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갈릴레오 -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외파울

탐정 갈릴레오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히가시노 게이고는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본 미스테리계의 대세입니다.

작품 수도 상대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작품 수준도 평균 이상은 항상 되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작품이나 구입하더라도 부담이 없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작가라는 것. 정말 인정합니다.

근데 몇몇 작품은 다소 무리수를 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하고자하는 <탐정 갈릴레오>는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소 아쉬운 느낌이 남습니다.

<탐정 갈릴레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는 콤비인 천재교수 유가와와 근성의 형사 구사나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탐정 갈릴레오>가 <용의자 X의 헌신>을 낳은 셈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시리즈의 첫번째 테이프를 끊는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겠습니다.

이 소설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과학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세계의 평범한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모두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는 것인데,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명쾌히 설명하기 위해 천재 물리학 교수 유가와의 탄생은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대생이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의 경험도 작품집필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총 5개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토리나 사건배경, 미스테리 요소 등 모든 것이 두루두루 잘 갖추어져 있고 재미있습니다. 역시 선택한 독자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작가입니다. 일본에서도 드라마화 되어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 작품들에서 발생되게 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와 '에이~ 말도 안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읽어 나가면서 후자에 좀더 접근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그 다지 공감은 쉽게 되지 않는 묘한 결과가 나와버렸습니다. 마치 중요한 경기에서 타자가 공을 친 순간 '아! 이거 홈런이다' 했는데 결과는 장외로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버린 파울볼 같다고나 할까요?

깊은 상처 - 두 말이 필요없는 역작

깊은 상처 ㅣ 스토리콜렉터 1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11월

<넬레 노이하우스>는 정말 타고난 천재가 아닐까요?

타우누스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자, 국내에서는 가장 늦게 출간된 이 작품을 앞에 두고 품었던 의심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재미있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타우누스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너무 친한 친구들>과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사이에 해당합니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진정한 동료로서 서로에게 마음을 문을 열기 시작하고, 니콜라 반장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제는 이름을 줄줄 외우고 있는 매우 인간적인 호프하임 강력반 형사들도 나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깊은 상처>는 넬레 노이하우스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스케일이 다소 커진면에서는 <바람을 뿌리는 자>의 느낌이 묻어나지만, 우리에게 좀 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이 소설이 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들인 나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미스테리 소설은 잘 쓰지만 언제나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일본이라는 이웃을 둔 우리이기에 이 책은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잘못 돌려진 시계를 확실한 과거청산을 통해 올바로 되돌려 놓은 가장 모범적인 나라로 손꼽힙니다. 공공장소에서 나치를 찬양하거나 문양 등을 게재하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있다고 하니까요. 이런 면에서는 올림픽에까지 욱일승천기를 들고 나오는 나라하고는 과거청산면에서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독일 역시 여전히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사회였으면 단순히 사랑싸움 정도로 끝날 일이 전쟁이라는 비상식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얼마나 끔찍한 일로 변질될 수 있는지도 잘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측면에서도 상당히 뛰어납니다. 계속되는 살인, 도대체 누가 했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추악한 이면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모두가 범인인 것 같습니다. '후더닛'의 진수를 다시한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나치문제를 다뤘지만 너무 깊숙히 이 문제를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세밀한 묘사, 유머코드, 그리고 너무도 인간적인 형사들의 모습은 이 작품에서도 변함없이 잘 살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5권의 타우누스 시리즈가 모두 모였습니다. 책장에 나란히 있는 책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혹시 아직 이 시리즈를 접하지 않은 독자분이 있다면 이제라도 <사랑받지 못한 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 상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바람을 뿌리는 자> 순으로 꼭 읽어보세요.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신참자 - 가가형사가 엮어내는 감동의 휴먼 미스테리

신참자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신참자>를 읽어보면 이젠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모짜르트가 아닌지...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작품마다 일정 퀄러티이상이 항상 보장되는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일단 무척 재미있습니다. 일본 TBS에서 10부작 드라마로 방영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장르작가의 작품이 안방 드라마로 방영되는 일본은 정말 미스테리 천국이 아닐까요?).

작품의 스토리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입담이 잘 살아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구성도 상당히 특이해서 장편이지만 단편같기도 하고, 이야기들이 독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종국에는 하나로 흐르는 형태로 잘 진행됩니다.

소설의 배경은 바로 도쿄 니혼바시의 닌교초 거리...안 가봐서 모르겠지만(ㅠㅠ) 작품의 설명으로 봐서는 서울의 신사동 거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대도시 속에서 전통을 지켜가는 가게들로 이루어진 거리...따라서 소설로만 봐서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도시라기 보다는 소소한 일도 소문으로 퍼지는 전원사회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입니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대로 훈훈한 인간미도 더욱 강조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 닌교초 거리에서 일어나는 한 건의 살인사건.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관할서의 형서 '가가'. 그는 닌교초 거리에 있는 센베에 과자점, 용품점, 문구점, 케익점 등을 비롯해, 피해자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합니다. 물론 만나는 이유는 사건의 해결, 하지만 가가 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얽혀있는 인간관계까지 자연스레 해결해 줍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살인사건과 그 해결을 다루고 있지만 주제는 인간미와 가족애의 회복입니다. 시선 자체가 굉장히 인간적이며, 범인도 미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따라서 미스테리 소설로서의 긴장감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으며, 사건 해결의 기발함은 살아있지만 작품 자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미스테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경향의 발전선상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격 추리소설인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이래 이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는 그를 보면서 새삼 일본 소설계에서 미스테리가 차지하는 힘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 한국 추리소설 어디까지 왔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2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국내작가들의 미스테리 작품을 읽을때면 고민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국내 장르작가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책을 읽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입니다. 아무래도 눈높이가 기라성같은 해외의 미스테리 대작, 신작 들에 맞추어져 있다보니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로 느끼는 만족도의 괴리가 크면 클 수록 이러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갑니다.

이번에 읽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은 특히 이러한 고민을 깊어지게 했던 것 같습니다. 10명의 국내 작가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혼신을 정열을 담아 집필한 단편들이었지만 왠지 '아! 바로 이거다!'하는 강렬한 느낌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과 이작 작가의 <물뱀>을 가장 재미있게 봤습니다. 두 작품은 각각 법과 사체 해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검증으로 사실성을 무척 높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고증이야말로 미스테리 소설의 생명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뱀>은 스토리도 상당히 뛰어나다는 생각입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재미면에선 무척 뛰어났고 독특한 시도를 하는 등 좋았지만, 결말이 확실하지 않거나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면이 보이지 않은 점들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해외의 작품들은 적어도 각각의 나라나 혹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나 문제작 위주로 출간되기 때문에 어느정도 고객들의 검증을 거친 것들입니다. 따라서 어느정도 레벨 이상의 작품성과 스토리, 재미와 반전을 두루 갖춘 경쟁력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해외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져만 갑니다.

따라서 어느정도 스토리에는 이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저 같은 영악한 독자들을 놀래켜 주기 위해 해외 작가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작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미스테리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이나 서양처럼 국내의 장르소설이 환영받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현실까지 이겨내야 하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도 더 이상 말을 아끼고 조용히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결혼을 둘러싼 즐거운 미스테리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2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작가정신 / 2012년 10월

참 진기한 작품을 또 하나 발견한 느낌입니다. 결혼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경쾌하고 훈훈한 감동을 주는 미스테리를 접하게 되다니 오늘은 일진이 좋은 날입니다.

결혼이란 정말 인생에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자 가슴 두근거리는 빅 이벤트입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제 소박했던 결혼식 역시 새삼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당시 느꼈던 느낌, 설레임, 초초함, 기쁨 등등...왠지 이 날 만큼은 언제나 조연으로 살아온 것 같았던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 새삼 생각납니다.

여기 일본의 아르마이티라는 호화 호텔 웨딩홀이 있습니다. 결혼 당시의 저와 마찬가지로 기쁨과 설레임을 안고 결혼식을 올릴 네 커플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더, 파혼의 아픔을 딛고 도리어 웨딩플래너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당찬 한 여성과 사랑하는 이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하는 초등학생. 이들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소설의 시작은 마치 본격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습니다. 호텔 아르마이티의 내부구조도(이건 밀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소설에서 주로 쓰는...이른바 관 시리즈 등)를 척 펼쳐 앞으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 것 같은 분위기를 한 껏 풍깁니다.

초반에 전개되는 가가야마 히미카의 에피소드 전개때만 해도 마치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처럼 이상한 독백체로 싸늘한 느낌을 주지만 읽어보면 읽어볼 수록, 그리고 다른 에피소드들이 소개되면 될 수록 이 작품이 보통 미스테리와는 다른 확 깨는 작품임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쌍둥이 언니를 자기 대신 신부로 세워놓고 과연 자기를 알아보는지 시험해 보려는 동생, 도저히 축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신부이지만 이번 일을 극복해 진정한 웨딩플래너로서 서 보려하는 여자, 초등학생 다운 어린사고로 인해 현실과 동화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모를 구하려고 하는 조카 마지막으로 결혼남이라는 것을 숨기고 불륜을 저지르다 결혼까지 하게되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예식을 막으려는 찌질남까지.

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뒤엉키는 하루의 예식은 그야말로 불꽃튀기는 암투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흥미진진합니다. 처음엔 미스테리가 아닌 다른 장르라고 생각했다가 소설을 다 읽어보니 참 희한하면서도 재미있는 미스테리 소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는 이미 나오키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수상할 정도로 역량있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역시 웨딩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을 어쩜 저렇게 잘 알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잘 표현하고 있고, 특히 심리묘사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글 역시 머리 아프지 않으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또 새로운 실력자가 한면 등장했구나 하는 즐거움을 가져봅니다.

일본의 소설치고는 상당히 코믹하고 훈훈한 분위기이며, 내용도 참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결말도 무척이나 깔끔해 읽고 나서도 감동의 여운이 꽤 오래가는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미스테리 장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가족소설, 그리고 감동을 주는 문학소설로서의 가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