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샘과 함께하는 시간을 걷는 인문학
조지욱 지음 / 사계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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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그냥 길이지 뭐. 길이 특별한 게 뭐가 있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 생각은 그랬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글쎄, 내 생각보다 길은 특별했다.

물론 당연히, 사회 시간에도 배운 적이 있었다. 길은 물자를 수송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장소와 장소를 연결 지어 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어림잡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쌀이 착취된 것도 길을 통해서였고, 반면에 바닷길을 통해 신대륙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도 하고, 고려와 송나라처럼 무역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연결지어주기도 했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어머, 그렇네, 이런 일도 있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낱낱의 사실로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그 모든 일들은 길 위에서 일어났다. 길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고, 나라가 사라지고 건물이 사라져도 길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역사를 추억하고 있었다.

이 책은 지식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이 있어서 어디를 펼쳐도 짧게짧게 읽을 수 있다. 한 번에 한 권을 다 읽기가 어려운 사람이라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은 후에 쉬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충분하다. 한 권을 다 읽어야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책의 깊이가 얕다든지 하는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길을 통한 역사와 문화, 삶에 대해 다루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청계천의 복원, 이로 인한 득과 실에 대하여. 혹은 빠르게 가기 위해 뚫는 터널이 과연 모든 면에서 이롭고 유익한지. 자연환경과 길은 공존할 수 있는지.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의외로 나 역시도 생각이 깊어졌다. 몰랐던, 혹은 모르는 척 하고 있던 일상 속의 일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잠시 멈춰 서서 내 주변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게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제는 내가 걷는 길이 조금 더 다르게 보인다.

하나의 사회는 길을 통해 확대되고, 다른 사회로 확산된다.
따라서 길을 낸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간다는 뜻이며,
반대로 다른 사람과 다른 사회가 내게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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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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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소설Q 시리즈 두번째.

우선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
또 그게 아이돌의 빛나는 부분, 아름답고 환상적인 부분이 아니라
아이돌의 탈퇴와 멤버 재영입, 악플, 그룹의 해체, 멤버간의 균열과 일그러진 팬덤문화 등
아이돌의 어두운 면과 숨기고 싶은 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더 독특했다.

그런가하면 사이사이에 가사를 인용하여 쓰인 팬픽은 어떠한지.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다. 이름만 같은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었으니까.
점차 읽으면서 아, 이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팬픽이구나 느끼면서
새로운 구성이 참으로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팬픽들이 어떠한 언급도 없이 무척 자연스럽게 여성간의 연애, GL(girls love)으로도 불리는 동성연애로 이어지는 부분도 그랬다.

후에 천희란 작가의 발문을 읽다보면 이 소설의 작가, 조우리 작가가 실제로 f(x)를 매우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 나니 소설 속 제로캐럿의 이미지에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실존하는 그룹이 겹쳐져버렸다.
실은 내심 이 부분은 알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소설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 현실과 오버랩시키고 싶지 않은 이 마음.
하필 또 현재의 f(x)가 어떠한지 생각해보면.
최근에 설리의 안타까운 일을 생각해보면 더더욱이다.
이마저도 아이돌의, 또 악플의 안타까운 면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떠올릴 부분은 결코 아니었고 떠올릴 수 없었으면 했다.
정말 하필, 하필이라는 생각.

나도 한 때 아이돌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내 추억 속, 기억 속에 내가 좋아하던 이들을 자꾸만 떠올리며 읽었다.
문체는 담담했고 내용은 술술 읽혔지만 내용은 무게감이 있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은 자꾸만 멈추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


- 언제나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었다. 텔레비전이라는 걸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파인캐럿은 지금껏 자신이 좋아했던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길 즐겼다. 처음 방송국 앞으로 얼굴을 보러갔던 아이돌, 처음 팬클럽네 가입했던 아이돌, 처음 콘서트를 보러갔던 아이돌, 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고 그 순간엔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얼굴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얼굴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얼굴들. 그 짧은 순간, 그래서 너무나 생생한 순간, 그때의 마음.
(63pg - 과거형은 언제나 애틋하다 중에서)


- 대학 축제 축하공연을 하러 갔을 때는 천막으로 만든 임시 대기실에서부터 화장실 앞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매니저와 경호원들이 막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린을 향해 외쳤다.
"최마린 사랑해! 사랑한다고! 대답해! 대답하란 말이야!"
사랑이라고 했다.
마린인 콘서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사인회장에서도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마린의 발목을 붙잡았던, 온리마린의 뜨거운 감정이 마린의 온몸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그게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에는 도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 걸까.
(159pg, 그런 사랑이 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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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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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야는 자기가 봤던 그것을 믿었다.

열몇살의 자기와 스물몇살의 자기는 공존한다고,

열다섯살의 이제야와 열여덟살의 이제야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살아서, 스물다섯살의 이제야, 스물일곱살의 이제야를 보고있다고 믿었다.

열일곱살의 이제야가 보고 있을 어른 이제야를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서른다섯, 서른아홉, 마흔일곱, 쉰아홉살의 자기를.

세상 어딘가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어리고 젊고 늙은 이제야를. (233pg)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별자리가 그려진 밤하늘의 표지를 보고, 나는 당연히 '언니'에게, '이제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말, 어떤 고백일거라고 믿었다.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고백이기도 하다.

기나긴 시간을, 세월을 넘어, 이제서야 보이는 미래, 저 너머에게 손을 내미는 고백은 분명 정답이었다.

'이제야'가 그 주인공이고 당사자이며 스스로의 미래에게 건네는 악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제야는 성폭행 피해자이다.

제야에게 과거의 시간은 결코 지나간 시간이 될 수 없고, 묻을 수 없는 기억이며, 도려내고 싶지만 도려낼 수 없는 순간이다.

부끄럽지 않았고,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것은 가해자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정말 내가 문제인가, 내가 잘못인가, 나의 존재만이 오점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검열.

모든 게 연기같고 2008년 7월 14일 그날의 기억만 진짜인 것 같은 현실,

위로받고 이해받아 떠오르더라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과거와의 만남까지도.


최진영 작가가 예리하게 그려낸 현실 속에서는 문장들이 살아 숨쉬고,

그 속에서 제야는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게 이토록 중요하다.

살아 숨쉬어 미래를 만나, 쉰아홉살의 자기를 끌어안고, 또다른 이제야를 만나 안아줄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 어째서 부끄럽지 않고 고통스러운지. 당신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의심들, 설명해봤자 핑계나 변명으로 듣는 걸 알아.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51pg)

 

- 당숙이 그러기로 마음먹는다면, 오늘이 아니라도 앞으로 마주칠 숱한 날 중 어느 날, 제야는 당했을 것이다. 

 (중략) 당숙은 제야를 강간한 게 아니라 여자를 강간한 것이다.

여자 중에서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자.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여자.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여자.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자.

남들한테 얘기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여자. 그래서 또다시 강간할 수 있는 여자.... 미성년자인 친척 여자.

제야는 그 조건을 충족시켰다. 제니도 마찬가지였다. (109pg) 


- 그 날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날 그 일이 없었어도 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207pg)


- '젊은' '여자' '혼자' 중에 사람들을 가장 세게 건드리는 단어는 뭘까. (219pg) 

 

- 여행하는 동안 깨달았어. 나조차 그들의 시선으로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판단할 때가 많다는 걸. 무슨 뜻인지 알겠니?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말이 쌓일 수록 나는 나를 의심하게 되었어. 내가 그럴 만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몰아세웠어.

내가 겪은 사건만큼 나란 존재 자체가 너무 끔찍했지.

끔찍한 나는 그런 일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잖아, 그 일 이전에는 나는 나를 끔찍해하지 않았어.

원인과 결과가 자꾸 역전되는 거야. (223pg)


​- 제야는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걸었다. 때로는 달렸다.

미로의 길을 다 걸어야 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출구에 닿을 것이고, 이제 제야에게는 출구가 중요하지 않았다.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걷는 동안 들여다보는 자기 마음이 중요했다.

언젠가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으로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들이 무릎을 세우고 일어설 수 있도록, 왼쪽 벽에 손을 댈 수 있도록, 그들의 오른손을 잡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눈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제야는 정말 그러고 싶었다. (232-233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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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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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켜켜이 내린 눈 위에 또 눈이 내리고 온기 없는 햇볕 아래 눈은 날카롭게 굳기만 할 뿐 녹지는 못한 채로 먼지가 덮이고......

그런 채로 세월은 흐르고......

그랬는데, 절대로 녹을 일이 없을 것 같던 눈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천지사방을 에워쌌던 그 딱딱하고 날카로운 눈이 스르르 무너지고

무너진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50-51pg)

 

사양이 비끼는 휴게소 유리문에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이 언뜻 비쳤다가 윤이 문을 열자 사라졌다. 곧 해가 질 것이다. (72pg)



 공선옥 작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직도 단편소설 '일가'이다.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더랬다. 가족간의 관계, 이제는 얇디 얇고 얄팍한 관계가 되어버린 가족의 경계와 그 모습.

수업시간에는 성장소설로서 다루고 1인칭 주인공시점을 말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그 소설을 통해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싶었던 건 문장마다 전해지는 섬세한 감정선이었다. 사춘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그 누군들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만큼이나 여전하게, 소설 '은주의 영화'도 그런 설렘을 가지고 읽었다.

여전히 날카롭고 예리하게 삶을 담아내고 있어서 그저 신기했다.

총 8편의 작품이 실려있고, 5.18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작품부터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작품까지,

다양한 상황 속 여러 아픔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이 가장 깊게 박혔다.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윤은 25년전, 어린이집 차가 펑크가 나면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잃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시고, 딸이 독립한 뒤로 윤은 줄곧 혼자이다.

신록에 눈부셔하는 자신이 죄스럽지만, 그럼에도 윤은 살아간다.


그러던 중 사촌누이 경자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옆집 살던 이의 아이를 한 달만 잠시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윤은 아이를 맡게된다는 생각으로, 잊고있던 가족에 대한 마음과 희망을 떠올린다.


아이를 맡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레시피를 찾아보고 동화책과 그림책을 주문하고,

더 나아가 양자로 들이겠다는 꿈에 부풀어있는 윤이지만

경자는 곧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데려가기로 했다며, 윤이 데려갈 필요가 없게되었다는 무정한 전화를 남긴다.


윤은 버스가 출발하기 오분 전, 다섯시 정각, 아이를 납치할 생각을 하다가 담배를 사러 휴게소 안 편의점으로 들어가고 소설은 끝이 난다.


모든 생기를 잃고 살아가던 이가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한 아이에게 겹치며, 그 아이에게 모든 걸 걸고 기대하는 순간은,

또 그 모든 기대가 좌절되고 눈앞에서 부서지는 순간은 어떤지.

다른 작품들 역시도 삶이고 이야기였지만 이 단편이 가장 의미있었던 건, 윤이 감내해야만 했던, 또 앞으로 삼켜낼 시간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감정을, 특히 아픔을 선명한 색채로 그려내고 절절히 공감하게 하는 게 공선옥작가의 힘이 아닐까.


한 번, 두 번, 곱씹을 수록 더 생각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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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탐구 생활
게일 피트먼 지음, 박이은실 옮김 / 사계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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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 한 적이 있나요?

누가 이 기술을 발명했을까요? 무선 전화기 발명을 누구한테 고마워하면 될까요?

바로 헤디 라마르입니다. 라마르는 1940년대에 활동한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예요.

그녀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불렸고,

라마르가 출연한 영화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녀가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다는 사실은 몰라요. (30-33pg)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더 나은 삶, 평등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차별을 없애자는 하나의 희망이다. 하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은 여러 이슈들과 함께 여성 혐오와 얽혀, 최근에는 또 남성 혐오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억압받아 왔다.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자라는 취급을 받았고, 심지어 너 페미야?’라는 말이 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성평등주의자라고 하면 괜찮고,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불온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런 여러 오해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길이다. 이 책은 그런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한 하나의 안내서이다.

 

   성차별은 여러 방법으로 생긴다. 남자는 파랑색, 여자는 분홍색 따위의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서, 성 역할을 고정하여 여자가 할 수 있는 일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도 물론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부분은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에 비해서 많이 나아진 점이 있다. 하다못해 교육과정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반영되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양성평등 주간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대부분 차별편견등을 없애자는 정도로 표면적인 부분만을 다룬다. 물론 이러한 부분 역시 매우 중요하다. 2015년 사람인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중 여성은 19%, 30대 공기업 중 여성은 21.9%에 불과했고 신입사원 10명 중 여성은 고작 2명에 불과했으니까. 이러한 차별 속에 담긴 사회구조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왜 남성을 더 선호하게 되었는지, 사회구조적으로 내재된 문제의식을 지적해 이를 해결해나가는 건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의 의식을 조장하는 잠재적인 부분이다. 가장 쉽게 나타나는 부분은 여성을 지우는 것이다. 여성의 업적, 여성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와이파이를 매일같이 사용하면서도 와이파이를 발명한 여성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과학 교과서에서 본 일도 없다. 이게 분야가 협소해서 그런 걸까? 우리의 교과서에는 여성 위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신사임당과 유관순 정도인데, 유관순 역시도 열사나 영웅의 이미지보다는 유관순 누나라는 이름으로, 혹은 가여운 소녀나 성녀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신사임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예술가라는 이미지보다는 현모양처와 내조의 이미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은 왜일까?

 

  미디어의 성상품화, 아름다워야만 여성이라는 인식, 남자다워야만, 강해야만 남자라는, 남자다움에 대한 오해, 성소수자 논쟁과 낙태권 논쟁 등, 우리 사회와 둘러싼 성차별적인 문제는 얼마든지 있고, 우리는 이를 분명히 생활 속에서 느끼면서도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거나 직면한 적은 별로 없다. 중요한 건 이게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게 남의 일이 아닌 나의 문제’, ‘우리 사회의 공동의 문제로 여기는 부분이다.

 

   나의 삶을 성찰하고,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공동체나 사회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 페미니즘은 우리가 해결해나가야 할 공동의 과제이다. 이 책이, 알을 깨듯이 잘못된 인식이 깨지고 더 나은 사회로 도약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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