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동 피아노 ㅣ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평점 :
소설 Q로 만난 세 번째 작품.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보다 더 적합한 책이 있을까 싶다.
첫 인상은 '낯설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피아노를 치듯, 언어가 쏟아져내리고 생각이 달려나갔다. 달려나가는 언어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앞뒤가 안 맞는 언어들, 분열된 자아와 개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냥 페이지를 넘겼다.
지금은 언제나 내 뒤에 있고, 여기는 어느새 거기이며,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을 듣고, 생각되기 전에 말해진다.
그러나 좌표는 없고, 인과는 무용하며, 이것과 저것은 흩어진 채 포개져 있다.
더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 이해 없이 있고, 설득할 대상도 없다. (15pg)
통일 되지 않은 목소리는, 이윽고 죽음에 이르러 통일된다. 그렇다. 이것은 죽음의 이야기이고, 삶의 이야기이고, 죽고 싶지 않은, 동시에 죽고 싶은 이의 고백이다.
총 21장, 한 장 한 장마다 음악을 부제로 하여 달려나가는 이야기는, 모두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이야기였다.
단언하겠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다짐하면, 죽이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죽이겠다. 나는 나를 죽이지 않겠다. (27pg)
상처 받은 영혼. 방황하고 분열된 자아.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고 고통스러운 이유 조차 찾을 수 없어 헤메는 나.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고, 익숙해질 수 없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며, 끝없이 아프다. 아픔에 침잠하는 이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게 아프고 원망스러운 그 마음, 그 절절한 고통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가시밭에 발을 들이면 가시가 발바닥에 박힌다.
견디고 넘어서면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고, 더 단단한 발을 갖게 되리라고 말한 세계가 등 뒤에 있다.
가시 박힌 자리가 곪고, 곪은 자리에 다시 가시가 박혀, 썩어가는 발을 견디고 견디다 견딜 수 없어서.
나아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멈춰 서서 왜 아무도 내게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물으면,
왜 신발에 대해 묻지 않았는지 되무는 세계가 등 뒤에 있다.
원망하면, 왜 더 일찍 원망하지 않았는지 힐난하는 세계가 있어서,
아픔이 있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멈춰 서 있으면 가시가 더 깊게 파고드는 줄 알면서도,
앞을 향해 걸으면 구멍난 것이 찢기고 처참해질텐데. (42pg)
죽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울려퍼진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고, 잘 살고싶고, 아프고 싶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는, 죽음이라는 사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게는 그런 것이 필요했다.
이 분열을 중단시킬 수 있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표지.
그리고 그것을 떠올렸을 때,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저 견디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나는 우습게도, 죽음을 떠올렸던 것이다. (48pg)
21장. 21장까지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달려나간다. 그 흐름이 빨라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 또한 빨라진다.
사실상 이 이야기는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 삶과 죽음의 연속체,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뿐.
마치 피아노 곡이 끝을 맺듯, 이 작품은 이윽고 마지막을 여운과 울림을 주며 끝을 낸다.
나는 내가 언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다. (120pg)
이 소설이, 과연 죽음을 갈망하고 스스로의 안에 갇힌 이들에게 충동이 될지, 희열이 될지, 희망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죽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죽음을 갈망한, 살아내기 위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자동 피아노처럼, 타자화된 기계처럼 흘려보낼 수 있다면,
언젠가는 정말 그걸 오래전의 일로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창비에서 출간하는 올해의 마지막 한국소설, 자동피아노.
내 감상은, 이 이상 인상적이기도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