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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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다시 새롭게 읽힐 수밖에 없는


p43 <머리>

그녀는 화를 냈다.

"나는 너 같은 것에게 내 변기를 차지할 권리를 준 적이 없다. 너는 나를 어머니라고 하지만 나는 너 같은 걸 만든 적이 없으니 널 없애버릴 사람을 부르기 전에 썩 꺼져라."

처음 읽었을 땐 현실의 부조리를 은유하기 위해 가져온 환상성, 그 은유에서도 지울 수 없는 현실의 잔혹함을 떠올리는 게 주요한 읽기였다면 ㅡ 이번 개정판에서는 현실에서 환상으로의 낙차, 그리고 환상에서 현실로의 낙차의 크기를 경험하는 읽기를 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장난 같이 애매하기도 한데, 첫 읽기가 현실로 돌아오는 왕복의 느낌이었다면, 두번째 읽기는 두 번의 편도.

이 사회적 재난들에 작년 이맘때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소설이 거르고 채를 친 현실은 이미 전과 같지 않게 되었고, 짧다고 할 수 있는 1년 사이에 기막힌 사건들이 두껍게 쌓여서 이 죽음과 착취, 속이는 똑똑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망국의 분위기가 이 소설을 새롭게 해준다.

p351 <재회>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 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스스로 유령이 되어버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인 마지막 수록작의 의미가 더 커지게 된 것이 서글프다.


#저주토끼 #정보라 #인플루엔셜 #래빗홀 #한국소설 #환상소설 #판타지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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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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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시 의아하다.

저자는 전작인 #재와물거품 에 이은 이번 연작집에서도 저자는 바다를 바탕으로 하는 sf판타지를 쓴 걸 보면 지구 바깥이나 가상 세계 혹은 여전히 지상을 조건으로 하는 sf와는 분명히 차별점이 있는 동시에 바다에 가지는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남다른 세계관이 잘 되길 바라는 반면에 해저 세계가 기존의 sf장르에서 탈락된 이유와 sf적 비약에서 보이는 특유의 구조적 취약성, 주인공과 '굉장히 소수의 아는 인물' 외에는 개선의 가능성을 완전하게 배제하는 배타성이 전작은 물론 이 연작 다섯 편 모두에서 보인다는 점은 역시나 의아하다.

소수자, 약자, 소아, 여성이 중첩되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최측근을 구조적인 약자로 설정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외의 모든 인물들이 착취자로 완전하게 규정되어 반복되는 서사는 다소 납작하다.

이들의 '생득적인 형태에 따라 주어진 입장'이 역할을 영속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저자의 세계관에서 말이다.

상호 간에 변화가 없다면 이야기도 발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이러지만은 않는다.

소수자와 비소수자 연대가 없는 소수자 운동은 없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장연 의 운동에서도 어렵지 않게 연대를 발견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이 소설에서 이 점을 집요하게 얘기하냐면, 저자가 바로 소수자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다. 소수자와 비소수자 사이에 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선은 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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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마지막 한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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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

p29

우리 가문의 불화, 때 이른 죽음, 어긋난 사랑, 무모한 열정, 병약한 가슴, 권력과 금력, 더욱더 부도덕한 유혹, 그리고 예술에 얽힌 수수께끼를 뿌리까지 파헤치는 김에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누구였는지 기억해두고 넘어가자.

'다 가마' 가문의 4대손인 '모라이시 조고이비'가 4대에 이르는 가족사를 독백으로 풀어내는 소설로 19세기 인도 현대사를 압축적이면서도 우화적으로 은유하는데, 미스터 조고이비가 왜 다 가마 가문의 4대손이냐면, 다 가마는 어머니의 성씨이기 때문.

p538

돈도 종교도 제 욕망을 억압하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는 시대, 지치고 허탈한 패배자가 아니라 원기왕성하고 야심만만하고 탐욕스럽게 삶을 갈망하는 자의 시대.

그리고 소설의 가장 중요한 축은 영국 식민지 하에서 가족의 기독교 정체성을 버리고 인도 신화를 바탕으로 현대 미술계와 사교계에 화려한 영향력을 펼치는 아우로라 조고이비, 다 가마 가문의 3대이자 모라이시(무어)의 어머니인 아우로라이기 때문.

#이사벨아옌데 의 3부작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식민지 해방과 잔재, 가문의 성공과 여성(모계) 중심의 가족사를 유연하게 다루면서도 (한국인 입장에선) 같은 3세계로 여겨지는 문화가 현대에 겪은 복잡한 주체성 싸움을 개인사로 비춰주기 때문에.



아우로라와 아브라함의 세 딸과 한 명의 아들, 요절한 두 딸과 수녀인 둘째, 네 달 반만에 세상에 나온 거구 아들은 10세에 190cm로 자라고 남들보다 두 배 빨리 늙어간다.

그야말로 현대 인도의 축소판이다.

책의 제목은 아우로라 일생일대의 연작의 마지막 그림 제목이다. 이 그림은 조고이비 가문을 타겟으로 하는 연쇄 폭탄 테러 중에 도난 당하고는 아우로라가 후원했(키워줬)던 화가의 스페인 저택으로 밀수 되는데..



영제국의 근현대사를 영국 관점의 미디어나 소설로 접한 경우가 많아서 잔혹한 치세나 그 후유증을 외면하기가 쉬운데, 피와 뼈로 글을 쓴다고 해도 틀림이 없는 인도 출신 작가가 보여주니... 눈과 코가 맵다.

분명히 보이는 걸 쓸 수밖에 없는 시대적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소수의 작가들이 있고, 살만 루슈디도 그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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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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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2 안톤 체호프 <구스베리>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감동받고 설득을 당한다. "모든 만족하고 행복한 자의 문 뒤에는 반드시 작은 망치를 든 불행한 사람이 있어 계속 거기서 문을 두드리며 그가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조만간 인생은 발톱을 드러낼 거라고, 고통이, 그러니까 병과 가난과 상실이 찾아올 거라고... 상기시켜 주어야만 하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리고 체호프도 분명히 믿었다고 장담한다.

#마차에서 #안톤체호프

#가수들 #이반투르게네프

#사랑스러운사람 #안톤체홉

#주인과하인 #레프톨스토이

#코 #니콜라이고골

#구스베리 #체호프

#단지알료샤 #톨스토이

다행하게도 이 작품들은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 단편 일곱편을 '작가'의 입장에서 분석, 비평한 시러큐스 대학의 글쓰기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으로 일종의 작가론까지 겸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가 체호프가 아니라면, 톨스토이나 고골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분석하거나 중의적인 지점에서 고민할 필요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든 독자든 소설의 진의를 살피기 위해선 자신의 저변을 확대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감동적이라기보다는 '낭비 없는 글쓰기'의 요체인 '단편 분석'에 관한 이지적인 단계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배울 것이 넘친다.

특히 체호프.

저자인 손더스는 인과관계, 이 문장과 이 다음 문장의 상호 호응되는 관계를 첫 주제로 삼는다. 이야기가 자연스레 사실성과 설득력을 갖추는 동시에 목표하는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

딱히 말하지는 않지만 이 상호작용, 연쇄적인 작업은 필수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 직유, 은유, 묘사하는 방법을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건... 이 책은 이미 데뷔 가능한 수준에 이른 학생 단 6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가 받아들이고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의 요체는 지적일 것, 그리고

p585 <단지 알로샤>

그는 이론적으로는 알료샤를 존경하고, 그래서 알료샤의 묵종과 명랑한 순응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썼지만, 톨스토이의 정직한 예술성에 감동한 이야기 자신이 그 메시지를 차마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결국 작가 자신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동시에 벗어날 자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

생각해보니 어떤 면에서 이 작가 수업은 윤리적이다.

p.s. 어느 순간 이 독법으로 #슬램덩크 와 #더퍼스트슬램덩크 를 분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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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2 안톤 체호프 <구스베리>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감동받고 설득을 당한다. "모든 만족하고 행복한 자의 문 뒤에는 반드시 작은 망치를 든 불행한 사람이 있어 계속 거기서 문을 두드리며 그가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조만간 인생은 발톱을 드러낼 거라고, 고통이, 그러니까 병과 가난과 상실이 찾아올 거라고... 상기시켜 주어야만 하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리고 체호프도 분명히 믿었다고 장담한다.

#마차에서 #안톤체호프

#가수들 #이반투르게네프

#사랑스러운사람 #안톤체홉

#주인과하인 #레프톨스토이

#코 #니콜라이고골

#구스베리 #체호프

#단지알료샤 #톨스토이

다행하게도 이 작품들은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 단편 일곱편을 '작가'의 입장에서 분석, 비평한 시러큐스 대학의 글쓰기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으로 일종의 작가론까지 겸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가 체호프가 아니라면, 톨스토이나 고골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분석하거나 중의적인 지점에서 고민할 필요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든 독자든 소설의 진의를 살피기 위해선 자신의 저변을 확대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감동적이라기보다는 '낭비 없는 글쓰기'의 요체인 '단편 분석'에 관한 이지적인 단계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배울 것이 넘친다.

특히 체호프.

저자인 손더스는 인과관계, 이 문장과 이 다음 문장의 상호 호응되는 관계를 첫 주제로 삼는다. 이야기가 자연스레 사실성과 설득력을 갖추는 동시에 목표하는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

딱히 말하지는 않지만 이 상호작용, 연쇄적인 작업은 필수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 직유, 은유, 묘사하는 방법을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건... 이 책은 이미 데뷔 가능한 수준에 이른 학생 단 6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가 받아들이고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의 요체는 지적일 것, 그리고

p585 <단지 알로샤>

그는 이론적으로는 알료샤를 존경하고, 그래서 알료샤의 묵종과 명랑한 순응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썼지만, 톨스토이의 정직한 예술성에 감동한 이야기 자신이 그 메시지를 차마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결국 작가 자신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동시에 벗어날 자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

생각해보니 어떤 면에서 이 작가 수업은 윤리적이다.

p.s. 어느 순간 이 독법으로 #슬램덩크#더퍼스트슬램덩크 를 분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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