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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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렇게 쉽게 리셋되지 않아. 과거는 언제까지고 따라다녀. 속죄는 할 수 있어도 실수를 저지른 과거를 지울 수는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p.262

 

범죄자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이기에 교화할 수 없다는 입장과 그럼에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자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플라주는 둘 중 어딘가엔 속해있을 당신의 입장에 물음표를 던진다.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란 독특한 설정은 책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일본의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즐겨 읽지 않음에도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는 결국 내 손에 플라주를 쥐게 했다.

 

입주자는 총 6. 남자가 넷, 플라주 운영자를 포함하여 여자가 셋이다. 여기서부터 가내 연애가 생길 것이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플라주의 모든 방엔 방문이 따로 없으며, 그저 커튼만이 사생활을 가려준다. 약간의 시각과 청각, 후각을 플라주의 입주자는 공유한다. (나라면 여기서 못산다.) 이처럼 플라주를 읽을 때 나 역시 플라주의 입주자란 생각으로 풍덩 빠져 읽으면 몰입과 공감이 폭풍처럼 가능하다.

 

플라주는 각성제 복용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화재로 인해 거주지를 잃게 되어 플라주에 입주하게 된 다카오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다카오의 사정과 플라주 입주자들의 사정이 번갈아가며 펼쳐지는 전개 방식은 독자가 등장인물들에게 충분히 이입할 수 있게끔 한다.

 

플라주의 양날의 검이 바로 '등장인물을 대한 충분한 몰입'이다. 다뤄지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전과자이기에 과도한 몰입이 좋지 않은 가치관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범죄자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하여 범죄에 대한 합리화를 부여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플라주 입주자의 경우, 피해자가 존재하는 범죄, 공익을 크게 헤친 범죄를 저지른 입주자가 없다.

 

오히려 억울한 입주자가 존재한다. 살인 전과로 들어온 도쿠미가 그렇다. 도쿠미가 친구와 만난 날, 친구가 사망했고, 그 둘이 돈이란 또 다른 이해관계로 묶여있단 사실만으로 도쿠미는 살인자가 된다. 더불어 도쿠미 여자친구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도쿠미는 이도 저도 못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도쿠미의 여자친구가 증언을 번복하여 도쿠미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럼에도 도쿠미가 분명 살인자일 것이라고 보던 기자는 사건을 더 캐내기 위해 플라주에 위장 입주하여 도쿠미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 p. 278

 

등장인물 각자의 사정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동시에 플라주는 전과자를 대하는 사회의 잘못된 방식을 고발한다. 전과자는 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직장을 구하긴 더 어렵다. 재기불능이란 단어가 전과자만큼 잘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모두의 목소리로 합일하여 만들어진 법대로라면, 전과자는 죗값을 다 치른 상태다. 벌금형이 되었든, 옥살이가 되었든, 집행유예가 되었든 법상으론 더 갚아야 할 무언가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는 전과자에게 계속해서 죗값을 받아내려 한다. 고리대금처럼 끝까지 받아먹는다. 사회는 전과자를 아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주지 않고, 따스한 시선은 고사하고 거주지조차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전과자는 결국 사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경계인이 된다. 이처럼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전과자가 부당한 일로 돈을 벌게 되는 결과와 재범의 존재는 사회 자체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플라주에선 암시한다.

 

날마다 똑같아 보이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도 어느 하나 같은 파도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달라진 것을 슬퍼해서도 안 된다. p.396

 

 

누군가에겐 플라주가 전과자 과대 옹호이자 피해자에겐 2차 가해로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범죄자가 벌금과 옥살이 등의 죗값을 치르긴 했으나 '전과자'란 빨간줄로 인해 얻는 사회적 불이익 정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플라주가 전과자만 나오는 소설이기에 이러한 부분을 염려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범죄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가지면 어쩌지란 고민을 책 읽는 내내 가졌다. 그리고 플라주는 절대 범죄에 대한 긍정이나 그 비스름한 암시 하나 없단 결론을 냈다. 오히려 범죄로 인해 망가지는 삶과 가정, 절벽으로 내몰리는 삶을 봤다.

 

플라주의 마지막엔 반전이 존재한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이랄까. 반전이 없나 갸우뚱거릴 때쯤, 끝내 반전이 등장하고, 소설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맛이 있다.

 

 

 

 

이 가게의 이름,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이라는 뜻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그것은 항상 흔들리고 있다. p.160

 

플라주의 뜻은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이자 모호하게 항상 흔들린다. 그 구분을 확정 짓기란 어렵다. 플라주 입주자이자 전과자인 등장인물의 입장을 잘 드러낸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어딘가에 속해있기 어렵고,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이방인이다. 그들을 품어주는 플라주는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어쩌면 현실에 있는 게 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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