은 시작부터 아주 흥미롭다. 프롤로그에서 들려준 한스 반 메이허런이라는 화가의 일화는 과연 작품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진품과 위작의 경계선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중섭의 그림을 모두 사들이고자 하는 야쿠자 두목과 이중섭의 그림을 한낱 상품으로 생각해 위작을 판매하려고 하는 판매상, 거기에 이중섭을 닮고 싶어 했던, 아니 이중섭이 되고 싶어 했던 이허중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이중섭의 흥미로운 그림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나간다.
예술은 보는 이에 따라 당연히 다른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평가가 올바른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림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예술 작품들이 몇 사람의 판단에 의해 그 가치가 정해지는 현실은 무언가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평론가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한편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가짜화가 이허중. 그를 이중섭을 모방한 그저 그런 가짜화가라고 불러야 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는 결국 각자가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