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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황제
오션 브엉 지음, 김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1월
평점 :
p313 - 아름답고 키 작은 패배자들." 하이는 과거에서 자신들을 응시하는, 옹기종기 모인 얼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움이란 게, 어떤 아름다움이든 간에,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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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시인이라기보다는 소설가, 삶과 고통 비애를 안고 사는 인물들과 아이러니하고 조화로운 사건들을 통해 교향곡 같은 짜임을 이룩해내는 그런 소설가로 보인다. 시적인 아이러니로 쓰인 문장들로 구름 위에 뜬 듯하기도 한 동시에 뒤로 돌아와 막연한 위안을 건네면서도 공격을 가하는 예리한 구성은 일견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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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남자 아이와 나이든 병든 여성 서사라면 누구나 #에밀아자르 의 #자기앞의생 을 떠올리게 될 텐데, 이 소설에서 그 명백한 유사성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2010년의 미국에서 그 서사가 가능하다는 사실, 막다른 상실과 고통과 소외된 인물들이 가족과 행정의 역할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재현해낸 '글래드니스'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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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코네티컷 '이스트 글래드니스'에서 지내는 '하이'는 19세의 베트남 이민 2세대 남자 청년이다. 홧김에 보스턴 의대에 입학했다며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마약중독자 청년은 죽을 결심으로 강을 가로지르는 철로에 올랐다가 리투아니아 이민자 할머니인 그라지나에게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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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는 홀로 독거하는 그라지나와 잠시 함께 지내기로 하고 이종사촌이자 자폐인이자 엄마가 교도소에 가 있느라 보호소에서 지내는 '소니'가 일하는 '홈마켓'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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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성공과는 거리가 먼 홈마켓(프랜차이즈 음식점) 동료들 속에서 하이는 자기의 공동체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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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우울할 만한 상황들의 반복, 생활에 진저리 쳐도 부족하지 않을 인물들을 그려내는 브엉의 문장들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력이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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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9 - 모린은 은퇴한 초등학교 학생 주임이었는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입이 더러웠다. 한번은 미틑로프 쟁반을 떨어트리고는 "아 씨발 좆구리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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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다닌다며 엄마를 속이는 하이
아들에 의해 요양원으로 끌려갈 그라지나
교도소에 있는 엄마 보석금을 구하는 자폐인 소니
사회적 상처와 결함있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홈마켓을 운영하며 프로레슬러를 꿈꾸는 190cm의 점장 BJ
일이 필요한데 무릎이 아픈 모린
마약 중독 때문에 요양원에 보낸 여동생의 비용을 대느라 투잡을 뛰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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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전적 퀴어 서사를 구사하던 것과 다르게 이 소설에서 저자는 '하이'의 클로짓을 아주 작은 장면으로만 보이고 정리한다. 퀴어이더라도 어떤 생활의 문제는 지향과 상관없이 묵묵히 다정하게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고 울어줄 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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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의대를 다닌다며 엄마를 속인 하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모두의 문제를 어쩌다가 혹은 손을 덜덜 떨며, 그리고 울면서 돕기도 하지만 그 후에 홀로 남아서 구석에서 엄마에게 전화해 거짓 의대생 행세를 하는 하이는 그가 임시 알바로 했던 '돼지 황제' 버크셔 도축을 떠올리게 해준다. 죽어서 황제를 기쁘게 한 돼지. 소설에서 유일하게 황제 수식어를 받았던 돼지. 글래드니스의 황제는 쓰레기 통에서 자기 문제의 구덩이를 여직 헤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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