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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양장) -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 ㅣ 이부영 분석심리학 3부작 1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21년 2월
평점 :
그림자는 바다 표면 가까이 뜬 해초와 같으나 일단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정신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보배, 또는 비밀을 건드리게 된다.
p.54
우리에겐 밝은 면만 있지 않다. 아쉽지만, 누구에게나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융은 인간 무의식의 어두운 면을 '그림자'라고 일컬었다. 그림자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자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기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별로 달갑지 않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를 우리가 마주해야할 이유는 뭘까?
이부영의『그림자』는 위에 의문에 대한 해결책과 근거를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거해서 설명한다. 『그림자』는 이부영 분석심리학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시리즈는『아니마와 아니무스』,『자기와 자기실현』이 있으며,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여 자기실현을 이루는 과정을 다룬다.
의식이 무의식을 경시하면 무의식은 보상작용으로 이성적인 인간에게 비합리적인 행동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인식하는 행위를 소홀히 하면 보상작용의 강도가 높아져 의식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생리적 이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p.40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p.41
무의식은 궁극적으로 무의식적이다. 자아가 전일의 경지인 자기의 경지에 근접할 수는 있으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언제나 자아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실현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p.47
앞서 말했듯이, 그림자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자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마주하기란 고통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그림자를 통해 어떻게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걸까?
무의식은 들여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살펴야 한다. 무의식 속엔 감추고 있던 욕구와 이상향이 있으며, 이는 꽤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아가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무의식에 감추고 가둔다. 우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고자 하며, 도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춘다고 없는 게 아니다. 당장 해야 할 빨래가 산더미인데, 이걸 안 보이는 곳에 치운다고 빨래가 해결된 건 아니다. 눈에 안 보이면 당장은 홀가분할 수 있다. 이건 일시적이다. 언젠가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한다. 무의식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한다.
그림자는 보통 부정적이고 열등한 성격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투사된 인물에게 향하는 감정은 늘 좋지 않은 성질을 띤다.
p.92
극단적인 내향형은 그 무의식에 외향형 그림자를, 극단적인 외향형은 내향형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으므로 모두 미숙하고 열등한 경향이 있다.
p.101
남을 비난하기는 쉬우나 자기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은 때로 충격적인 일이다. 그것은 자기가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억압해온 자기 마음속의 열등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p.106
상대방이 자기의 열등한 기능을 우월기능으로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무의식의 열등기능을 자극한다. 이렇게 열등기능이 의식에 떠오를 즈음 사람들은 자기의 열등한 면을 보기를 꺼리고 그것을 상대방에 투사해서 상대방이 가진 장점을 깎아내리려 한다.
p.138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천천히 떠올려보자. 혹시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가? 이를 투사라고 한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부정적인 면이 사람에게 투사되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나에게 진정 없을지 말이다.
투사된 상대방을 욕하는 건 참 쉽다. 투사된 상대방의 모습이 내 무의식의 그림자란 걸 안다면 달라질 것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상대방이 사실 나의 그림자가 투사된 모습이라면, 그건 자기혐오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열등한 면을 보기 꺼려한다. 그걸 보게 되면,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다. 언제까지 투사된 상대방을 흠 잡으며 자기혐오를 할 것인가. 이를 멈추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는 건 참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투사가 부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다. 투사된 상대방의 모습이 나의 그림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오히려 무의식의 그림자가 사람의 형태로 보이기에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뻔뻔스럽게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p.194
밝은 것을 상상한다고 밝아지지 않는다.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쾌하고 그래서 인기가 없다.
p.211
책에서도 말한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무의식의 침전물인 그림자를 의식화해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그저 온전한 인간이 될 뿐이다. 고통을 수반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니. 허탈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린 그림자를 살펴야할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도망가고 회피하는 삶이 때론 건강에 좋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듯이,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찬찬히 살피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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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이 되지 않으려면 개인 개인이 깨어 있어야 한다. 선동자의 교모하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그림자를 비롯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한다.
p.306
소경이 소경의 길잡이가 될 수 없듯이, 자기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집단이, 사회가, 나라가 바뀌길 원한다면 개인부터 바뀌어야 한다. 상대방한테 뭔가를 바란다면, 나부터 그걸 해줄 수 있는지, 무작정 탓하고 흠잡던 대상과 나는 진정 다른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했다면, 들여다 봐야 한다. 어둡고 불쾌한 무의식의 그림자를 말이다. 당장 바뀌는 걸 기대해선 안된다. 본다고 바뀐다면, 누구나 해냈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변하면 된다.
우리에게도 무의식의 그림자를 들여다볼 용기가 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