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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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유대인 학살과 강제 이주 행정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1962년에 열렸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실제로 참관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당시 재판 과정과 아이히만을 통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설명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시사프로그램인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서였다.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어디선가 주워듣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찾아보거나 설명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악의 평범성'에 대한 어렴풋한 개념을 알 수 있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이것도 책인데?) 직접 읽어보는 게 속 시원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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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은 악한 행위의 반복으로 악이 곧 일상이 되어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함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상대의 고통에 대한 공감 결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판단 능력의 결여가 복합되어 악을 행하는 주체가 스스로 그 행위를 악하다고 규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이히만이야말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한나 아렌트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주창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선 아이히만의 평범함을 강조한다.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그리고 끝으로, 대법원에서 그의 항소를 들은 후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해 주었다."

p.79

 

"아이히만은 중간 정도 체격에 호리호리하며 중년으로, 근시에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고르지 않은 치아를 지니고 있었다."

p.52

 

이처럼 아이히만은 그럭저럭 평범한 인간이다. 재판 전, 전세계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만큼 악한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중년일뿐이었다. 더불어 아이히만의 뻔뻔한 무죄 주장은 이 재판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행한 유대인 학살을 당시 나치 아래에선 합법이었으며, 자신은 그저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공무원이자 군인일뿐이라고 말한다4. 그는 자신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가 아닌 '공무'로 보았으며,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재판 당시 가장 갸우뚱한 사람은 아이히만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어야할 것이 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건 유대인 학살을 알리고 전범자들을 재판에 넘기기 위함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 아닌, 악을 저지르고도 무죄를 주장하는 아이히만이란 인간 자체에 집중했다.

 

"심판대에 오른 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p.52

이 때문에 한나 아렌트는 책 출간 후 유대인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이란 인간에 집중했기에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아이히만의 세가지 무능성은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이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으며, 한 가지가 결여되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친다. 아이히만이 본인 스스로 나치 정권 당시의 법을 따르고, 그저 명령을 받고 수행한 공무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언정, 그가 행한 유대인 학살은 명백한 ''이다. 우선 유대인 학살이란 행위를 하고도 아이히만이 무죄를 주장하는 데에는 그들의 언어규칙이 한몫한다.

 

거짓말 체계의 통상적 효과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살상과 거짓말에 대한 그들의 오랜 정상적인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p.150

 

나치는 유대인 학살을 '최종적 해결책', '거주지 변경', 특별취급' 등의 언어규칙을 사용하였다. 해당 단어를 곧이곧대로 쓴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변형을 주어 수행하는 이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서류상 문제없음을 의도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하는 '악의 평범성'의 결정적 부분은 아이히만의 무사유에 있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사유할 능력이 없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규정..."

p.38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p.106

 

"비록 8000만 독일인이 피고처럼 행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고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p.381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으로 규정한다. 아이히만의 무사유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으며, 누구나 ''으로 규정하는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히만은 타인의 고통에 무능력했기에 명백한 유죄를 저질렀다.

 

"그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p.78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 p.74

 

오히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것에 대한 죄책감 보단, 명령 받은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전히 폭력을 통한 그러한 피투성이의 해결책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의구심들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p.183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p.184

 

이이히만 자신은 폭력적인 피의 해결책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사상이 변하게 된 계기를 반제회의라고 말한다. 해당 회의에서 고위관직인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유대인 학살 통계와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히만은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 예수 시절에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인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의 요구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했는데, 이 판결 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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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와 뻔뻔함이 참으로 역겹지만, 우린 그저 아이히만을 역겨워하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에서 '평범성'이란 단어는 누구나 아이히만에 해당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무사유로부터 이어진 그른 판단과 공감 능력의 결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아이히만은 무사유와 그른 판단, 공감 능력 결여를 가진 인물이었고, 안타깝게도 그런 인물이 나치 정권의 주요 임무인 유대인 학살 및 이주를 맡았던 것이다. 이는 절대 아이히만의 전범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엔 옳은 줄 알고, 무비판적 사고를 장착하고 명령을 수행했던 아이히만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도 같고, 오늘 날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우린 이제 역사를 통해 과오를 알았기에,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필히 아이히만과 같은 인물의 등장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유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오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유를 하면 된다. 생각할 줄 알고, 비판적 사고를 장착하면 된다. 공감할 줄 알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면 된다. 어떤 시대에나 관통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막연한 두려움만 품고 어쩌지 저쩌지 하기보단,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악의 평범성'을 알았으니 행동으로 위의 방안을 옮기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를 장착하는 것이 될 것이며, 이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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