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려앉을 유일한 땅 한 뼘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휴식처로 남을 마음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땅을 떠나기로 한 거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295pg)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는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어떠한 선입견 없이, 하다못해 제목이나 표지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그 어떤 정보도 없이 백지 상태로 만난 세계는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창비의 프로그램, ‘눈가리고 책읽는당으로 나는 그렇게 구병모 작가의 신작 버드 스트라이크를 만났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이야기,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원조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 날개를 지닌 익인들은 벽안인으로 통칭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날개로 타인을 감싸 안으면 상처가 치유되기에 익인들은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연구거리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들의 유골을 파헤치고, 잡아가 실험을 하고, 깃털을 뽑아보아도 날개의 비밀을 파헤칠 수는 없다. 익인들에게 날개란 초원조가 빌려준 것, 몸의 비밀이 아닌 다가갈 수 없는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벽안인과 익인 사이에서 태어나 날개가 남들보다 더없이 왜소하고 보잘 것 없고 온전한 익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비오, 벽안인이지만 회장의 혼외자식으로 태어나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이다. 세상과 떨어져 소외된 아이들이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따른다.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하는 외로움부터, 축복받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 혼인할 수도 없는 소외감까지, 아이들은 홀로 쓸쓸함을 삭이고 그저 감내한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외톨이인 둘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함께라면 분명 더는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보듬기 위해 함께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비오는 행여 자신이 루의 곁에 머무르기로 선택함으로써 루를 상처 입힐까 걱정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루의 곁에서 멀어진다.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홀로 되어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어떻게 날아가고 싶은지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이 있어야만 언젠가 진정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선택이다.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선택, 하지만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우뚝 선 후에 스스로 삶을 걸어가겠다는 그 선택을 어떻게 존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미성숙한 자아가 내딛는 첫 걸음마이자 도약이고 완성이다.


눈가리고 책읽는당프로그램으로 표지도 없고 제목도 없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나라면 이 책에 어떤 제목을 붙일 것인가? 어떤 말을 골라 이름을 붙여줄 것인가? 나라면, ‘날개의 의미라고 이름 지었겠지. 비오의 작고 작은 날개, 그것도 날개냐고 무시당하던, 다람쥐 하나조차 온전히 감싸주지 못하고 치유하기 힘들던, 그 날개. 하지만 중요한 건 날개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를 포용하고자 하는 마음에 있었음을, 작지만 비오와 루를 잇고 진정한 자신만의 삶으로 이끌어주는, 그 날개의 의미.


소설을 덮으면서, 과연 나는 나의 걸음을 떼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온전한 나의 삶을 찾았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기댄 삶을 살고 있는지 돌이켜본다. 나도, 나의 선택을 하고 내 날개를 펼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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