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레터링 자수 클래스 - 비즈와 스팽글로 만드는
박명화 지음 / 영진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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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업 중 '기술과 가정'이란 수업이 있었다.

그중 '가정' 수업에선 바느질과 요리에 대해 배웠고,

그때 나의 바느질에 대한 재능없음을 알게 됐다.

 

바늘로 실을 꿰는 건지 손가락을 꿰는 건지 분간 짓기 어려웠으며

완성이랍시고 만든 면 재질 필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후로 바느질 및 자수에 관해선 손 한 번 대지 않았다.

 

,

 

얘기가 산으로 가기 전에 책을 살펴봐야겠다.

 

반짝이는 레터링 자수 클래스는 제목 그대로

레터링 자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책이다.

잠시 중학생 시절 따끔했던 기억은 잊고

반짝이는 레터링 자수 클래스을 펼쳐보자.

 

 

 

 

작가님은 대학에서 공예학을, 대학원에선 섬유 디자인을 전공하셨으며

졸업 후 '아포코팡파레'라는 크래프트 스튜디오에서

자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계신다.

전공을 공예, 디자인 쪽으로 하신 만큼

자수에 있어서도 전문지식을 갖추셨다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진입에 앞서,

작가님께서 직접 만드신 작품 사진이 프롤로그와 함께 딸려있다.

자수 레터링을 액자 형식으로 만든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셔츠에 레터링을 입힌 작품도 있다.

밋밋한 단색 셔츠의 깃 부분에 사진처럼 레터링을 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옷이 될뿐더러

포인트를 주기 좋을듯하다

 

그리곤 자수에 필요한 재료를 소개한다.

대충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던 바늘, , 원단 외에도

수틀, 먹지, 풀 등 갖춰야 할 것들이 은근 많았다.

이 부분에서 세세하게 짚어주는 책의 친절함이 엿보였다.

 

이어서 수틀 끼우기, 실 다루기, 도안 옮기기 등

재료를 다루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실 끼우기는 내가 바느질 및 자수 과정 중 제일 자신 있는 종목이다.

 

실을 장전했으니

이젠 수놓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겠다.

각종 스티치 방법과 스팽글 사용법에 대해

사진과 글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름도 가지각색으로

이름 해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본격적인 소품 만들기에 들어간다.

여기야말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앞서 프롤로그에서 보여줬던

액자, 그립톡 등의 제작 과정을 알려준다.

이 역시 설명이 굉장히 세세하고 친절하다.

기본적인 자수 스킬을 탑재하신 분은

소품 만들기 목차부터 보시면 될 것이다.

 

정말 친절한 책이다.

책의 부록에선

앞서 보여줬던 작품에서 쓰인 레터링의 도안이 나온다.

꽤나 많은 도안이 나와있으니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골라 쓰면 된다.

 

 

 

 

꼬맹이 땐 집에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으면

요리책이라도 손에 쥐고 읽었다.

상상 속에서 프라이팬을 요리조리 돌리는 셰프가 되기도,

수타면을 만드는 중국집 장인이 되기도 했다.

 

반짝이는 레터링 자수 클래스역시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나만의 자수를 만드는 상상을 했다.

(훗날엔 집 어딘가에 내가 수놓은 자수를 벽에 걸어놓을 테다)

또한,

손재주가 좋거나 바느질 및 자수에 관심이 있다면

반짝이는 레터링 자수 클래스이 꽤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더불어 이미 자수에 통달한 사람보단,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한 권쯤 있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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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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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유대인 학살과 강제 이주 행정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1962년에 열렸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실제로 참관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당시 재판 과정과 아이히만을 통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설명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시사프로그램인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서였다.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어디선가 주워듣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찾아보거나 설명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악의 평범성'에 대한 어렴풋한 개념을 알 수 있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이것도 책인데?) 직접 읽어보는 게 속 시원할 듯했다.

 

――――――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은 악한 행위의 반복으로 악이 곧 일상이 되어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함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상대의 고통에 대한 공감 결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판단 능력의 결여가 복합되어 악을 행하는 주체가 스스로 그 행위를 악하다고 규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이히만이야말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한나 아렌트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주창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선 아이히만의 평범함을 강조한다.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그리고 끝으로, 대법원에서 그의 항소를 들은 후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해 주었다."

p.79

 

"아이히만은 중간 정도 체격에 호리호리하며 중년으로, 근시에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고르지 않은 치아를 지니고 있었다."

p.52

 

이처럼 아이히만은 그럭저럭 평범한 인간이다. 재판 전, 전세계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만큼 악한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중년일뿐이었다. 더불어 아이히만의 뻔뻔한 무죄 주장은 이 재판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행한 유대인 학살을 당시 나치 아래에선 합법이었으며, 자신은 그저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공무원이자 군인일뿐이라고 말한다4. 그는 자신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가 아닌 '공무'로 보았으며,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재판 당시 가장 갸우뚱한 사람은 아이히만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어야할 것이 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건 유대인 학살을 알리고 전범자들을 재판에 넘기기 위함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 아닌, 악을 저지르고도 무죄를 주장하는 아이히만이란 인간 자체에 집중했다.

 

"심판대에 오른 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p.52

이 때문에 한나 아렌트는 책 출간 후 유대인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이란 인간에 집중했기에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아이히만의 세가지 무능성은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이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으며, 한 가지가 결여되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친다. 아이히만이 본인 스스로 나치 정권 당시의 법을 따르고, 그저 명령을 받고 수행한 공무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언정, 그가 행한 유대인 학살은 명백한 ''이다. 우선 유대인 학살이란 행위를 하고도 아이히만이 무죄를 주장하는 데에는 그들의 언어규칙이 한몫한다.

 

거짓말 체계의 통상적 효과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살상과 거짓말에 대한 그들의 오랜 정상적인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p.150

 

나치는 유대인 학살을 '최종적 해결책', '거주지 변경', 특별취급' 등의 언어규칙을 사용하였다. 해당 단어를 곧이곧대로 쓴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변형을 주어 수행하는 이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서류상 문제없음을 의도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하는 '악의 평범성'의 결정적 부분은 아이히만의 무사유에 있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사유할 능력이 없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규정..."

p.38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p.106

 

"비록 8000만 독일인이 피고처럼 행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고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p.381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으로 규정한다. 아이히만의 무사유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으며, 누구나 ''으로 규정하는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히만은 타인의 고통에 무능력했기에 명백한 유죄를 저질렀다.

 

"그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p.78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 p.74

 

오히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것에 대한 죄책감 보단, 명령 받은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전히 폭력을 통한 그러한 피투성이의 해결책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의구심들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p.183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p.184

 

이이히만 자신은 폭력적인 피의 해결책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사상이 변하게 된 계기를 반제회의라고 말한다. 해당 회의에서 고위관직인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유대인 학살 통계와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히만은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 예수 시절에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인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의 요구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했는데, 이 판결 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

 

 

자기합리화와 뻔뻔함이 참으로 역겹지만, 우린 그저 아이히만을 역겨워하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에서 '평범성'이란 단어는 누구나 아이히만에 해당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무사유로부터 이어진 그른 판단과 공감 능력의 결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아이히만은 무사유와 그른 판단, 공감 능력 결여를 가진 인물이었고, 안타깝게도 그런 인물이 나치 정권의 주요 임무인 유대인 학살 및 이주를 맡았던 것이다. 이는 절대 아이히만의 전범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엔 옳은 줄 알고, 무비판적 사고를 장착하고 명령을 수행했던 아이히만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도 같고, 오늘 날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우린 이제 역사를 통해 과오를 알았기에,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필히 아이히만과 같은 인물의 등장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유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오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유를 하면 된다. 생각할 줄 알고, 비판적 사고를 장착하면 된다. 공감할 줄 알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면 된다. 어떤 시대에나 관통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막연한 두려움만 품고 어쩌지 저쩌지 하기보단,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악의 평범성'을 알았으니 행동으로 위의 방안을 옮기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를 장착하는 것이 될 것이며, 이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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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 뇌과학과 정신의학이 들려주는 당신 마음에 대한 이야기
전홍진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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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사람은 다 다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린 때로 잊고 산다.

아마도 자신을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마음씨가 고와서일테다.

마찬가지로, 나 이외의 이들도 자신에게만큼은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러면서도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이 있다.

인풋은 같은데 아웃풋이 너무 다른 이들.

우린 이들을 '예민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제목부터 적나라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매우 예민한 당신 혹은 당신의 가족, 친구, 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예민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예민한 조각 하나쯤은 누구나 있기에

(만약 없다면 당신은 대인관계도 원활하고 누구에게나 칭송받는 완벽한 사람!)

혹은

주변의 예민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만하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은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바탕으로

예민한 사람의 유형과 유명인의 성공 및 극복 사례를 담아냈기에

공감이 쉽고 고개가 심하게 끄덕여지는 사례가 많다.

(물론 나는 그다지 예민하지 않다.)

예민하지 않고 오히려 둔하다면 둔한 나조차 공감 가는 사례가 많았다.

 

 

"인간관계가 잘 형성되면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동안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부모이고 이는 성철씨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치 상류의 모난 돌이 강을 타고 내려와 동글동글해지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의 영향으로 생각과 태도가 부드러워집니다." p.150

 

 

유아기에 부모와의 교류는 이후 삶의 방향을 넌지시 잡아준다.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부모와의 올바른 정서적 교류를 성립하지 못하고

가정이 울타리란 관념을 갖지 못하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과거의 결핍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럼에도 변화의 여지는 충분하다.

성인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관계를 선택할 수 있음이다.

이는 나의 예민함을 존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단 뜻이다.

직장에선 적용되지 않을 수 있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을 할 시엔

본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나의 예민함을 대인관계로 어르고 달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좌절을 견디고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내가 견딜 수 없는 심각한 좌절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안전기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모나 친구 혹은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데 주저하지 말자.” p.294

 

 

예민함을 받아주는 울타리를 안전기지라고 칭해보자.

이 안전기지는 부모나 친구 혹은 주위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안전기지를 미처 세우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땐 주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병원에 가거나 상담받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예민함을 알고 아픔을 직시해야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나 가족 때문에 예민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가족의 문제점을 보기 전에 자신이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그들에게 들였는지 돌아봐야 한다.” p.320

 

 

가정의 불화에 예민함이 기초할 경우엔,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나의 예민함을 돌이켜봐야 한다.

그리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했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보자.

 

나는 내가 세상에 어떻게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발견되니 않은 채 내 앞에 놓여 있는 진리의 바닷가에서 놀며, 때때로 보통보다 더 매끈한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를 찾고 있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p.59

 

 

위에 인용구는 뉴턴의 명언이다.

뉴턴 역시 예민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뉴턴은 유복자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며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이별하여 가정의 충분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이로 기초한 예민함과 트라우마는 뉴턴을 우울증과 편집증에 이르게 했다.

유별난 뉴턴의 예민함은 부정적 영향도 끼쳤지만

예민함에 기초하여 만유인력의 법칙, 물체 운동에 대한 3원칙 등의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

 

글을 쓰는 것으로 '가면 쓰지 않은' 자신을 찾았던 사람이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불행은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p.63

 

 

위는 윈스턴 처칠의 사례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블랙독'이라고 칭하며 내면의 우울을 형상화했다.

그는 '블랙독'을 글과 창작을 통해 극복했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말년엔 책을 읽지 못할 정도로 내면이 무너지게 된다.

글로 자아를 드러낸 자가 글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은 상상하기도 무섭다.

 

 

 

잊어버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다. 치매처럼 단기기억을 잃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며, 필요 없는 기억을 자연스럽게 잃어버리는 것은 때로 매우 중요하다.” p.296

 

 

시험 공부를 할 땐 모든 걸 다 기억할 수 있었으면 싶다.

한번 보면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갖고 싶단 상상을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생각해보니

그건 저주다 저주.

반대로 인간에게 망각은 축복이다.

잊을 수 있기에 다음을 기록할 수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불행한 일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노력을 통해서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다.” p.313

 

 

위의 인용구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온전하게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진 않는다.

 

과거의 기억은 과거대로 의미가 있고 간직해야 하지만 그 기억에서 나오는 감정에 현재의 내가 휘둘리면 안 된다.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p.323

 

인용이 너무 많다.

그만큼 와닿는 문장이 많았다.

아마도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맥락은

'과거에 휘둘려 현재의 나를 소홀히 여기지 말자'

다르게 말해서

'현재에 충실하자'

인듯하다.

.

.

간만에 읽은 굉장히 좋은 책이었다.

예민한 사람들의 사례, 예민함을 극복하여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사례,

예민함을 극복하는 방법,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 등

현실에서 쓰임이 용이한 내용이 주를 이뤘으며

부록으론 예민함을 측정하고 다룰 수 있는 표가 딸려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란 제목에 충실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홍보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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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발명 - 1572년에서 1704년 사이에 태어나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과학에 관하여
데이비드 우튼 지음, 정태훈 옮김, 홍성욱 감수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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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학창시절, 수학은 싫어했어도 과학은 흥미로워했다. 과학수업은 공상영화나 SF소설을 보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읽는 책의 색이 뚜렷해져 전형적인 문과생이 되어갔고, 이과감성 충만한 책은 베스트셀러에 있어도 병풍처럼 지나치기만 했다. 아무래도 이과의 것들 색안경을 쓴 채로 바라봤나 보다. 그래서 이 책을 도전해봤다. 틀에 박힌 채로 굳어가는 기분을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한 첫시도였다.

(사진)->레고와 비교

무려 1000페이지 가량 되는 과학이라는 발명은 알고 보니 과학 역사서였다. 이 책이 과학역사서란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안도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저자는 튀코 브라헤가 신성, 새로운 별을 관찰했던 1572년과 뉴턴이 그의 광학을 출간했던 1704년 사이에 (과학이) 발명되었다.”며 부제 역시 1572년에서 1794년 사이에 태어나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과학에 관하여로 설정하였다.

(사진)->튀코 브라헤 신성

튀코 브라헤? 신성? 뉴턴? 아 뉴턴은 들어봤지. 근데 광학? 이건 또 뭐야. 과학이라는 발명의 과학 역사서란 타이틀로 안일해진 내 멘탈을 몇 가지 낯선 과학용어가 강타했고, 읽는 내내 온갖 고난과 역경에 시달렸다.

(사진)->유레카!

과학이라는 발명에선 과학혁명에는 근대 과학혁명모두 없었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한다. 저자는 17세기의 과학혁명을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란 사건과 비교하며, 신대륙 발견이 단순한 관점의 전환이 아니듯이, 과학혁명 역시 단순한 관점의 전환이 아님을 주장한다. 저자가 의도한 바 중 하나이겠지만, 읽으면서 든 생각은 단순한 말장난이었다. 혁명의 정의, 발견의 발견, 과학의 발명, 진리 등등...뜻풀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장이 나에겐 단순한 말장난으로 비추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말장난은 현대에 쓰이는 과학 용어가 앞서 말한 1572년부터 1704, 즉 과학혁명이 이뤄진 기간 동안 성립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진)->코페르니쿠스 지동설

과거엔 증명하지 못해도 보편적이기만 하면 진리가 되는 것이 있었고, (천동설, 지구 평면설 등) 대부분이 종교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진리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 보면, 천동설이나 지구 평면설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며 증명을 통한 과학적 사실로 진리가 아님이 확정되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며, 완벽한 구는 아닐지라도 지구는 둥글다. 이것이 오늘날의 진리다. ‘진리가 나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과학과 철학은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견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했던 4원소설, 2원소설 등은 당시엔 진리가 될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엔 증명을 통해 과학적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고, 철학은 그저 철학으로만, 인문학의 한 갈래로 남겨지게 되었다. 사실상 철학을 몰락시킨 것이 종교와 과학 아닐까. 과학과 종교 역시 사이가 좋진 않지만(이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견해) 내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지 않던가. (요즘 삼국지를 본 탓에..) 과학이라는 발명에서도 과학혁명이란 어쩌면 철학을 반대하는 수학자들의 봉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당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장이었다. 당시의 수학자들은 주장에 대한 수학적 증명과 이론이 충분하지만, 대중이 납득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인지 봉기란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과학에서 진리란 무엇일까? 저자는 과학이란 진리가 아닌, 신뢰할 만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유쾌한 질문에도 항상 정직한 모범답안만 제시하는 모범생의 답 같지 않은가? 얄미우면서도 통쾌한 해답이다.

 

세계사나 한국사는 접해봤어도 과학사는 처음이었다. 처음인 만큼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였다. 1572년부터 1704년까지의 과학사를 다루며 과학혁명을 짚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중간중간 말장난이 등장하여 정체 구간이 있긴 했지만, 두고두고 천천히 읽는다면 어렵지도, 답답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앉아서 완독할 생각은 안 하는게 정신건강에 좋을듯하다. (비전공자라면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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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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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렇게 쉽게 리셋되지 않아. 과거는 언제까지고 따라다녀. 속죄는 할 수 있어도 실수를 저지른 과거를 지울 수는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p.262

 

범죄자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이기에 교화할 수 없다는 입장과 그럼에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자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플라주는 둘 중 어딘가엔 속해있을 당신의 입장에 물음표를 던진다.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란 독특한 설정은 책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일본의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즐겨 읽지 않음에도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는 결국 내 손에 플라주를 쥐게 했다.

 

입주자는 총 6. 남자가 넷, 플라주 운영자를 포함하여 여자가 셋이다. 여기서부터 가내 연애가 생길 것이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플라주의 모든 방엔 방문이 따로 없으며, 그저 커튼만이 사생활을 가려준다. 약간의 시각과 청각, 후각을 플라주의 입주자는 공유한다. (나라면 여기서 못산다.) 이처럼 플라주를 읽을 때 나 역시 플라주의 입주자란 생각으로 풍덩 빠져 읽으면 몰입과 공감이 폭풍처럼 가능하다.

 

플라주는 각성제 복용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화재로 인해 거주지를 잃게 되어 플라주에 입주하게 된 다카오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다카오의 사정과 플라주 입주자들의 사정이 번갈아가며 펼쳐지는 전개 방식은 독자가 등장인물들에게 충분히 이입할 수 있게끔 한다.

 

플라주의 양날의 검이 바로 '등장인물을 대한 충분한 몰입'이다. 다뤄지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전과자이기에 과도한 몰입이 좋지 않은 가치관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범죄자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하여 범죄에 대한 합리화를 부여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플라주 입주자의 경우, 피해자가 존재하는 범죄, 공익을 크게 헤친 범죄를 저지른 입주자가 없다.

 

오히려 억울한 입주자가 존재한다. 살인 전과로 들어온 도쿠미가 그렇다. 도쿠미가 친구와 만난 날, 친구가 사망했고, 그 둘이 돈이란 또 다른 이해관계로 묶여있단 사실만으로 도쿠미는 살인자가 된다. 더불어 도쿠미 여자친구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도쿠미는 이도 저도 못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도쿠미의 여자친구가 증언을 번복하여 도쿠미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럼에도 도쿠미가 분명 살인자일 것이라고 보던 기자는 사건을 더 캐내기 위해 플라주에 위장 입주하여 도쿠미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 p. 278

 

등장인물 각자의 사정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동시에 플라주는 전과자를 대하는 사회의 잘못된 방식을 고발한다. 전과자는 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직장을 구하긴 더 어렵다. 재기불능이란 단어가 전과자만큼 잘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모두의 목소리로 합일하여 만들어진 법대로라면, 전과자는 죗값을 다 치른 상태다. 벌금형이 되었든, 옥살이가 되었든, 집행유예가 되었든 법상으론 더 갚아야 할 무언가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는 전과자에게 계속해서 죗값을 받아내려 한다. 고리대금처럼 끝까지 받아먹는다. 사회는 전과자를 아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주지 않고, 따스한 시선은 고사하고 거주지조차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전과자는 결국 사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경계인이 된다. 이처럼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전과자가 부당한 일로 돈을 벌게 되는 결과와 재범의 존재는 사회 자체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플라주에선 암시한다.

 

날마다 똑같아 보이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도 어느 하나 같은 파도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달라진 것을 슬퍼해서도 안 된다. p.396

 

 

누군가에겐 플라주가 전과자 과대 옹호이자 피해자에겐 2차 가해로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범죄자가 벌금과 옥살이 등의 죗값을 치르긴 했으나 '전과자'란 빨간줄로 인해 얻는 사회적 불이익 정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플라주가 전과자만 나오는 소설이기에 이러한 부분을 염려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범죄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가지면 어쩌지란 고민을 책 읽는 내내 가졌다. 그리고 플라주는 절대 범죄에 대한 긍정이나 그 비스름한 암시 하나 없단 결론을 냈다. 오히려 범죄로 인해 망가지는 삶과 가정, 절벽으로 내몰리는 삶을 봤다.

 

플라주의 마지막엔 반전이 존재한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이랄까. 반전이 없나 갸우뚱거릴 때쯤, 끝내 반전이 등장하고, 소설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맛이 있다.

 

 

 

 

이 가게의 이름,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이라는 뜻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그것은 항상 흔들리고 있다. p.160

 

플라주의 뜻은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이자 모호하게 항상 흔들린다. 그 구분을 확정 짓기란 어렵다. 플라주 입주자이자 전과자인 등장인물의 입장을 잘 드러낸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어딘가에 속해있기 어렵고,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이방인이다. 그들을 품어주는 플라주는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어쩌면 현실에 있는 게 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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