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양장) -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 이부영 분석심리학 3부작 1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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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바다 표면 가까이 뜬 해초와 같으나 일단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정신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보배, 또는 비밀을 건드리게 된다.

p.54

 

우리에겐 밝은 면만 있지 않다. 아쉽지만, 누구에게나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융은 인간 무의식의 어두운 면을 '그림자'라고 일컬었다. 그림자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자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기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별로 달갑지 않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를 우리가 마주해야할 이유는 뭘까?

 

이부영의그림자는 위에 의문에 대한 해결책과 근거를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거해서 설명한다. 그림자는 이부영 분석심리학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시리즈는아니마와 아니무스,자기와 자기실현이 있으며,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여 자기실현을 이루는 과정을 다룬다.

 

의식이 무의식을 경시하면 무의식은 보상작용으로 이성적인 인간에게 비합리적인 행동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인식하는 행위를 소홀히 하면 보상작용의 강도가 높아져 의식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생리적 이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p.40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p.41

 

무의식은 궁극적으로 무의식적이다. 자아가 전일의 경지인 자기의 경지에 근접할 수는 있으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언제나 자아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실현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p.47

 

앞서 말했듯이, 그림자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자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마주하기란 고통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그림자를 통해 어떻게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걸까?

 

무의식은 들여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살펴야 한다. 무의식 속엔 감추고 있던 욕구와 이상향이 있으며, 이는 꽤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아가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무의식에 감추고 가둔다. 우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고자 하며, 도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춘다고 없는 게 아니다. 당장 해야 할 빨래가 산더미인데, 이걸 안 보이는 곳에 치운다고 빨래가 해결된 건 아니다. 눈에 안 보이면 당장은 홀가분할 수 있다. 이건 일시적이다. 언젠가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한다. 무의식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한다.

 

그림자는 보통 부정적이고 열등한 성격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투사된 인물에게 향하는 감정은 늘 좋지 않은 성질을 띤다.

p.92

 

극단적인 내향형은 그 무의식에 외향형 그림자를, 극단적인 외향형은 내향형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으므로 모두 미숙하고 열등한 경향이 있다.

p.101

 

남을 비난하기는 쉬우나 자기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은 때로 충격적인 일이다. 그것은 자기가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억압해온 자기 마음속의 열등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p.106

 

상대방이 자기의 열등한 기능을 우월기능으로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무의식의 열등기능을 자극한다. 이렇게 열등기능이 의식에 떠오를 즈음 사람들은 자기의 열등한 면을 보기를 꺼리고 그것을 상대방에 투사해서 상대방이 가진 장점을 깎아내리려 한다.

p.138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천천히 떠올려보자. 혹시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가? 이를 투사라고 한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부정적인 면이 사람에게 투사되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나에게 진정 없을지 말이다.

 

투사된 상대방을 욕하는 건 참 쉽다. 투사된 상대방의 모습이 내 무의식의 그림자란 걸 안다면 달라질 것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상대방이 사실 나의 그림자가 투사된 모습이라면, 그건 자기혐오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열등한 면을 보기 꺼려한다. 그걸 보게 되면,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다. 언제까지 투사된 상대방을 흠 잡으며 자기혐오를 할 것인가. 이를 멈추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는 건 참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투사가 부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다. 투사된 상대방의 모습이 나의 그림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오히려 무의식의 그림자가 사람의 형태로 보이기에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뻔뻔스럽게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p.194

 

밝은 것을 상상한다고 밝아지지 않는다.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쾌하고 그래서 인기가 없다.

p.211

 

책에서도 말한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무의식의 침전물인 그림자를 의식화해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그저 온전한 인간이 될 뿐이다. 고통을 수반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니. 허탈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린 그림자를 살펴야할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도망가고 회피하는 삶이 때론 건강에 좋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듯이,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찬찬히 살피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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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이 되지 않으려면 개인 개인이 깨어 있어야 한다. 선동자의 교모하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그림자를 비롯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한다.

p.306

 

소경이 소경의 길잡이가 될 수 없듯이, 자기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집단이, 사회가, 나라가 바뀌길 원한다면 개인부터 바뀌어야 한다. 상대방한테 뭔가를 바란다면, 나부터 그걸 해줄 수 있는지, 무작정 탓하고 흠잡던 대상과 나는 진정 다른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했다면, 들여다 봐야 한다. 어둡고 불쾌한 무의식의 그림자를 말이다. 당장 바뀌는 걸 기대해선 안된다. 본다고 바뀐다면, 누구나 해냈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변하면 된다.

 

우리에게도 무의식의 그림자를 들여다볼 용기가 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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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한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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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가 현재에 대한 혜안을 제공함으로써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p.35 서문 中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서다.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의 탄생과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의 전쟁까지 담은, 시의성 가득한 책이다.


우리가 왜 우크라이나의 역사서인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를 읽어야 하는가? 글로벌 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기에? 우리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다양한 답이 있지만,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다른 나라의 뿌리를 살피고 인접 국가와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의 현위치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국제 정세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서라면 더욱더 그렇다.


세계지도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의 일이라도 더이상 남의 일이라고 볼 수 없다. 긴밀하게 얽힌 국가 관의 관계는 미세하게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줄뿐더러, 그 일이 강대국의 침략에 의한 전쟁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크림 반도를 장악하고 돈바스 일부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제국적 쇠퇴를 역전시키려는 러시아의 노력은 민족국가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의 원칙을 확고한 기반으로 한 국제질서에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례가 없는 정도로 주요한 도전을 제기했다."

p.32 개정판 서문 中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의 본문을 살피기 전, 서문에선 이 책이 왜 쓰여졌는지 말하고 있다. 2014년 크림 반도 약탈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며 소련에 속해있던 국가들이 하나둘 북대서양조약기구인(NATO)에 가입한다. 러시아는 자신의 국경과 맞닿은 국가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들이 NATO에 가입한다는 뜻은, NATO의 병력이 러시아 바로 옆에 배치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도 위와 같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본격적으로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가 전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모스크바, 즉 대러시아 민족은 언제나 우리 소러시아 민족에게 해를 끼쳤다.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대러시아는 우리 민족을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뜨리기로 오래전부터 작정했다."

p.243


이 책의 소제목인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단번에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제대로 독립된 국가를 형성한 역사가 길지 않다. 폴란드, 러시아, 몽골 등 다양한 국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동부와 서부 지역이 다른 민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서부 지역이 폴란드의 지배를, 동부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를 따로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점이 우크라이나 역사의 복잡함을 배로 늘린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러시아를 반기는 소수의 입장이 있기도 하며, 이들을 뼛속 깊이 증오하는 다수의 입장도 있다. 이런 모습은 분단국가인 한국과 비슷하기도 하다. 남과 북이 다른 사상을 가지고 갈라진 배경엔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있었고, 우린 그 피해자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크라이나는 다양한 민족이 합쳐진 국가이며, 말 그대로 '투쟁의 역사'를 지녔기에 하나의 입장을 고수하기 어렵다. 국가 내의 다양한 입장을 들어줘야 하며, 모두를 만족 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역사서인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를 통해 국제 정세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 러시아의 잘못이 명백하지만, 서방 국가와 힘 있는 국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각 국가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이득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우회하여 무기를 지원하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저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고 흘려 들을 수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에, 우크라이나의 역사서인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는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사려 깊게 볼 수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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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리커버)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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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가 열린다.

호퍼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막 관심을 가지던 중,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을 읽게 되었다.

 

빈방의 빛'시인이 말하는 호퍼'에 대한 책이다.

호퍼의 그림 30점이 담겨 있고,

에세이 혹은 비평처럼

써내려간 글이 모여있다.

 

지금부터 호퍼의 그림 몇 점과 함께

빈방의 빛을 따라가보자.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는 대개 사실적이기보다는 형식미가 두드러진다."

p.17

 

첫번째 그림은 호퍼의 나이트호크.

어두운 거리에 다이너만이 빛난다.

늦은 시간까지 다이너에 남아 있는

나란히 앉은 남녀와 혼자 온 남성,

이들과 대화를 하는 듯한 종업원.

 

등을 보인 채 앉은 남성은

무언가에 골몰하는 듯하다.

남녀는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본다.

종업원은 그들을 본다.

 

나이트호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본다.

한 공간에 있는 이들이 아닌,

이들의 시선이 닿는 방향에 눈길이 간다.

 

그래선지,

시선이 닿는 종점을 알 수 없는

등을 돌린 채 앉은 남성이 궁금하다.

왜 늦은 시간에 혼자 다이너에 왔을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림은 움직일 수 없지만,

그곳에 담긴 서사가 움직이는 듯하다.

차 한대 없는 길가와 대비되어선지,

다이너의 빛이 유독 따스하게 느껴진다.

 

 

 

 

"호퍼가 그린 나무들은 특색이 없어서 그 종류를 알 수 없다. 말하자면 시속 80~9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바라본 나무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호퍼의 숲은 독특하고 강력하다."

p.30

 

호퍼의 그림엔 빈공간이 참 많다.

4차선 도로도 그렇다.

시가를 손에 쥔 남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흐릿하게 뭉쳐진 숲을 향하는 듯하다.

 

뒤에선 여자가 무어라 말하는 듯하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는다.

주유소에서 시가를 피우는 남자에게

여자가 불을 끄라고 하는 건지,

이 둘의 관계와 남자의 시선이 닿는 곳이

어딜지 궁금해진다.

 

 

 

"이 그림은 하도 이상해서 때로 나는 이 사람들이 진짜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의 풍경-물론 그림 속의 풍경이지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p.57

 

볕을 쬐는 사람들역시 사람들의 시선에 눈이 간다.

이들은 멀끔한 정장 차림이다.

앞에 4명은 평야에 눈과 몸을 향하고,

뒤에 젊은 남자의 몸은 평야를 향하지만

시선은 책을 향한다.

 

이 그림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이들의 시선도,

평야도, 볕도 아닌,

이들의 정장 차림과 표정이다.

 

탁 트인 평야와 따스한 볕으로부터

평온을 느끼는 표정이 아니다.

일광욕을 하기 좋은 차림도 아니다.

 

호퍼의 그림에 둘 이상의 인물이 등장할 때,

이들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하지 않는다.

그들의 엇갈린 시선이 닿는 곳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호퍼 그림의 매력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동시에 밖에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듯한 느낌은 나이트호크에서 경험했던 그 느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다가는 머무르게 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이것은 호퍼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양식으로, 서사성의 의도에 회학적인 기하학적 요소가 반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p.71

좌석차의 공간은 밀폐되어 있다.

창문으론 볕만이 들어올뿐,

달리는 기차의 풍경은 없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전부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이들의 시선은 서로에게 맞지 않는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지만,

다른 여자의 시선은 책을 향한다.

 

이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을 것 같은

호퍼의 공간은

밀폐성의 답답한 느낌이 없다.

묘하게 아늑해지는 기분이다.

 

 

 

 

"이윽고 우리는 그림을 뒤로하고 진부한 멜로드라마에 빠져버리는데, 불행히도 이 멜로드라마는 남자의 표정에 나타난 환멸에서 기인한다."

p.93

 

철학으로의 소풍속 남자는

침대 위의 여자에게도,

읽기를 그만두고 펼쳐진 책에도,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저 근심을 띤 표정으로

볕에 소심하게 걸친 발을 바라본다.

 

빛이 있다면,

그 빛이 어디서 온지를 봐야할지

그 빛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봐야할지

도저히 모를때가 있다.

 

철학으로의 소풍속 남자도

이를 고민하는게 아닐까?

 

 

 

 

"그림은 우리에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 것을 요구하는데, 바다가 아니라 좁은 틈으로 보이는 실내를 보라고 하는 것 같다. 바다마저 실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고, 빛은 우리가 보아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다."

p.99

 

바다 옆의 방은 꿈의 느낌이 강하다.

문 앞에 있는 바다가 낯설지 않지만,

꿈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한가로운 볕이 실내를 쓸어내린다.

바다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저런 공간에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이 실내와 바다의 경계를 구분 짓지만

그것은 선일뿐, 넘어가지 못하는 벽이 아니다.

문은 활짝 열리다 못해

볕을 그대로 쬐고

바닷바람이 솔솔 부는 듯하다.

참 아름다운 그림이다.

 

 

 

 

"1963년에 그려져 호퍼의 마지막 걸작인 이 그림은 우리가 없는 세상의 모습이다. 단순히 우리를 제외한 공간이 아닌, 우리를 비워낸 공간이다. 세피아색 벽에 떨어진 바랜 노란빛은 그 순간성의 마지막 장면을 상연하는 듯하니, 그만의 완벽한 서사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p.103

 

빈방의 빛을 보면

긴박한 서사로 이뤄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연상된다.

 

호퍼의 마지막 걸작이 빈방의 빛이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가구 하나 없는 방 안에

고요하게 빛이 내린다.

 

이 그림에서 만큼은

빛이 들어오는 창이 아닌,

빛이 쬐는 텅 빈 방만 눈에 남는다.

 

 

 

 

빈방의 빛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시인의 도슨트에 따라 감상하는 책이다.

공통점이 있는 그림을 묶어서 바라보고,

같은 지점이 있어도

묘하게 다른 지점을 짚는다.

 

차근차근 30점의 그림을 읽다보면

왜 책의 제목이 빈방의 빛인지에 대한

각자의 상상과 해석이 시작된다.

 

마지막 페이지가 지나면

책은 끝나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대한 잔상은

한낮의 태양을 몇 초간 응시한 것처럼,

오래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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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숭배론 한길그레이트북스 183
토머스 칼라일 지음, 박상익 옮김 / 한길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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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숭배론』은 공감 능력과 역사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문학적 역사서술이다.

p.14


21세기에 '영웅'을 '숭배'하는게 말이 되는 것인가?

『영웅숭배론』이란 제목만 놓고 보면

이 책이 지금까지 유효할까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칼라일이 말하는 '영웅'은 '위인'을,

'숭배'는 존경을 뜻한다.

다르게 말하면 『영웅숭배론』은 『위인존경론』인 것이다.



칼라일의 영웅은 성실성과 통찰력이라는 정신적 자질을 갖춘 '위인'을 의미한다. 실제로 칼라일은 '영웅'과 '위인'을 그리고 '숭배'와 '존경'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p.15

칼라일이 말한 위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적 위대성이다.

p.15



『영웅숭배론』은 신, 예언자, 시인, 성직자, 문인, 제왕으로

나타난 11명의 영웅을 소개하며

그들로부터 오늘날의 우리가 배울 점을 시사한다.



제 1강 신으로 나타난 영웅

- 스칸디나비아 신화 : 오딘·이교


어떤 이교라 할지라도 그 당시에 그거을 믿었던 추종자들에게는 간절한 진리였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만 우리는 그 이교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p.36

우리가 오늘날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을, 그들은 경탄하고 엎드려 절을 하며, 그것을 종교로 삼고 있습니다.

p.54

저 고대 북유럽의 작품들은 지금은 없습니다. 천둥의 신 토르는 거인을 죽인 잭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낸 마음은 아직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물들이 성장하여 죽고, 또 죽지 않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북유럽 신앙이라는 거대한 세계수의 작은 가지들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그것은 신기하게도 그 자취를 더듬어 올라갈 수 있습니다.

p.84



칼라일은 고대 신화 역시 당시의 진리였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신화를 비롯한 이교 역시 인간이 괜히 믿은 것이 아니며,

그들의 진리를 인정하고 신화로 나타난 오딘을 영웅으로 소개한다.

성실함과 진실성,

정신적 위대함을 갖추고 있다면

아무리 신화라고 할지언정

그들은 칼라일에게 영웅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북유럽의 신앙이 자취를 감췄지만,

현재의 진리를 더듬어 가다보면

형태만 다를 뿐, 그 진리는 같은 곳에 도달한다.



제 2강 예언자로 나타난 영웅

- 마호메트와 이슬람


이 사람이 한 말은 1,200년 동안 1억 8천 만명의 인생을 안내해왔습니다. 이들 1억 8천 만명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신이 지으신 인간들이었습니다. 신이 지으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다른 어떤 말보다 이 사람의 말을 믿고 있습니다.

p.101

대체로 우리는 그의 결함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사건의 세부적인 면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중심이 가려지게 마련입니다. 결함이라고요? 가장 큰 결함은 결함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p.104

우리는 마호메트의 도덕적 교훈이 항상 최고의 것이었다고 칭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항상 선에 대한 지향이 있고, 정의와 진리를 목표로 하는, 가슴의 진실한 명령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돌려대는 그리스도교의 숭고한 용서는 없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복수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도를 지키고 정의의 한계를 넘지 말라고 합니다.

p.145



그리스도교를 최고의 진리로 여기는 칼라일은

한 시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시대가 위인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살필 수 있다고 하며 이교의 진리 역시 존중한다.

예언자로 나타난 마호메트와 이슬람교 역시 마찬가지다.

북유럽의 신화의 오딘을 영웅으로 봤듯이

한 시대의 진리로 여겨진

이슬람교의 예언자 마호메트 역시 영웅으로 소개한다.

그가 영웅의 덕목으로 여기는 점은

진실성과 성실함이다.

모든 사람이 진실을 잊고

헛된 겉모습을 따라가더라도

영웅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제 3강 시인으로 나타난 영웅

- 단테 · 셰익스피어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를 시어로 선택함으로써 단테는 문학 발달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조국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시가 문화에 표현능력을 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가 수백년 동안 서유럽에서 문학어로 쓰이게 되는 데 기여했다.

p.160

전 세계의 모든 세대에 걸쳐 이 단테를 바라보는 진실한 영혼은 그 속에서 일종의 형제애를 느낄 것입니다. 그의 사상, 그의 슬픔, 그의 희망의 깊은 성실성은 그들의 성실성에도 감동을 전해줄 것입니다.

p.187

셰익스피어의 예술은 기교가 아닙니다. 그것의 가장 고귀한 가치는 계획이나 술책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저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며, 자연의 음성인 그의 고귀하고 성실한 영혼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p.200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도야 있든 없든 상관 없으나, 셰익스피어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입니다!

p.209

한 민족이 그 자신을 표현할 소리를 얻는다는 것, 그의 가슴이 말하려는 것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주는 인물을 갖는다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일입니다!

p.210



1, 2강에서 나타난 영웅과는 다른 영웅이 등장한다.

고대의 신과 예언자로 나타난 영웅은 소멸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그들은 왜곡된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 대한 성실한 통찰로

공정하게 사태를 그려낸다.

그들은 인위적인 시가 아닌,

자연스럽게 발회된 시를 썼다.

이들이 위대한 이유는,

자연의 소산이며

자연만큼 심오한 시를 썼기 때문이다.

단테, 셰익스피어와 같이

위대한 영웅의 등장으로 한 민족이 결속할 수 있으며,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제 4강 성직자로 나타난 영웅

- 루터의 종교개혁 · 녹스의 청교주의


'독창성'의 가치는 새롭다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다는 데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독창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무엇을 믿든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믿습니다.

p.231

영웅이 '성실한 사람'을 의미한다면,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p.234

그는 어떤 위기에 처해서도 사태의 진정한 핵심이 어디에 있는 지를 분별하여 강건하고 진실된 인간으로서 거기에 용감하게 자리를 잡고, 다른 진실한 사람들을 그의 주위에 규합시킬 수 있는 탁월한 자질을 구비해야만 합니다.

p.249

녹스는 진실을 따르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조난 당한 선원이 벼랑에 달라붙듯이 진실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는 진실한 사람이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p.264



모두가 진실을 보지 못할 때,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을때,

영웅은 이면의 진실을 마주보고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고쳐야한다고 외친다.

이처럼 영웅은 전부 진리에 대한

본능적 애착인 성실성을 겸비한다.

침묵은 영웅의 미덕이지만,

목소리를 내야할 땐 앞장 서서

침묵을 깨는 것도 영웅의 미덕이다.

성직자로 나타난 영웅 루터와 녹스가 그렇다.



제 5강 성직자로 나타난 영웅

- 존슨 · 루소 · 번스


오늘 말하고자 하는 '문인'으로 나타난 영웅은 새 시대의 소산입니다.

p.276

글이라는, 그리고 인쇄술이라는 놀라운 기술이 존속하는 한, 그러한 영웅은 앞으로 모든 시대의 주요한 형태의 영웅으로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여러모로 보아 대단히 특이한 존재입니다.

p.276

글 쓰는 사람이 자기 일을 올바르게 한다는 것, 그의 '눈'이 거짓 보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p.283

그것의 외형은 종잇조각에 잉크가 묻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책을 만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 능력의 최고 행위가 아닙니까?

p.291

일반적인 사물의 경우에도 우리는 의심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고 '침묵'으로 감춰둘 것을, 그리고 옳고 그름이 어느 정도 판명될 때까지 실없이 지껄이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p.304

루소는 모성에 대한 정열적인 호소를 통해『사회계약론』을 저술함으로써, 그리고 자연을 - 심지어 자연 속의 야만생활까지도 - 찬양함으로써 진실에 접근했고 진실을 추구하며 싸웠습니다.

p.321

역경은 종종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이라면 번영에 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나는 이때 번스가 번영에 지지 않은 것을 찬양합니다.

p.332



문인으로 출현하는 영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래에도 유효한 형태의 영웅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거짓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녀야 하며,

존슨, 루소, 번스는 이를 지녔다.

기록하고 책을 만드는 행위는

인간 행위의 최고 행위며

그만큼 진실되어야 한다.

칼라일은 18세기 유럽의 회의주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놓는다.

칼라일은 자연적인 것을 진리로 봤으며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기계화하는 회의주의가

자연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문인으로 출현한 영웅들은

이처럼 자연을 중시하는 통찰력을 지녔고,

자연을 중시한다는 것은

진실과 진리를 볼 줄 아는 것으로 이어진다.

자고로 문인은

'사고'할 줄 알아야 했으며

본질을 뚫어보고,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처럼 문인이란,

가장 현대적인 영웅의 형태이며

앞으로 등장하는 영웅 역시

문인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제 6강 제왕으로 나타난 영웅

- 근대의 혁명운동 : 크롬웰 · 나폴레옹


나는 가장 적나라한, 가장 야만적인 진실이 위풍당당한 허울보다 낫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것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시간이 경과하는 사이에 '적절한' 외관을 갖추게 됩니다.

p.352

종놈이나 회의주의자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결국 같습니다. 어떤 '공인된' 왕의 의상인 것입니다. 그것만 입고 있으면 왕의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그들은 왕이 남루하고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차림으로 오면 그런 사람은 왕이 아니라고 배척합니다.

p.355

말은 그것이 진실한 말이라면 다듬지 않고 그냥 내던져 두어도 스스로 진가를 발휘합니다.

p.371

침묵, 위대한 침묵의 왕국, 별보다도 높고 죽음의 나라보다 더 깊은 그 세계! 그것만이 위대하고 다른 모든 것은 작습니다. 우리 잉글랜드 민족이 우리의 그 '침묵할 줄 아는 위대한 소질'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기를 희망합니다.

p.377

만일 잉글랜드 전체가 그를 중심으로 단결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잉글랜드는 그리스도적인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p.381



칼라일은 진실을 중요한 미덕으로

끊임없이 강조한다.

나폴레옹 역시 위대하지만,

크롬웰 보다 위대하지 않은 이유는

거짓을 두루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크롬웰을 더 큰 위인으로 소개한다.

칼라일은 껍데기뿐인 형식보다

무형식이 낫다고 여긴다.

이는 왕을 대하는 태도에도 나타난다.

치장을 하고 격식을 차린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왕이라도

우린 왕을 알아봐야하며,

영웅을 알아볼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외형과 형식에 가치를 두고,

본질을 못 보는 자는

영웅도 알아볼 수 없으며,

영웅이 되기란 더욱더 어렵다.




총 6강 동안 11명의 영웅을 살펴봤다.

이들은 각기 다른 면모로 영웅이 된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적인 영웅의 면모가 있다.

바로 성실함, 진실됨, 본질을 꿰뚫고 진리를 추구하는 통찰력이다.


시대에 따라 영웅은 다르게 출현하지만,

결국 이들이 갖는 면모는 일관된다.

거짓에 넘어가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줄 알고,

시대를 초월한 위대성을 보인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이 지금까지 읽힌다는 점,

오늘 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칼라일 역시 그가 정의한 영웅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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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 한길그레이트북스 182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한길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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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철학사상가이자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의 또 다른 책,

『과거와 미래 사이』를 읽어봤다.

『과거와 미래 사이』는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이란

부제와 더불어 아렌트가 사용하는 용어 사전이라고 말할만하다.

역사, 전통, 권위, 자유 등의

전통적인 정치 개념에 대한 아렌트의 사유가 담겨있다.

과거의 것이 되어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개념을

현대에 다시 불러와 사유하는 과정을

아렌트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우선 『과거와 미래 사이』

아렌트가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을 되짚어준다.

책에 나온 용어를 살짝 맛만 본다면,


여가 : 사유를 위한 시간을 의미. 남아도는 시간이라는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p.102

과거와 미래 사이 : 지금/현재를 의미.

'지금'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찰나적 시간이자 지점.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의 '사이' 공간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메모리아' 즉 '기억'이다.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기억과 현재의 기대 속으로 블러들임으로써만 현존한다.

p.19

행위 : 아렌트에게 행위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정치행위'를 가리킨다.

p.20

아렌트적 폴리스 : 물리적 세계가 아니며, '정치영역, 공영역, 인간관계망, 세계 등'으로 다양하게 지칭하는 공간이다.

공영역과 사영역 : 아렌트의 정치철학적 맥락에서 공영역은 대체로 기쁨, 맑음, 투명성을 의미하며, 사영역은 슬픔, 어둠, 불투명성을 각각 표상한다.

p.78


아렌트의 다른 서적을 읽을 때 분명 도움이 되는 책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다룬 용어의 개념을 인지하고,

아렌트의 다른 책을 읽는다면

보다 수월한 독서가 될 것이며

추상적인 형상이 아닌,

명확한 실체로 아렌트의 사유를 음미할 수 있다.


인간이 사유하지 않거나 행위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개별체로서 인간은 이 두 가지 인간의 활동 양식을 통해서만 스스로의 인간실존을 유의미한 방식으로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7

정치의 존재 이유는 자유이며, 그것이 경험되는 장은 행위다.

p.287

인간은 이전이나 이후도 아닌 행위하는 동안에만 자유롭다. 그 까닭은 '자유롭게 되는 것'과 '행위하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p.297


아렌트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다루는

역사, 권위, 전통, 자유 등의 개념이

'아니 또 이런 걸 정의하고 다뤄?'

라며 진부하게 느껴질 수 는 있지만,

대립쌍의 구도를 통해

양쪽 모두가 의미와 중요성을 가진다는

사유는 흥미로우며 독창적이다.


인간은 고독한 사유함에서조차 결코 혼자일 수 없다.

p.36

인간 행위는 엄격히 정치적인 모든 현상들처럼 인간 다수성과 함께 묶여 있다. 그 인간 다수성이 인간의 탄생성에서 기인하는 한, 그것은 인간 삶의 근본 조건 가운데 하나다.

p.162

라틴어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 속에 있는 것'과 일치했으므로....

p.181

'심지어 성자들의 삶조차도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p.182


아렌트는 다수성이란 개념을 통해

인간이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말을 전한다.

사유함에 있어서도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인간은 '정치행위'에 참여해야하며,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는 에세이라기엔

다루는 내용이 간단하지 않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닌만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아렌트의 다른 저서 혹은

철학서를 읽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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