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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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p69 <달에 울다>
빈집은 자꾸 늘 것이다. 그렇다고 나와 야에코 둘안 남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말고도 이 분지에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88년에 발표된 이 중편소설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낙후되는 농촌, 고향, 가난했던 어린 시절, 기력이 쇠한 40대 남성, 한 여자, 환상(혹은 환영), 회귀 같은 공통점이 다른 이야기임에도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똑 닮아 보이게 만든다.

문체와 문장의 구성은 다분히 일본적이며, 구체적으로는 다분히 하이쿠俳句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물의 계절감과 감정을 연결시켜 반보 정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뭉근하면서도 의뭉스런 접착들. 해설에서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저자 마루야마 겐지가 시소설을 지향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에 나열한 키워드들이 1988년의 일본적 감수성으로 꿰인 남성 작가의 나르시시즘이 곁들인 이야기는 지금의 독자인 내게 호소력을 지니지는 못 한다.

자기 목소리라는 분지를 헤매는 메아리 같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반대편에는 왠지 1996년의 영화 #쉘위댄스 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건너편이 더 끌린다.

#달에울다 #마루야마겐지 #한성례 #자음과모음 #일본소설 #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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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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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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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8 - 순분은 눈물을 글썽이며 새댁의 손을 잡고 다독였다.
"걱정 마, 새댁. 아무 걱정 하지 마."

작은 마당을 둘러싼 우물집의 일곱 살 박은철과 안원이 만나서 서로의 삶을 조곤거리며 기웃거리던 60(혹은 70)년대. 두 가족의 평화와 일상이 사고와 사건으로 산산조각나고, 다시 이어붙이려 애쓰지만.

찢어진 살이 멀쩡하게 다시 생기가 오르더라도 여러갈래의 파편이 된 뼈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려우듯이 삼벌레고개 우물집의 울음 자국도 깊이 패인 채로 주인만 바뀌었다.

가벼운 말로 이웃의 고통을 되씹던 순분이 아들의 사고로 고통의 손끝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고, 총명했던 새댁(효경)이 형사들에게 끌려간 남편의 시신에 바스러지게 만드는 일 년간의 파고.

견디는 것도 견디지 못한 것도 모두 우리의 일로 여기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온당하게 요구하는 과제이며 책임임을.

#토우의집 #권여선 #자음과모음 #한국소설 #소설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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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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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 재판관이 그에게 니클로 가라는 판결을 내린 뒤, 엘우드는 집에서 마지막으로 사흘 밤을 보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이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멜빈 그리그스 대학의 개방 강의 출석을 허가 받은 링컨 고등학교 신입생 엘우드 커티스가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을 방문하는 길에 자동차 도둑으로 누명을 쓰는 아찔한 불운에 나는 '그땐 그럴 수도 있었겠지'라며, 이 차별의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었다.

열다섯의 엘우드 커티스가 '니클'이라 불리는 소년 감화원에 부당하게 갇힌 사건이 부딪힌 데는 내면 어딘가 굳은 살이 똘똘 뭉친 곳이었다.

나는 이 차별과 분리의 기억을 환기하는가 복기하는가 아니면 음미하려 하는가에 대한 복잡한 기분을 곱씹게 된다.

p106 - "가끔 화이트하우스로 끌려간 애가 두 번 다시 안 나타날 때가 있거든."
터너가 말했다. "가족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학교에서는 애가 도망쳤다고 말해."

상상력으로 실재했던 사건들의 조각들을 쪽모이 해서 펼치면 한 나라와 한 시대의 초상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벌어졌던 분리 정책의 폭력성과 지워진 이름들이 겹쳐서 솟아난다.

이 폭력은 기술적으로 놀랍도록 유사하게 벌어졌다. #형제복지원

저자가 장르적 장치를 작동시킬 때 일어나는 감정적 변화는 감동과 함께 적잖은 부끄러움도 동반했다. 무덤 위에서 환하게 일어나는 감정을 당당하게 건져올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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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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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5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스마트폰 화면은 받을 사람을 선택하려는 순간이었고, 그 손끝은 '나기하라 사리'와 '후시구레 하야키' 사이에 떠 있었다. 어느 쪽에 먼저 소식을 전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무렵, 우리는 분명 어른이 되어 있겠지.

지식과 상상력이 인간을 둘러싸는 게 아닌 인간이 지식과 상상력을 감싸안는 데에 SF의 이상향이 있지 않을까.

표제작은 수많은 평행세계를 넘어다닐 수 있는 '승각능력'과 '능력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능력의 결핍에서 직면하는 장애에 관해 비유적으로 질문을 제기한다. 사랑은 결핍을 금지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사랑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둥글고 전혀 거칠지 않으며 무해한 사람들의 드라마인가, 평화로운 얼굴이 우리의 본질인가에 관한 #미아하에게건네는권총 #홀리아이언메이든 - (후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p261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전시 공간 입구에는 연미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안내용 레닌 네 명이 방문객을 기다리며 인형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앨런 튜링을 영입함으로써 서구보다 일찍 인공지능 보댜뉴이(슬라브 족 물의 정령)를 현장 투입해 경쟁에 앞서게 된 소비에트'라는 대체 역사의 특이점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오오! 투쟁! 혁명이여!

그러나 이 소설집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수록작인 #빛보다빠르게느리게

확장된 세계관은 열어두면서도 2600만분의 1이라는 '시간의 저속화'에 갇힌 신칸센 노조미 123호와 열차에 탄 고등학생들을 피치 못한 상황으로 타지 않아서 졸업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오직 두 사람으로 경이롭게 시간선의 문제를 해결하며 또다른 학생들, 우리가 띄어올리기를 상상해마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까지도 세심한 감각으로 호명한다.

p428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어른이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당신은, 당신들은 누구도 방황한 나그네들을 잊지 않았다.

우리라는 세계에 환멸을 느끼는 와중에도 우리의 도피성은 우리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감정으로 이끈다. (내 마음 우르르 쾅쾅)

#매끄러운세계와그적들 #한나렌 #엘리 #북하우스 #SF소설 #백합 #백합sf #일본소설 #평행우주 #대체역사 #뇌과학 #특이점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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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존 헬리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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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5 - 인수 합병은 궁극적으로 볼 때 월스트리트가 만들어 낸 것이다. 왜냐하면 이기든 지든 혹은 질질 끌든 간에 투자은행 측에서는 이자나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다.

1989년 'RJR 나비스코'의 최고경영자 로스 존슨이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를 통해 기업을 비공개기업으로 전환하는 M&A를 시도하면서 입찰 과정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욕망의 분투가 집요한 취재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복잡한 재무 방정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서사와 6주 간의 경쟁에서 벌어지는 엎고 뒤엎고 덮었다가 기획을 다시 살리는 번잡한 일련의 에피소드가 속도감있게 진행된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로스 존슨, 오랜 시간 미국 담배시장 1위 기업이던 'RJ 레이놀즈'와 최상위 제과기업 나비스코의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입찰에서 주요한 활동을 벌인 투자회사 시어슨, KKR 등도 심도있게 소개한다. 네 페이지에 걸친 등장인물들과 기업들도 당대 최대 M&A 규모인 'RJR 나비스코'에 뛰어들기 까지의 속내와 물밑 작업들도 상당히 세심하게 보여준다.

서평단에 무심코(?) 신청할 때까지 사전 크기에 999쪽의 분량일 줄은 전혀(!) 모르다가 배송 박스의 크기를 보고...

사실 M&A의 기법이나 도구는 30년 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고, 규모는 겉잡을 수 없이 거대해졌으며, 담보 대출의 지옥불은 더욱 멀리 번졌다. 결국 RJR과 나비스코가 분리되는 실패 사례 (복잡한 경영 환경에서 제품 경쟁력 자체를 끌어올리거나 체계를 혁신하는 등의 혁신이 아닌 목표 주가 달성이나 경영진(이사회)의 수당 챙기기 등의 특정 직급 단위에서 소구되는 인위적인 인수합병) 는 이런 행위에 수수료와 자문료로 붙어있는 은행, 회계, 법률, 컨설팅 회사만 배불리게 되고 결국 소비자, 노동자 그리고 주가와 기업 수명에까지 해를 끼친다는 교훈을 주지만.

크래비스(KKR)가 존슨을 자극하고 존슨은 크래비스 몰래 시어슨을 꿰어 엄청난 쌈짓돈을 챙기려 했던 이 사례에서처럼 고용된 기업가는 언제라도 먹튀가 가능하고, 90년대에 이어 00년대에도 다양한 이유로 M&A는 벌어졌으며, AOL과 WB같은 참혹한 사례도 펑펑 터졌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실제로는 없는 돈까지 팡팡 만드는 금융계의 못된 버릇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한 욕망과 소수의 특정 인물들이 세상을 망가트리고 있다는 불신, 그리고 아무리 기법이 정교해져도 아니, 정교해질수록 최종 향배의 키가 말재주라는 얼마나 가당찮은 잔재주에 의해 기울어지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아, 나는 설거지나 하련다.

#문앞의야만인들 #barbariansatthegate #브라이언버로 #존헬리어 #이경식 #부키 #경제경영 #경영 #월스트리트 #경영서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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