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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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
p33 <최후의 라이오니> 김초엽
"이곳은 한때 불멸인들의 도시였습니다. 라이오니는 이곳에 살던 불멸인들의 복제였고, 동시에 결함 있는 복제였어요."

대다수가 예측하지 못한 오늘의 상황과 (묘연하게도) SF가 주목 받는 시점이 들어맞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앤솔로지 제목에서 (당연히) 알 수 있듯이 지금의 상황을 다루는 책이지만, 지금을 관통(정소연 김이환 배명훈)하기도 하고 로봇과 미래인을 통해 우리의 오늘을 은유(김초엽 듀나 이종산)하는 작품들도 있다.

p57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듀나
우리는 고래 위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집을 세우고, 고래 등과 주변 바다에 농장을 만들고, 벗겨지는 등껍질을 엮어 보트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아이들을 낳고 교육하고 언젠가 다른 별과 통신할 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 희망으로 우리는 3천 년을 버텼다.

우리의 결함(김초엽)이나 생의 터전(듀나), 이 상황에 대한 반작용(정소연 김이환)과 결과(배명훈), 불안(이종산) 등을 다루는 데서 '교훈을 얻는다'고 말하면 좋겠지만 ㅡ 아직 끝나지 않은 터널 어딘가에 있을 뿐이라는 상황 인식이 이 소설집을 지배한다.

(나 또한) 모든 게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태도 와 생각의 방향을 점검하게 된다.

터널의 끝이 아니라 이 공간이 우리의 현장이자 미래일 수도 있다는, 혹은 애초에 우리가 유한한 공간 속에서 지켜야 할 균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스친다. 우리의 결함을 모른 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팬데믹 #김초엽 #듀나 #정소연 #김이환 #배명훈 #이종산 #문학과지성사 #앤솔로지 #sf소설 #한국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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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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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 232
p339 - "너도 사냥꾼이야, 나처럼. 적의 피를 맛보고 싶은 거야. 적의 목이 네 턱 사이에서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거야."

*큰물*이라는 다섯 번째 세상을 끝낸 전지구적 재앙이 지나간 '여섯 번째 세상'에서 클랜 파워라고 불리는 전사의 영혼(능력)을 타고난 매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4부작 이야기 중 첫번째 책.

북아메리카 원주민 나바호(Navajo)족의 신화와 언어에 기반해 영혼의 능력이 계승된다.

갑작스레 쳐들어온 마법사 무리에게 할머니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매기는 각성한다. 마침 마법사를 쫓던 위대한 전사 '네이즈가니'가 매기를 도와 그들을 해치우고, 이후로 그들은 함께 지내며 수련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즈가니가 갑작스레 떠나고...

지역 주변으로 출몰하는 괴물을 처치하고 정체를 쫓는 매기는 그를 딸처럼 아끼는 타흐의 외손자이자 예쁘고 착한 치유술사 카이와 함께 움직이고 음모를 뚫고 나가는데...

디스토피아 판타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nk제미신 의 #부서진대지 시리즈가 자꾸 생각이 나는데, 망해버린 세계의 서로 다른 양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서로 조응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재미있게도 이 책이 '18년 휴고, 네뷸러상 후보로 경쟁하던 상대가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3권인 #석조하늘 이었고, 수상은 제미신이 했다.

이야기가 멀리 가지는 않는다. 4부작이니 완급조절이겠거니 싶으면서도 주인공 배경 서사가 얇게 느껴지는 건 아쉽다.

번역되지 않은 두번째 책의 현지 평점이 더 높은 것은 기대가 되는 점. 이 소설을 읽으니 《석조 하늘》이 더욱 애타게 기다려지는 건 묘한 지점.

#천둥의궤적 #리베카로언호스 #trailoflightning #rebeccaroanhorse #황금가지 #나바호 #미국소설 #판타지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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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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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은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자신을 대신해 죽은 동료의 복수로 다섯 명을 살해하고는 스스로 증발한 '진자이 아키라'에게 마약단속관 미즈키 쇼코가 접근한다.

완전한 평화로 이끄는 궁극의 마약이라는 '스노우 엔젤'의 출처와 공급선을 쫓으려 미즈키의 지원과 지령 하에 중국인 4세대 '슈 코젠'으로 신분을 위장한 진자이는 판매책 '이사'를 만나게 되고, 이사와 신뢰를 쌓아 수입책이자 기업형 마약상 하쿠류 노보루에게 접근하려 한다.

진자이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사와 스노우 엔젤의 폭발적인 효능(!?)을 직접 경험하는 진자이, 약의 이탈 과정에서 꾼 꿈이 시리즈의 복선으로 발전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작가의 장점과 단점 모두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마약 판매에서부터 인체에 작동하는 방식을 꼼꼼하게 짚어가면서 서사의 발전 과정과 박자를 맞춰나가니 읽는 도중에 끊기거나 흐름이 방해되는 경우는 없었으나, 매작품 반복되는 살짝 작위적인 영단어(!) 사용과 다소 어설픈 느낌으로 작동시키는 서술 트릭, 사건 속에서 굳이 버무려지는 정체 모를 로맨스의 향방은 난데없다.

제목의 언저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종교적 메타포도 등장하는데, 여기저기 솟아있는 십자가를 손쉽게 마주하는 한국인의 눈에 보기엔 인물과 사건의 매개로 엮기엔 헐거워 보이지만 비교적 기독교적(!)이지 않은 일본에서는 신비감을 가질 수도 있는 듯하다.

이보다 먼저 나온 #데블인헤븐 과는 시리즈라니 이어서 읽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간지'를 갖고 싶어하는 낭만이 재등장한다면 다소 부담스럽겠다.

시리즈의 덩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스노우엔젤 #가와이간지 #작가정신 #작정단5기 #작정단 #일본소설 #추리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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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블랙
나나 크와메 아제-브레냐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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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109 <지머랜드>
그날 오후에 나는 프로그램을 열 번 진행한다. 열 번 중 여덟 번 살해된다.

SF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흑인이 일상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보다 선명해진다.

위험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것, 죄가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것. 낙인 찍힌 몸, 얼굴.

이번 의정부고 흑인 분장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가 치닫는다면 ㅡ 백인 아버지가 근거리 흑인을 무차별 살해하고도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핀켈스틴의5인 ), 흑인 살해가 방범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등장하게( #지머랜드 ) 되리라는 이야기의 예측이 가상의 선을 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흑백논리, 흑색선전, 검은대륙 같은 단어에서 무엇이 뒤틀려있는지 찾아내지 못한다면, 단어 순서를 바꾼 표제작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쇼핑몰 랠리가 주객이 전도된 자본주의 사회를 강렬하게 비판하는 카니발이라는 사실에도 접근하기 힘들지도.

우려했던 궤변을 넘어서 거꾸로 가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루에도 여러 번 죽는 작품 속 설정은 사실 그 자체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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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티튜트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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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2권 p223
"루크, 네가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평생 가장 힘든 결정이었어. 죽음이 면전에서 나를 쳐다보고 죽음 저편에서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한데도 말이지."

전국에 있는 관계자를 통해 TP(텔레파시)와 TK(염력) 능력이 있는 아동들을 관찰하다가 가족은 살해하고 아이는 납치해서 검증과 실험을 하는 모종의 기관. 그리고 열두 살의 나이에 MIT와 에머슨 대학 동시 입학 허가를 받은 루크(루카스 엘리스).

정말 잘 쓴다. (번역본 기준) 두 권 분량의 스케일을 어쩜 이렇게 꾸준히 능숙하게 다루는지, 모든 지점이 날렵하다.

이 할아버지는 영화에서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셨는지, 메인 주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기관에 잡혀 학대 수준의 실험을 당하는 아이들 각자의 캐릭터의 그물같은 관계와 1권 막바지에서 시작되는 루크의 눈물겨운 철로 위 탈출과정의 세세한 과정 어디를 줌인을 해야하는지 줌아웃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완급조절은 역시 탁월하신데다가, 절정에서 감정을 들어올리는 초월적인 묘사에선 그의 최근 소설과 영상작 중 가장 압권이었다.

아동 학대와 관련한 충격적인 장면들은 실존하는 폭력과 더불어 세대가 다음 세대로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지에 대한 은유를 동시에 담고 있는데, 가히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2권 p63
토니가 그의 허리를 잡고 셔츠를 올렸다. 위노나가 에이버리의 배꼽 바로 위에 전기봉을 대고 버튼을 눌렀다. 에이버리는 비명을 질렀다. 에이버리는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움찔거렸고...

한 아이를 인질로 잡고 도시의 평화를 유지했다는 우화를 떠올리게도 했는데, 어떤 시대와 어느 사회가 내세우던 제단 위 흠 없는 제물과 관련한 소아 희생으로 이어볼 수도 있다.

군더더기 없는 결말도 최근작 중 가장 깔끔했고, 추악한 사건과 끔찍한 장면을 가히 양산하는 작가임에도 루크와 에이버리, 루크와 모린, 루크와 매티, 루크와 팀의 만남에서 진지하게 보여주려한 희생과 회개, 인간애, 이타심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금세 울렁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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