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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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44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 아시자와 요, 김은모 옮김

p71 <저주>
요컨대 이 여자는 저주를 믿고 싶은 것이다. '저주'를 전제로 삼아 시야가 좁아진 게 아니라 '저주'를 결론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미스터리와 호러의 차이라면 이유의 유/무다. 그럴만한 원인이 있는지, 혹은 그런 대가를 치룰 정도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합의가 가능한지를 논하냐 마느냐의 문제.

여섯 연작의 화자는 작가 자신이다. 현실감을 극대화해서 긴장과 불안을 최고조로 끌어내는 #모큐멘터리 방식을 썼는데 #미쓰다신조 를 익히 아는 독자라면...

괴담을 쓰기 시작한 후로 친구와 동료, 한두 다리를 건너 이야기가 들어온다. 점쟁이의 경고를 무시한 연인, 남편과 아이에게 찾아온 '저주'를 호소하는 여성, 이사 후 임신한 부인에게 자신을 험담하는 옆집 여성...

결혼 후 시가에 들어가 살면서부터 꿈 속에서 집에 불이 나고 소사燒死 당하는 고통을 겪는 네일리스트와 이상하게 맑은 남편, 자취하는 집에 나타나는 여자아이의 혼령을 위령하고 사라진 친구.

p169 - "그 혼령과 연을 맺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람없이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가즈노리 씨도 뭐가 원인인지 상대에게 묻는 건 위험하고요."

그리고 이 다섯 사건(?)에 다리를 놓은 작가인 저자가 '선의'로 혼백의 안녕을 빌자 경고하는 노숙한 심령사 진나이 씨의 경고 앞에서... 이야기에 발을 들이고 저자와 함께 엮어나가던 독자는 ^쭈뼛^하고 살이 돋아난다.

다섯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며, 독자가 보지 못한 다른 복병을 마지막에 등장 시키지만 ㅎㅎ;;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럴만한 심판과 그걸 이루려는 혼령의 업보 다툼이 호러의 맥락에 어울리게 편입됐는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 매듭에서 오라기 몇개가 풀린 듯했다.

2019년 서점대상 9위 도서. 직역하면 <불이 없는 곳에 연기는>

#아니땐굴뚝에연기는 #아시자와요 #김은모 #아르테 #일본소설 #소설 #공포소설 #호러소설 #미스터리소설 #일본서점대상 #오컬트 #굿 #괴담 #신간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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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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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달에 울다>
빈집은 자꾸 늘 것이다. 그렇다고 나와 야에코 둘안 남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말고도 이 분지에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88년에 발표된 이 중편소설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낙후되는 농촌, 고향, 가난했던 어린 시절, 기력이 쇠한 40대 남성, 한 여자, 환상(혹은 환영), 회귀 같은 공통점이 다른 이야기임에도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똑 닮아 보이게 만든다.

문체와 문장의 구성은 다분히 일본적이며, 구체적으로는 다분히 하이쿠俳句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물의 계절감과 감정을 연결시켜 반보 정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뭉근하면서도 의뭉스런 접착들. 해설에서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저자 마루야마 겐지가 시소설을 지향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에 나열한 키워드들이 1988년의 일본적 감수성으로 꿰인 남성 작가의 나르시시즘이 곁들인 이야기는 지금의 독자인 내게 호소력을 지니지는 못 한다.

자기 목소리라는 분지를 헤매는 메아리 같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반대편에는 왠지 1996년의 영화 #쉘위댄스 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건너편이 더 끌린다.

#달에울다 #마루야마겐지 #한성례 #자음과모음 #일본소설 #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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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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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8 - 순분은 눈물을 글썽이며 새댁의 손을 잡고 다독였다.
"걱정 마, 새댁. 아무 걱정 하지 마."

작은 마당을 둘러싼 우물집의 일곱 살 박은철과 안원이 만나서 서로의 삶을 조곤거리며 기웃거리던 60(혹은 70)년대. 두 가족의 평화와 일상이 사고와 사건으로 산산조각나고, 다시 이어붙이려 애쓰지만.

찢어진 살이 멀쩡하게 다시 생기가 오르더라도 여러갈래의 파편이 된 뼈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려우듯이 삼벌레고개 우물집의 울음 자국도 깊이 패인 채로 주인만 바뀌었다.

가벼운 말로 이웃의 고통을 되씹던 순분이 아들의 사고로 고통의 손끝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고, 총명했던 새댁(효경)이 형사들에게 끌려간 남편의 시신에 바스러지게 만드는 일 년간의 파고.

견디는 것도 견디지 못한 것도 모두 우리의 일로 여기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온당하게 요구하는 과제이며 책임임을.

#토우의집 #권여선 #자음과모음 #한국소설 #소설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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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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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 재판관이 그에게 니클로 가라는 판결을 내린 뒤, 엘우드는 집에서 마지막으로 사흘 밤을 보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이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멜빈 그리그스 대학의 개방 강의 출석을 허가 받은 링컨 고등학교 신입생 엘우드 커티스가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을 방문하는 길에 자동차 도둑으로 누명을 쓰는 아찔한 불운에 나는 '그땐 그럴 수도 있었겠지'라며, 이 차별의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열다섯의 엘우드 커티스가 '니클'이라 불리는 소년 감화원에 부당하게 갇힌 사건이 부딪힌 데는 내면 어딘가 굳은 살이 똘똘 뭉친 곳이었다.

나는 이 차별과 분리의 기억을 환기하는가 복기하는가 아니면 음미하려 하는가에 대한 복잡한 기분을 곱씹게 된다.

p106 - "가끔 화이트하우스로 끌려간 애가 두 번 다시 안 나타날 때가 있거든."
터너가 말했다. "가족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학교에서는 애가 도망쳤다고 말해."

상상력으로 실재했던 사건들의 조각들을 쪽모이 해서 펼치면 한 나라와 한 시대의 초상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벌어졌던 분리 정책의 폭력성과 지워진 이름들이 겹쳐서 솟아난다.

이 폭력은 기술적으로 놀랍도록 유사하게 벌어졌다. #형제복지원

저자가 장르적 장치를 작동시킬 때 일어나는 감정적 변화는 감동과 함께 적잖은 부끄러움도 동반했다. 무덤 위에서 환하게 일어나는 감정을 당당하게 건져올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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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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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5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스마트폰 화면은 받을 사람을 선택하려는 순간이었고, 그 손끝은 '나기하라 사리'와 '후시구레 하야키' 사이에 떠 있었다. 어느 쪽에 먼저 소식을 전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무렵, 우리는 분명 어른이 되어 있겠지.

지식과 상상력이 인간을 둘러싸는 게 아닌 인간이 지식과 상상력을 감싸안는 데에 SF의 이상향이 있지 않을까.

표제작은 수많은 평행세계를 넘어다닐 수 있는 '승각능력'과 '능력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능력의 결핍에서 직면하는 장애에 관해 비유적으로 질문을 제기한다. 사랑은 결핍을 금지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사랑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둥글고 전혀 거칠지 않으며 무해한 사람들의 드라마인가, 평화로운 얼굴이 우리의 본질인가에 관한 #미아하에게건네는권총 #홀리아이언메이든 - (후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p261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전시 공간 입구에는 연미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안내용 레닌 네 명이 방문객을 기다리며 인형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앨런 튜링을 영입함으로써 서구보다 일찍 인공지능 보댜뉴이(슬라브 족 물의 정령)를 현장 투입해 경쟁에 앞서게 된 소비에트'라는 대체 역사의 특이점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오오! 투쟁! 혁명이여!

그러나 이 소설집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수록작인 #빛보다빠르게느리게

확장된 세계관은 열어두면서도 2600만분의 1이라는 '시간의 저속화'에 갇힌 신칸센 노조미 123호와 열차에 탄 고등학생들을 피치 못한 상황으로 타지 않아서 졸업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오직 두 사람으로 경이롭게 시간선의 문제를 해결하며 또다른 학생들, 우리가 띄어올리기를 상상해마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까지도 세심한 감각으로 호명한다.

p428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어른이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당신은, 당신들은 누구도 방황한 나그네들을 잊지 않았다.

우리라는 세계에 환멸을 느끼는 와중에도 우리의 도피성은 우리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감정으로 이끈다. (내 마음 우르르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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